멕시코 시티에서 여행자 눈치 챙기기

by 헤스티아

워크캠프가 끝나고 며칠 정도 멕시코 시티 여행 일정을 잡았다. 굳이 관광이 아닌 여행이라고 표현하는 건, 멕시코 시티에서 관광을 다니고 싶을 만큼 강심장은 여전히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저 낯선 곳에서 며칠 머무르면서 나만의 시간을 가져보고 싶었다. 그러다 워크캠프에서 친해진 일본 친구가 멕시코 시티 일정에 함께하기로 했다. 꼭 혼자가 아니더라도 이렇게 하는 여행도 충분히 좋을 것 같았다. 마지막날은 일본 친구가 하루 먼저 출국하니까, 또 그 하루의 여행은 오롯이 내 것일 테고.


우리가 멕시코 시티로 간다고 하자, 멕시코 현지 참가자가 우리에게 나름의 조언을 줬다. 일단 멕시코 시티의 지하철은 너무나도 복잡하니까 잘 보고 타야 한다며 신신당부를 했다. 어느 정도 조언은 고마웠지만, 사실 서울, 도쿄의 지하철도 만만치 않다. 난생처음 지하철을 타는 사람들은 아니란 말이다. 두 번째 조언은 더 재밌었는데, 절대로 관광객 티를 내지 말고, 지도를 길에서 펼쳐 꺼내 들지 말며 당당하게 목적지까지 돌아다니랬다. 그 친구에게 내가 물었다.

우린 이미 외모부터 아시아인 관광객인데, 어떻게 티나 안나냐고.

그랬더니 아무튼 지도는 길에서 펼치지 말랬다.


나중에 멕시코 시티에서 살다 온 분을 만난 적이 있다. 아, 그렇지. 아시아인이라도 관광객이 아닐 수는 있겠구나. 하지만 내가 체류할 당시 소깔로 광장 근처에 아시아인이라곤 우리밖에 없어서 더욱 눈에 띄긴 했다. (어쩌다 보니 그때 아시아인이 잘 안보였다. 마지막날 호스텔을 떠날 때 막 도착한 또 다른 팀들을 보긴 했다.) 그리도 이건 그때 못 느끼다가 한국 돌아온 후에야 깨달았는데, 멕시코 시티에선 치마 입은 사람을 보지 못했다. 대부분 청바지를 입었고, 종종 핫핑크라든지 눈에 띄는 레깅스를 입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었다. 거기서 치마 입고 돌아다닌 우리는 누가 봐도 관광객이었다.




멕시코 시티의 호스텔은 무척 좋았다. 처음엔 일본 친구와 묵을 2인실을 예약했고 나중엔 1인실을 예약했다. 2인실은 무척 넓었고, 1인실도 꽤 괜찮아 보였다. 결국 호스텔 측에서 예약 실수로 일본 친구가 떠난 후에도 1인실 가격으로 원래 묵던 2인실 방을 계속 쓰게 되었지만.


조식도 나쁘지 않았다. 이곳은 플라스틱 컵과 그릇을 사용했고, 다 먹고 나면 설거지를 할 수 있게 식기를 반납해야 했다. 멕시코에 올 때 경유한 댈러스에서 불편할 정도로 1회 용품을 많이 쓰던 것과 대조가 되었다. 인건비 차이가 여실히 느껴졌다.



멕시코 시티에 머무를 때, 일본 친구는 테오티우아칸 피라미드를 보러 갈 일정이 맞지 않았다. 그래서 우린 소깔로 광장 근처만 돌아다녔다. 이곳은 길 하나를 두고 차이가 너무나 크게 느껴졌다. 한 블록은 이 동네 가장 번화가이자 금융의 중심지인 듯했다. (눈으로 보면 그렇게 차이는 나지 않았는데...) 그런데 바로 옆 블록을 가면 일반 시장인 것 같았는데, 조잡한 물건들을 팔고 있었다. 길 하나 차이에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금융권 직장인들이 점심을 먹는 것 같은 동네에서 한정수량 오늘의 메뉴를 주문하는 데 성공했다. 사실 애피타이저, 메인디쉬, 디저트를 포함한 가격이라기엔 너무 싸 보여서 이 가격이 맞냐고 묻고 싶었는데, 질문을 제대로 하는 데는 실패했다. 대신 우물쭈물하는 우리를 두고 답답해하는 직원이 하는 말은 대충 알아들었는데, 저렇게 다 포함된 것 맞다는 거다.



다만 멕시코 시티에서는 여행자 눈치를 여전히 더 챙길 필요가 있었다. 밥을 먹을 때, 버스를 탈 때 수시로 마리아치들이 나타난다. 그들의 등장을 전혀 예상하지 않고 필요한 금액만을 챙겨서 돌아다니다가 적절한 금액의 팁을 주지 못해서 민망했던 경험이 있다.


슈퍼에서 맥주를 살 때면 붙어 있던 금액보다 더 요구했는데, 이건 호스텔에서 만난 일행이 여행자 눈치로 알아차렸다. 공병 보증금이었다.



호스텔에서는 택시를 불러주는 서비스도 제공했는데, 그렇게 부른 택시는 택시가 아닌 일반 승용차였다. 일본 친구가 먼저 그 차를 타고 가게 되었는데, 이가 드문드문 빠진 할아버지가 이게 택시 맞다고 하자 그때는 매우 의심의 눈초리를 갖고 걱정을 했었다. 아직 우버가 활성화되기 전이라 택시 마크가 어디에도 없는 모르는 차를 타고 가는 게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호스텔 사람들이 택시가 맞다고 해도, 이들도 한 통속이 아닌가 걱정이 되기도 했다. 여행을 많이 다닌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택시를 불러 타는 경험이 있을 테고, 지금은 우버를 비롯해서 이런 형태의 택시를 운영하는 게 익숙하기도 하지만, 당시 여행자 눈치가 없을 때라 의외의 상황에는 좀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멕시코 시티의 소깔로 광장 근처에서 ‘멕시코에서 제일 맛있는 치킨집’이란 문구를 발견했다. 장작불에 구워 파는 치킨에 할라피뇨, 몰레 소스 등을 함께 먹는 방식이었다. 멕시코 시티에서 최고 맛있는 집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인기 있는 집인지 사람은 엄청 많았다. 다만 저 문구는 오만하게 느껴졌다. 멕시코 시티에서 제일 맛있는 치킨집이면 멕시코에서 제일 맛있는 치킨집이 되나? 적어도 내게는 산 크리스토발 치킨집에서 먹었던 같은 메뉴가 더 맛있었다.




일본 친구가 먼저 간 후 난 꼼짝 않고 그저 넓은 호스텔 방 두 침대를 다 뒹굴거리며 보낼 작정이었다. 그러다 같은 호스텔에 묵던 한국인을 만나 함께 테오티우아칸 피라미드를 가게 되었다. 호스텔의 투어를 신청해도 됐는데 금액은 비슷했지만, 투어는 시간을 맞춰야 해서 우리끼리 지하철로 가보자고 했다. 사실 상당히 내키지 않았다. 이곳은 멕시코 시티 아닌가. 어딜 돌아다니려고... 그런데 10 퍼센트, 20 퍼센트의 호기심이 일었다. 거긴 유명 관광지고, 대낮이고,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괜찮지 않을까.



일단 함께 가기로 한 이상 스스로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무장경찰이 쫙 깔린 지하철을 보면 멕시코의 치안 상태에 걱정이 들기도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관광객 입장에서 든든하기도 했다. 여성전용칸이 잘 지켜진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여성전용칸을 이용해서 이동했다. 다행히 소깔로 광장과 테오티우아칸까지의 여정에서 별 다른 위험은 못 느꼈다.


돌아올 때는 버스를 탔는데, 이 버스도 앞서 말한 마리아치가 올라탔다. 미리 동전을 좀 준비해 두는 게 좋다. 참고로 현지 사람들은 멕시코 시티를 D.F. (데에페)라고 부르는데, 멕시코 시티에 들어서면 거의 모든 역 뒤에 D.F. 가 붙으니까, 이 단어만 들린다고 막 내리면 엉뚱한 정류장에 내릴 수 있다. 그 앞에 들리는 말을 잘 들어야 한다.



테오티우아칸은 여느 유적지처럼, 그냥 볼만큼 보고 구경을 했다. 멕시코에서 돌아다닐 때는 늘 소매치기를 생각하면서 돈을 많이 안 가지고 다녔는데, 이곳에서 한 팔찌 파는 상인이 내게 오늘 하나도 안 팔았다며 마수걸이를 해달라고 계속 부탁했다. 싸게 줄 거라고. 싸게 주는 건 알겠지만, 진짜 현금이 얼마 없었다. 그래서 두 개만 구입했더니 그 아저씨는 만족해했다. 돌아오는 길에 많은 손님에 둘러싸여 팔찌를 한가득 팔고 있던 아저씨를 보니 다행이다 싶었다.



테오티우아칸에선 피라미드 꼭대기에 올라 햇빛 아래 가만히 앉아있던 시간이 정말 좋았다. 해발 2300m란 높은 고도에 있는 건축물이라 그런지 하늘이 정말 파랗고, 가까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묘하게 편안하고 따뜻함에 취해서 신나게 쉬었는데, 30분도 안되어 따가울 정도로 햇살에 화상을 입었다. 여름 바닷가 햇살과 다른 편안한 햇살이라 방심했다가 당했다.



멕시코 시티는 여행자 눈치가 꽤 필요한 동네였다. 그래도 이제 이 정도의 여행자 눈치는 늘었다. 내가 또 갈 일이 있을까 싶지만, 굳이 기회를 마다하지도 않을 것 같다. 호스텔이 배낭여행용 숙소 수준이 아니라, 소박한 호텔 수준으로 호사를 누릴만했고, 피라미드의 햇살도 여전히 가끔 생각난다. 휴관일 일정이 안 맞아서 못 갔던 만화 박물관도 살짝 미련이 남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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