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땅에 쓰는 시> GV에 다녀왔습니다.
유퀴즈를 통해 더 대중적으로 알려지신 정영선 조경사님의 작업들과 작업, 삶의 철학을 다룬 다큐멘터리입니다.
2002년 경 저는 이런저런 국제 행사에 자원봉사 기회가 되면 많이 참석하고 있었는데요,
그중 어떤 계기였는지는 모르겠으나 (글 쓰는 동안 지금 떠오른 기억으론 서울 메트로폴리탄 행사였던 것 같습니다.) 선유도 공원, 월드컵공원, 하자센터를 연결해서 견학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날 견학에서 연결되던 주제는, 버려지던 것들을 새로운 가치로 되살리던 것이었습니다.
정수 처리장으로 버려진 곳, 난지도로 버려진 곳, 폐타이어 등 쓰레기로 버려진 것들을
선유도 공원, 월드컵 공원, 노리단의 타악기 공연으로 살려낸 것들을 견학했습니다.
그중 선유도 공원 프로젝트에 정영선 조경사님이 참여하셨고,
다큐멘터리 영화 <땅에 쓰는 시>는 선유도 공원으로 열고 닫습니다.
정영선 조경사님의 대단한 작업들과 작업, 삶의 철학은 영화를 보면 직관적으로 아실 수 있으니, 저는 다른 이야기를 좀 더 보태보겠습니다.
저는 영화를 보는 내내 미학적 인간의 빛나는 창의성을 볼 수 있었는데요,
제가 8년 이상 붙들고 있는 창의성 연구 주제이기도 합니다.
자연과의 유기적 연결 속에서 내면의 창조적 직관이 살아있을 때, 저는 그 사람이 가진 창의적 천재성이 가장 잘 발현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들을 저는 '미학적 인간'이라고 부릅니다.
누구든 미학적 인간은 될 수 있습니다.
그런 미학적 인간이 창의적 천재성을 발휘하면 어떤 성과를 낼 수 있는가를 찾다 보니, 아무래도 유명하신 분들의 사례를 찾게 되는데요, 저는 생명다양성 재단의 최재천 교수님, 카이스트 산업디자인과 배상민 교수님의 사례를 즐겨 들곤 했습니다. 언젠가 찬찬히 다룰 기회가 있을 테지만, 이분들의 미학적 인간으로서의 면모를 먼저 살펴보고 싶으면 <과학자의 서재> (최재천 저)/ <나는 3D다> (배상민 저)를 참고해 보셔도 좋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번에 더 잘 알게 된 정영선 조경사님도 멋진 사례에 함께 두려 합니다. 영화 <땅에 쓰는 시>에서도 정영선 조경사님의 천재적 안목을 따라가기 힘들어하는 후배 현장 동료들의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우리가 자연과 교감하며 무의식 중에 주고받는 엄청난 정보들은 나중에 직관의 형태로 쌓입니다. (이때의 직관은 말콤 글래드웰의 <블링크>에서 말하는 직관과 비슷합니다.) 여기에 내면의 창조적 직관의 힘이 연결된 상태에서는 천재적 영감이라 불리는 아이디어까지 작용합니다. 이 힘이 잘 작용한 사례가 아닐까 싶습니다.
실제로 정영선 조경사 님도 하이데거의 철학을 의식해서 작업을 하셨다고 하셨고, 그 부분을 GV 진행자였던 이지훈 님께서 잘 짚어 주셨습니다. 이지훈 님은 <예술과 연금술> 책의 저자인데, 이 책은 바슐라르의 물질적 상상력을 이지훈 님의 방식으로 적용해서 풀어낸 책입니다. 저의 창의성 연구의 바탕이 되는 바슐라르, 질베르 뒤랑의 계열에서 세상을 보고자 하는 분입니다. (사실 이 분의 책 초판이 2004년에 나왔으니, 제가 간접적으로 도움을 많이 받았겠지요.) 어제 언급된 맥락에서의 하이데거, 존 듀이, 바슐라르 모두 자연 환경과의 유기적 상호작용을 강조합니다. 그러다 보면 내면에 창조적 연금술 작용이 일어나겠지요.
제가 참석했던 <땅에 쓰는 시> GV에서는 이런 심도 깊은 이야기들도 많이 나왔지만, 그렇다고 분위기가 너무 무겁거나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정다운 감독님이 먼저 함께 참석하신 김종신 프로듀서님이 짝꿍이라고 밝히신 데다, 영화의 시작과 끝을 열고 닫는 아이의 부모님이라고 말씀하셔서 가족 나들이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안 그래도 감독님 내외분께서 무대에 오를 때, 한 아이가 함께 들어오기에 영화와 관련한 중요한 아이인가 싶었는데, 그런 사연이 있더군요. 게다가 정다운 감독님이 워낙 입담이 좋으셔서, 이 가족이 호스트가 되어 초대한 사랑방에 함께 모여 수다 떠는 기분이었습니다. 굉장히 유쾌하지만, 또 깊은 이야기들을 많이 할 수 있던 시간이었습니다.
아직 GV 기회가 남은 것 같은데, 기회 되시는 분들은 꼭 GV까지 참석해 보시라고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참고로 저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해금살롱의 퓨전국악곡 (국악 크로스오버) <벚꽃, 그날의 기억>이 영상 장면과 참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끔 결이 맞는 퓨전 국악 창작곡을 찾으면, 그것도 제겐 하나의 큰 수확이 됩니다. 요즘은 핸드폰 어플로 실시간으로 노래를 찾을 수 있지만, 극장에서 영화볼 때는 영화 크레디트 올라갈 때, 영화 삽입곡을 유심히 보면서, 불 켜질 때까지 안 잊어버리려고 노력해야 하지요. 오랜만에 예전에 노래 제목 힘들게 찾을 때의 아날로그 감성도 좋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