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은 알아차림, 깨어있음을 강조하곤 합니다.
평소에 훈련이 되어 있지 않아서 그렇지, 오랫동안 알아차림을 훈련하면 누구나 매 순간의 상태를 의식적으로 자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알아차린 '나' 혹은 누군가를 보면, 그전에 생각했던 '나'와 다름에 흠칫 놀랄 때가 많습니다.
분명 겉모습은 나, 혹은 내가 알던 누구인데,
그 순간에 말하고 있는 생각, 행동은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닌 것이죠.
제 스승님께 가르침을 받은 표현을 활용하자면, '객이지만 자기 자신'인 상태입니다.
이건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아주 익숙하게 들어온, 불교의 가르침과 상통합니다.
'고정된 실체로서의 자아'는 없다는 것이죠.
저는 명상을 하면서, 매 순간 바뀌는 진동수 개념을 활용합니다.
순간의 나는 그 순간의 진동수에 해당하는 나일뿐입니다.
그런데 가끔 의식적 자아가 아닌, '내면의 나'가 튀어나와 말과 생각을 이끄는 경우도 있습니다.
프로이트가 말실수를 보고, 그 사람의 무의식의 힌트를 알아본 것처럼요.
저는 프로이트가 파악한 현상은 '내면의 나'의 아주 아주 아주 극히 일부에 그칠 뿐이라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매 순간의 나가 의식적 자아가 아닐 수 있음을 알아차리는 걸 언급했다고 봅니다.
때로는 내면의 나로 인해, 엉뚱한 말실수를 했는데 더 좋은 결과가 나오기도 합니다.
재미있는 예가 하나 있습니다.
저의 지인이 어느 날, 쌀가마에서 쌀을 푸려 했습니다.
쌀을 조금씩 사 먹을 때는 포대도 많다고 생각하지만, 햇곡식이 나올 때 시골의 지인으로부터 쌀가마째 사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한 번에 많이 푸기 위해, 큰 용기를 떠올렸습니다. 원래 의도한 것은 스텐 국수 그릇 같은 것이었지요.
그런데 무의식적 말실수로 스텐 냄비가 나왔는데, 옆에 있던 사람이 그 말을 듣고 손잡이가 하나 붙어 있는 작은 스텐 냄비를 갖다 주었습니다.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결과적으로 훨씬 좋은 선택이었습니다.
아주 사소한 에피소드이지만, 단순한 말실수로 치부하기엔 우리 일상에서 이런 경우들이 종종 있다는 거죠. 그리고 그 순간 말실수를 일으킨 나는 누구일까를 의식적으로 알아차리는 겁니다.
결국 매 순간의 생각과 행동은 의식적 나가 아님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소해 보이지만, 계속해서 이런 의식을 갖고 훈련을 하는 건 중요합니다.
이건 명상의 진척과도 관련이 있으니까요.
명상이라는 건, 의식적인 내가 성실하게, 열심히 한다고 해서 누구나 어느 시간 후에 어떤 경지를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그 경지는 누군가는 10년, 20년 만에 닿기도 하는데, 누군가는 평생 이르지 못하기도 합니다. (다만, 자신의 수행 방식이 올바른 방향을 향한다면, 반드시 처음 시작점보다 높아진 상태에 이르긴 합니다.)
명상의 목적은 나와 내면에너지의 온전한 통합인데, 정말로 '온전함'까지 닿는 사람은 극소수이지만, 그래도 각자 가지고 온 이번 생의 숙제에서, 시작점보다는 통합된 상태로 올라갈 수는 있습니다. 대신 얼마나 올라갈 수 있을지는 내면에너지의 역할에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평소에 내면에너지와의 조화를 위해 무의식 정화를 많이 하는 것을 강조하고, 여기서 그치지 않고 나를 힘들게 하는 내면의 그림자 통합을 계속해야 합니다. 그래야 내면에너지가 내가 생각지도 않은 지점까지 나의 내면을 통합시켜 주거든요. 그때 일어나는 현상들을 밖에서 관찰하면, 명상의 진척이라 할 수 있겠지요.
한편, 우리 삶을 힘들고 괴롭게 하는 많은 순간도 사실 의식적 자아 때문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내 주변에서 나를 괴롭히는 사람들, 혹은 나 스스로 어두움 때문에 현명하지 못한 판단을 내려 겪는 인생의 문제들이 그렇습니다.
명상에서는 탐진치가 상당히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고 보고, 여기서 더 넘어가면 불안, 공포가 삶을 시험한다고 봅니다. (인생의 시간 순서대로 탐진치 다음 불안, 공포가 나온다기보다는, 매 순간 다뤄야 하는 진동에너지의 단계 차이라고 보면 됩니다. 어떤 순간에는 탐진치가 문제이고, 어떤 순간에는 불안, 공포가 문제이기도 합니다. 불안, 공포가 더 다루기 어려운 에너지 레벨이라는 겁니다.)
제가 명상을 하면서 오랫동안, 이렇게 나를 힘들게 하는 문제들을 두고 저의 스승님이 '객이자 자기 자신이다'라고 하신걸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사실 나는 잘했는데, 다 저 사람들이 잘못해서 내가 힘들었다! 는 생각을 많이 했으니까요. 그리고 실제로도 객관적 현상만 보면 그런 판단이 맞기도 합니다.
내 중심에서 변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나는 잘못한 것이 아니라 상대에 문제가 있다면, 그런 옳고 밟고 예쁘고 좋고 높은 것만 받아들이면서, 추악한 것들을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라고 끊어냈을 때, 그림자 에너지가 삶에서 반격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그림자 에너지도 자기 자신입니다. 반드시 통합하고 넘어가야 더 질적으로 높은 수준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굳이 억지로 통합하지 않아도,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내가 겪어가는 과정에서 조금씩 통합이 되긴 합니다. 다만, 제대로 통합이 되지 않을 경우, 통합이 될 때까지 비슷한 문제가 반복해서 일어나니, 의식적으로 알아차리고 통합을 위한 수행을 하는 것이죠.)
그리고 내가 옳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나도 탐진치, 불안, 공포로 인해 잘못된 판단을 하고 세상을 왜곡해서 보는 경우들도 많습니다. 그런 사실을 빨리 알아차리면 괜찮은데, 그렇지 않은 경우 나의 탐진치, 불안, 공포를 통로로 삼아, 비슷하게 더 어두운 에너지가 섞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내 의도와 다르게 일상의 문제들이 더 커지기도 하고요. 나를 괴롭히는 상대방도 마찬가지입니다. 탐진치, 불안, 공포로 인해 과도하게 화를 낸다든지, 과도하게 불합리한 소비, 투자로 삶을 힘들게 만든다든지 하는 것이죠. 그 순간 상대를 내가 알고 있는 사람으로 바라보기보다 훨씬 더 어두운 내면에너지로 알아차리고 주의할 필요도 있습니다.
이렇게 일상에서 깨어있고 알아차리는 훈련은 누구나 자신의 삶을 의식하고 살펴볼 수만 있다면 수련할 수 있으니, 가급적 많이 시도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