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도 길지만 곱슬이라 더더욱 숱이 풍성해 보이는 내 머리카락을 두고 어른들은 팔아도 되겠다는 소리를 종종 하곤 했다. 옛날엔 엿 바꿔 먹었다지 하는 뻔한 레퍼토리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다.
몇 년 더 흘러 폭발적인 당분 섭취가 경계의 대상이 되고 머리카락 팔아 번 푼돈을 들이대기엔 가방끈이 너무 길어 보였는지 엿 바꿔 먹으라던 참견이 기부해도 되겠다로 바뀌었다. 머리카락으로 돈을 벌면 '불로소득'이지만 기부를 하면 돈 대신 도덕적 우월감과 함께 심리적 만족감을 대가로 지불받으므로,
그래서 해 봤다, 기부.
3년 전 처음으로 머리카락을 기부했을 때, 새로운 참견이 또 기다리고 있으리라 짐작했다. 여자가 머리가 기니 짧니 트집 잡는 것도 싫지만, 좋은 일 했구나 , 대단하다는 소리조차도 별로 듣고 싶지 않았다. 칭찬도 일종의 평가라, 그냥 음 그래 그랬구나, 하고 지나가는 게 제일 편하다.
걱정했던 바와는 달리 어른들은 오 그래 그랬구나, 하고 넘어갔다. 그들이 나의 '단발'을 수용한 이유가 내가 바랐던 이유 때문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군소리는 별로 없었다. 내가 머리를 짧게 커트 친 시점이 결혼식을 마친 후였던 덕분이다.
군소리 없는 어른들의 사고 회고를 유추해봤다.
결혼을 했다>아줌마다>처녀는 머리가 길고 아줌마는 머리가 짧다>짧은 머리>납득
또는
결혼을 했다>남편이 있다>남편이 짧은 머리를 좋아한다>납득
아빠가 그랬다. 아빤 엄마가 머리 기르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아빠가 뭐라 안 해도 엄마는 긴 머리가 갑갑해서 머리를 항상 짧게 치고는 했지만, 어쨌든 아빠는 짧은 머리가 예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결혼을 했다>남편이 있다>남편이 허락했다>납득
아빠는 물었다. 네 서방도 (자신처럼) 머리 짧은 걸 좋아하냐고. 나는 딱히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그러면 허락은 받은 거냐고 되물었다. 걔한테 알려주기는 했는데, 허락받고 자시고 하기 위해서는 아니었다고 다시 답했다.
근데 나는 정말 일방적인 통보였던가 다시 생각해보면, 그런 것 만도 아니었던 것 같다. 통보를 하고 의견을 구하지 않은 건 맞는데, 그렇다고 해서 마음이 쓰이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기억에서 지운 건지 만들어진 기억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나 머리 자를 거야, 괜찮지? 하는 장면이 떠오르므로.
이미 지나간 일들임에도 두피에 난 뾰루지처럼 불편하다. 별 것도 아닌 주제에 문득문득 고통을 안겨주는 존재라는 점에서 '머드름(머리 여드름)'과 내 대가리에 난 털을 향한 부질없는 참견은 결이 참 비슷하다.
머리카락을 기부했던 이유는 호기심 반, 아까워서 반이었다. 머리카락을 자르긴 잘라야 하는데, 버리기도 아깝고 헐값에 팔기도 아까워서 자존감을 채우는 방식을 택했다.
30cm 머리칼을 자르긴 잘라야 했던 이유는 외국 살이 때문이었다. 아리수에 비하면 뻑뻑하기만 한 공공 수돗물의 상태, 온몸 구석구석 켜켜이 쌓이는 듯한 베이징의 탁한 공기질에 질려버렸다. 숱도 많고 길기도 길어서 더 피곤했다.
머리털을 한 묶음, 두 묶음 잘라내고 나자, 그제야 케라틴 단백질 다발의 무게가 실감이 났다. 기부를 하기 위해 머리를 자를 땐 최대한 길게 자르면서 남은 머리 모양을 스타일링하기 좋게 남기기 위해 양갈래로 묶어 자른다. 한쪽 묶음을 자르면 반대쪽이 무거워져 고개가 옆으로 살짝 떨어진다. 반대쪽 묶음까지 잘라내고 나면 목이 쑥 위로 올라간다. 어깨도 한결 편해진다. 개비스콘이 따로 없다.
두 번째 기부 때는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코로나 때문에 사람 만나는 수가 줄었고, 그중에서도 어르신들은 더더욱 뵙지 않았으므로, 당연했다. 만나는 사람들은 이미 내 정체에 익숙한 사람들이라 더더욱 뭐라 할 게 없었다.
자른 머리카락 자랑하려고 본가에 가져갔다가 놓고 오는 바람에 엄마가 택배를 붙여 줬다. 주말에 내가 가서 해도 된다고 했는데도 엄마는 손수 머리카락을 말리고 포장하고 박스에 넣어서 편의점에 가져가 주소와 연락정보를 입력하고 송장을 붙인 후 택배비를 결재했다.
머리통에 달려 있을 땐 미(美)의 상징(?) 같았던 털이 잘라 놓고 보니 징그러워서 대체 이 혐오감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DNA에 새겨진 위생관념에서 기인하는 걸까 궁금해졌다. 내 것이었음에도 이토록 낯선 것을, 엄마는 기꺼이 만지고 다듬고 보내줬다.
최근 읽은 책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엘리베이터 밑에서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다 썩은 시체가 발견되었는데, 부모가 뛰어와서 품에 와락 끌어안았다는 내용이었다. 몇 개월 전 실종되었던 자식이라고 했다. 그 외에도 부패한 자식을 끌어안는 부모 이야기가 몇 편 더 있었다.
신체발부수지부모가 이런 뜻이었던가.
요즘은 머리카락을 지지고 볶아도 길이만 충분하면 기부를 받아준다고 한다. 모질에 따라 사용이 가능한 경우도 있다는 게, 기술이 좋아졌다는 뜻인가 싶기도 하다.
3년 뒤에도 기부를 또 할 수 있을까. 한 달 만에 머리가 많이 지저분해졌다. 자라나는 속도가 어마어마하다. 머리숱이 많아서 더 그렇게 보이는지도 모른다. 짧게 커트 한 번 치면 거지존(zone)을 참기 어려워 다시 머리를 길게 기르기 어렵다는데, 코로나 덕분에 밖에 나가질 않으니 위기를 쉽게 넘길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