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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제이 Aug 23. 2021

매미가 입이 얼면

으르르르르르르르르

 D의 일족. 

 본가에 갈 때마다 신랑은 'D의 소굴로 들어간다'는 표현을 쓰고는 한다.

 수년 전 연구소에서 일할 때 받았던 유전자 검사 결과를 알려준 뒤부터다. 유전자 검사실로 배정받았던 때였다. 해당 연구실에 출입하려면 전신 방호복에 마스크에 장갑까지 다 장착해야 했다. 에어샤워까지 다 거치고 소독약도 수시로 바르지만, 그래도 혹시 몰라 모든 출입인원의 유전자 검사를 진행한다. 오염원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시료의 검사 결과가 혹시라도 연구원 A의 유전자 검사 결과와 중복된다면, 해당 시료는 A에 의해 오염되었음을 의미한다.

 당시 해당 랩실에 새로이 출입하게 된 두 명의 검사 결과, 두 명 다 한국에서 흔하게 확인되지 않는 미토콘드리아 DNA 하플로 그룹에 속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 명은 외국인이었는데, 해당 국가에서 흔하게 확인되는 유형이었고, 또 다른 사람은 나였다. 


 미토콘드리아 하플로 그룹은 인류유전학의 수많은 연구분야 중 인류의 기원을 따질 때 많이 쓰인다. 미토콘드리아 DNA, 즉 mtDNA는 모계로만 유전되는 요소로 오래된 유골에도 잔존하기 때문에 그 유명한 '미토콘드리아 이브', 즉 현생 인류의 기원(엄밀하게 따지면 '가장 최근의 모계 기원'이라고 써야 맞다)을 바로 이 mtDNA로 찾아내기도 했다. 

 mtDNA는 '나'의 유전자를 대표하지 않는다. 내 세포의 DNA 따로, 내 세포의 세포핵 옆에 자리한 mtDNA 따로다. 말하자면 mtDNA는 나의 여러 유전적 특질과 전혀 상관이 없는 셈이다. 아빠를 닮은 성격과 체형은 내 DNA에 녹아 있지만, mtDNA는 유전자 재조합이 거의 발생하지 않은 채 수 천 년 간 이어져 내려왔다.

 나를 낳은 여자, 그리고 그 여자를 낳은 여자, 여자를 낳은 여자를 낳은 여자를 통해서. 

 엄밀히 따져보면 현대 한국인의 약 30% 이상이 하플로 그룹 D에 해당한다고 하니까, 희귀하다고 할 정도는 아니다. 다만 D그룹에 속하는 여러 갈래 중 D4가 가장 많은 편인데, 내가 그 '4'가 아닐 뿐이다. 그렇게 계산하면 또 좀 드물기는 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어쨌든 여자가 여자를 계속 낳는 이상 별로 대단할 것도 없는데 신랑은 시간 날 때마다 호들갑이다. 검사를 안 해 봐서 그렇지 신랑의 미토콘드리아도 D일지도 모른다. 신랑의 D는 유전되지 않겠지만.

 한국인 전체 mt 하플로 그룹 비율이 어떤지는 몰라도, 적어도 본가에 가면 딸 둘에 엄마와 엄마의 엄마까지, D가 과반수 이상이다. 내 세포를 살아있게끔 하는 에너지원이 내 옆에 앉은 자매의 그것과 똑같다고 생각하면 괜히 슬쩍 살을 한 번 더 부비고 싶어 진다. 

 엄마의 것, 할머니의 것과도 똑같다고 생각하면, 미토콘드리아 유전자가 나의 특질을 반영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mtDNA가 아니라 나의 DNA에 엄마가 절반, 할머니가 반에 반 들어있어서 그런 줄은 안다. 그럼에도 나를 구성하는 제일 작은 단위에서 에너지를 내는 방식이 100% 똑같으니까 어쩌면, 과학적 근거는 한 톨도 없지만 정말 어쩌면, 의미가 있지 않을까 문득문득 의심하게 된다.

 우리 집 D들이 한 줄로 서 있으면 아주 가파른 우상향을 이룬다. 할머니 중에서도 더 작은 우리 할머니, 할머니보다 머리 하나 정도 높은 엄마, 그런 엄마보다 또 머리 하나 정도 더 큰 우리 둘까지. 할머니에게는 딸이 우리 엄마 하나뿐이므로 나나 동생이 후손을 남기지 않는다면 D가 끊기려나 잠깐 고민해봤다. 이모할머니 쪽 사람들이 있고 더 멀리는 고모리 사람들이 있을 테니까 D의 멸종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키 작은 엄마와 더 작다란 할머니는 요즘 더위가 한 풀 꺾인 틈을 타 서울숲 산책을 다니신다. 키 작은 여자는 종종 더 작은 여자와의 나들이 얘기를 해 준다. 재밌는 얘기들이 많은데, 이번에는 매미였다. 애매미, 쓰르라미, 참매미, 털매미 등등 어떤 놈이 어떤 놈인지도 모를 것들이 제 각기 목청을 높이는 숲 속에서, 으르르르르르 하고 우는 매미 소리를 두고 할머니가 "찬 바람에 매미가 입이 얼어서 저렇게 운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엄마는 웃으며 "누가 그래요?"라고 물었고, 할머니는 '옛 부터 어른들이 그렇게 얘기하곤 했다'라고 답했고, 엄마는 또 한 번 웃었다. 

 엄마는 재밌는 표현이라고 웃고 말았지만 얘기를 듣던 키 큰 여자는 가장 키가 작은 여자의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며칠 살지도 못하는 매미가 죽을 때가 되어 으으으으으으으으 하고 힘 빠진 소리로 우는 걸 묘사한 게 아닐까 생각했다. 엄마는 으음 하고 고개를 살짝 저으며 종이 다르다고 했다. 

 그렇다면 조금 늦은 시기에 나오는 매미가 그렇게 우는 걸지도 모른다. 십 여 종의 매미 중 좀 일찍 나오는 종도 있고 느지막이 탈피하는 것들도 있을 텐데, 늦여름에 나오는 녀석들의 울음소리를 두고 '입이 얼어서'라고 표현한 걸 수도 있다.

 집에 가서 매미 얘기를 했더니 할머니는 몸소 한 번 더 'rrr' 하고 혀를 굴려가며 '찬 바람에 입이 언' 매미소리를 묘사해 주셨다. 혀 굴릴 줄 몰라서 '르르르'를 한 음절 씩 발음해야 하는 신랑은 신기해하며 내 귓가에 대고 "역시 D는 달라"하고 속삭였다. 









커버 이미지 출처: https://www.istockphoto.com/kr/사진/매미의-실루엣-gm1253738310-366247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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