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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은 Jun 04. 2020

누구나 마음속에 치킨집 하나쯤은  품고 살잖아요?

글 쓰는 딸과 시 쓰는 아빠 - 1. 일


우리 팀은 영상에 특수 효과를 합성하는 앱을 만든다. 


회사에서 육성하는 사내 벤처 프로그램을 통해서 투자를 받아 분사 창업하는 것이다. 사내 벤처 프로그램은 직원들이 제안한 아이디어 중에서 사업성이 있어 보이는 아이디어를 선별하여 1년 동안 회사의 프로젝트로 육성한다. 1년 이후 회사에서 사업화가 필요한 프로젝트는 적당한 사업부로 이관하고, 사업성이 있지만 회사에 적합한 사업부가 없으면 분사 창업을 지원한다. 마지막으로 사업성이 없으면 프로젝트를 중단하고 프로젝트원들은 원래의 부서로 복귀한다. 1년 동안 자신의 사업성을 마음껏 실험해 보고 실패하더라도 원부서로 복귀하면 되기 때문에 항상 인기가 많은 프로그램이다. 한국 사회에서 몇 안 되는 실패가 용인되는 시스템인 것이다.


2019년은 회사에서 우리 팀의 사업성을 시험하고 있을 때였다. 회사에서 다양한 업무를 하는 사람을 만나왔다고 생각했지만 직접 소비자를 만난 적이 없었다. 영상을 만드는 사람이 우리의 장래의 고객이 될 것이고, 영상을 만드는 사람 중에서 혼자서 영상을 제작하는 유튜버들을 만나 보는 것이 첫 번째 목표였다. 


우선은 좋아하는 유튜버들에게 만나고 싶다는 메일을 보냈다. 상당히 많은 메일을 보냈는데, 거의 답장을 받지 못했다. 처음에는 기가 죽었지만, 그 사이에 답변을 준 분들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처음 만난 분은 이 일을 하겠다고 생각하면서 열심히 정독을 하던 강차분 PD라는 분이었다. 논현동에 있는 투썸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내가 워낙 팬이어서, 근처 횡단보도에 서 있는 그분을 보고 진짜 고등학교 동창이라도 만난 듯이 신나게 다가가서 인사를 했다. 인사까지는 아주 신이 났지만, 우리의 사업 계획과 인터뷰 내용에 대해서는 날카로운 이야기를 많이 해주어서 신이 난 마음이 걱정으로 바뀌었다.


“유튜버를 위한 앱을 만드는 팀에서 유튜버가 없는 것은 모순 아닌가요?”라는 말은 정말 마음 깊이 와 닿았다. 나는 그날 집에 가서 채널을 개설했다. 어떤 내용을 해야 할지 몰라서 자기소개부터 시작했다. 당연히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아서 낙심했다. 그 이야기를 우리 팀 사람들에게 했더니 그것이 잘 되어 가는 것이라고 정말 대단하다고 응원해 주었다. 우리 팀 사람들은 긍정적이다.


얼마 뒤에 신사임당이라는 경제 관련 유튜버를 만났다. 스튜디오로 직접 꾸민 작은 오피스텔로 가서 만났다. 화면에서 보는 것과 똑같이 눈빛이 반짝이고 날카로운 분이었다. 만나면 너무 떨어서 질문을 못하거나 머릿속이 하얗게 변할 것만 같아서 인터뷰할 내용을 빼곡하게 종이에 적어서 갔었다. 그는 종이 내용을 보고는 “이런 내용은 메일로 보내주셔도 제가 성의껏 답변드릴 수 있어요.”라고 친절하게 말했다. 날카로움 사이에서 보이는 부드러움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그 날 이후로 나는 그 유튜버의 팬이 되었다.


신사임당 채널은 인터뷰를 연재하는데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나와서 경제와 자기 계발에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중에서 치킨집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치킨집이라는 것은 결국 마음 속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사업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했다. IT 업계에서는 업무가 힘들어서 나가떨어질 때 치킨집을 차린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꿈의 사업을 치킨집으로 생각할 수 있다니 참 부러웠다. 그것을 듣고 보면, 지금 나의 도전도 마음속 치킨집을 하나 차리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여담이지만, 실제로 우리 팀은 진지하게 회사 명을 ‘치킨 그래픽’이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팀 이름을 정하면서 팀원들끼리 장난으로 그림 회사 로고, 치킨 그래픽


그 이후에도 많은 유튜버들을 만났다. 인터뷰를 하기도 했고, 정모를 나가서 개인적으로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그분들은 각자 마음속에 품고 사는 치킨집을 실제로 열어서 치킨을 연구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분위기가 상당히 어색했던 나는 처음에는 주눅이 들었다.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세상에 이렇게나 많은데, 나는 어떻게 살아온 것인가 하는 자책 같은 의문도 들었다. 이런 이야기들을 우리 팀과 나누다 보니 마음속에 있던 응어리가 상당히 해소되었다. 아마도 세상의 시선보다 본인의 기준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용기에 열등감을 느꼈었던 것 같다. 이제는 삐뚤었던 마음이 조금 펴진 것 같다. 지난겨울에는 정모에서 만나 일권이 형을 보고 킥복싱 수업을 들을 정도로 마음이 단단해졌다.


이제는 우리 팀 사람들과 우리 치킨집, 진짜 둘도 없는 맛집을 만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보겠다.





잠자리

          이영배


수변공원 늦여름 꽃밭 

고추잠자리 한 마리

텃새에 쫓기고 쫓기다가

큰 눈알 굴려본다


시 한수 캐내려는 시인 

잠자리 눈알만큼 튀어나올 듯 아프다


요리조리 생각 굴려 보지만 

줄줄이 달아나는 시 한 줄


회오리만 남기고 떠나는 잠자리처럼

지친 시인 핏발 선 눈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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