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는 나에게 협력업체에 인사하는 방법, 엑셀로 버블 차트를 만드는 방법, 특허의 출원과 등록을 구별하는 방법과 같은 업무도 알려주었지만, 슬픔을 업무에 끌어들이지 않는 방법과 웃음을 참는 방법을 가르쳐 주기도 했다. 그것은 나의 생활을 바꾸기에 충분했고, 나는 회사이고 회사는 나인 것과 같은 삶을 이어가게 하였다.
90년대생과 함께 일하는 방법에 대한 책이 유행하고, 나도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TV나 신문에 회사가 잘 나가는 뉴스가 나오면 마음속으로 자랑스러워하고, 회사에 대한 나쁜 뉴스가 나오면 묘하게 기분이 상했다. 분명히 나도 ‘요즘 젊은이’라고 생각하면서도 8년 동안 차근차근 기존 사회의 일부분이 되었던 것이다.
분사 창업을 위한 퇴사를 준비하는 동안 묘한 기분이 나를 맴돌았다. 어느 때는 새로운 시작을 생각하면서 한없이 희망에 부풀었다가도 갑자기 잘 살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밀려왔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서 한참 동안 나의 소개말은 항상 “안녕하세요, OO개발그룹 이정은입니다.”였다. “OO개발그룹”이 나의 소개에서 빠지는 것만으로도 나의 자신감은 바람이 빠진 풍선처럼 쪼글 해질 것만 같았다.
그즈음 아빠의 시를 다시 읽어보았다.
아빠는 60대 중반에 시인이 되셨다. 반평생을 회사원으로 살아오셨는데, 회사원이 아니게 되었을 때의 상실감을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하지 못했다. 아빠도 나처럼 회사와 한 몸이었나 보다. 아빠는 나에게 항상 열심히 회사를 위해 일하는 것이 나라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최선을 다하라고 늘 말씀하셨다. 아빠의 해바라기 DNA는 세대를 이어와 나의 피 속에도 흘렀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