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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나사 Aug 20. 2020

1. 무기력에 지치다

나이 마흔둘에 휴직을 결심하다

남들은 지방 공기업에 다니는 내가 부럽다고 한다. 하긴 IMF가 터지고 회사마다 회생을 위하여 인원 감축을 하다보니 실직자들이 늘어나고 많은 자영업자들은 사업을 접어야 하는 마당에 철밥통인 공무원, 공기업이 인기가 있긴 했다. 9급 공무원이면 예전에는 대학을 진학하지 못한 사람들이나 보는 시험이라고 했지만 이제는 조금 과장되게 말해서 대학 졸업후 모든 졸업생들이 다시 수험생이 돼서 시험준비를 하게 만들었다. 그런 시기에 나는 공채로 합격하여 취업에 성공했다. 요즘같은 시기면 취업 성공 스토리를 만들어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에게 자랑해도 될 것이다. 이쯤에서 나의 이런 자랑이 거북스러운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 거북스러워하지 마시라. 이렇게 합격하고 10년이 넘게 다니고 있으면서 얻은 것은 결국 무기력한 내 자신이니까. 결코 성공적인 인생 스토리는 아니지 싶다. 

이런 내가 너무 비관적이라고 생각하는가. 적당한 나이에 회사에 입사해서 결혼하고 아기낳고 가정을 이루고 남들이 보기에 해야 하는 것들을 해 놓은 것이 어쩌면 회사에 입사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아직 희망이 있다. 인생의 좋은 면을 볼 줄 아는 사람이니까. 이런분들은 내가 


                            “무기력에 의한 우울증 때문에 죽을 것 같아요


라고 말해도 이해 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정말 무기력이 심해지는 날이면 이렇게 글을 쓸 마음의 여유조차 생기지 않는다. 다행히 지금은 약을 먹어서 그런가 글을 쓸 여유정도는 생겼다. 이럴 때 글을 많이 써 두어야한다. 언제 또 지킬박사와 하이드처럼 내 안의 어두운 자아가 튀어나와 나를 무기력의 늪에서 허우적 거리게 만들지 모른다. 

 심리학에서는 무기력을 ‘자발적으로, 적극적으로 행하지 않는 것’ 또는 ‘현저하게 의욕이 결여되었거나 저하된 경향’ 이라고 정의한다. 한마디로 ‘의욕이 없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란 뜻이다. 그러면 하고자하는 의욕을 내면 되지 않겠느냐 하겠지만 그건 진짜 무기력에 빠져보지 못한 사람이 하는 말이다. 의욕을 일부러라도 낼 수 있는 사람은 무기력한 것이 아니라 게으른 것에 가깝다. 게으른 사람은 의욕을 낼 수 있지만 일부러 안내는 것이고 진짜 무기력에 빠지면 의욕을 안내는게 아니고 의욕이 없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진짜 무기력에 빠지면 신체적으로도 힘들다. 즉 몸과 마음이 모두 아프다. 감기 몸살이라면 약을 먹고 푹 쉬면서 기력을 되찾으면 되지만 무기력에 빠지면 쉴수록 점점 무기력의 늪에 빠진다. 빠져나오려 안간힘을 쓸수록 점점 더 깊은 곳으로 빠지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상태로 회사생활을 한다는데 있다. 더욱이 무기력은 겉으로 표시가 나지 않는다. 남들이 보기에 나는 정상이다. 겉으로는 남들과 똑같이 생활하지만 마음속은 이미 전쟁중이다.


 "남이 하는 얘기에 공감도 하고 업무를 하는데도 정상적으로 하고있지만 마음은 그렇지않은 것이다."


모든 것에 점점 주눅들어 간다. 상대방이 하는 이야기에 대해 점점 집중이 안되고 업무도 생각없이 기계적으로 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무기력이 최고조에 달하면 말수도 적어지고 업무도 점점 손을 놓고 미루게 된다. 모든것이 ‘의욕없음’으로 인해 내 몸하나 버티는데 남들보다 몇배의 에너지를 써야한다. 회사에서 인간관계란 야생의 생리와 같다고 할수 있다. 자신보다 약해 보이면 공격당한다. 남에게 싫은 소리 쓴소리 잘하는 직원이 일잘하는 것이고 자신을 자신있게 어필하는 사람이 인정받는다. 하지만 무기력에 빠지면 이 모든 것이 하기 싫어 진다. 모든 것이 소극적으로 변한다. 그래서 나는 직장상사에게 인기가 없다. 물론 고과점수도 좋은 편이 아니다. 그래서 더 주눅든다. 악순환이다.

 무기력은 누군가와 비교당할 때 더욱 힘을 발휘한다. 그런데 회사는 반드시 줄을 세워 비교를 해서 순위를 결정해야 돌아간다. 나는 항상 순위 밖이였다. 입사당시에는 좋은 성적으로 회사에 들어왔다. 하지만 회사생활한지 10여년이 흐른 지금은 동기들 중에서도 진급이 제일 늦었고 각자가 고유 업무를 가지고 인정받으면서 지내고 있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다시 말해 업무적으로 특이성이 없는 그런 직원이다. 그러니 당연히 회사 생활이 재미 없을 수 밖에 없다. 더 이상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무기력은 스펀지에 물이 흡수되 듯 서서히 나를 조여온다. 무기력에 빠져 나와의 힘든 마음의 싸움을 하는 날이면 외부의 상황에 대처 할 수 있는 여유가 없어진다. 그러니 조그만한 외부 자극하나에도 마음은 이미 폭풍이 지나가듯 겉잡을 수 없는 큰 소용돌이가 친다. 

그러다 어느날 결국 사고를 치고 말았다. 감정은 풍선 효과처럼 한곳을 누르면 다른 곳에서 터지게 되어있다. 외부에서 오는 자극들을 어떤 식으로든 내부에서 소화해서 외부로 표출해야하는데 늘 꾹국 담아만 놓고 있으니 어디선가 터지기 마련이었다. 그날에 있었던 일을 말하기전에 먼저 내 사고방식을 바꿔준 책 한권을 먼저 말하는 것이 그날 나의 행동에 조금은 이해를 바랄 수 있겠다. 다음은 [의식혁명(데이비드 호킨스 지음)]란 책에서 소개된 의식의 밝기에 대한 표이다. 

미국의 정신 진화 전문가 데이비드 호킨스는 인간의 의식 수준을 위의 표와 같이 나누고 의식의 밝기로 수치화하여 점수에 따른 의식수준,감정,행동으로 나누어 의식의 형태로 나열하여 인간의 정신상태를 나타내었다. 무형의 정신 상태를 수치화 한다는 점에서 맞다 틀리다 판단할수 없지만 신선하긴 하다. 이 표를 보면 무기력은 50으로 상당이 낮은 의식수준이며 죄의식과 수치심 다음으로 위험한 상태이다. 200을 분기점으로 놓고 볼 때 긍정과 부정으로 나뉘어지는데 의식의 수준을 용기의 상태로 낸다면 그 하위 레벨들은 모두 극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뜬금없이 의식의 수준이니 하는 어려운 말로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지 궁금할 것이다. 그건 바로 내 행동에 대한 이유를 전문가의 의견을 통해 말한다면 조금이라도 나에 대해 공감시킬 수 있다고 생각해서이다.

 무기력에 빠져 회사를 출근하는 날이면 평소보다 몇 배의 힘이 든다. 그날도 난 무기력에 힘들어 하며 회사를 출근했다. 회의 시간에도 집중이 되지 않고 가슴이 계속 답답해서 심호흡만 계속 했다. 그런데 부서에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해야 되었고 부서장은 당담자로 나를 지목했다(왜 나를 지목했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새로운 사업을 진행하려면 무엇보다도 집중력있는 의지가 필요했다. 데이비드 호킨스의 의식 지도에서처럼 나에게는 할 수 있다는 ‘용기’가 필요했다. 하지만 무기력의 상태에서 용기를 갖기란 너무 힘들었다. 창의적인 업무에 집중해서 일해도 모자랄 마당에 나는 점점 무기력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러니 업무에 실수도 잦았고 전체적인 업무 흐름도 놓치고 말았다.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최선을 다하자와는 달랐다. 강박관념은 실수 하나에도 강한 집착을 보였고 결국 난 일을 제대로 성사시키지 못해 다른 직원이 인계받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면서 부서장이 한 마디했다.

 

“양 대리는 업무에 좀 더 집중하는게 필요해”


드라마에서처럼 서류판을 집어던지며 말을 했던 것도 아니고 그냥 지나가는 말로 대수롭지 않게 참고만 해도 될 말이였다. 하지만 그때 나는 수치심을 느꼈다. 왜냐하면 내가 두려워하고 있는 마음상태를 들켜버린 것 같았다. 데이비드 호킨스의 의식지도에서 수치심은 인간이 느끼는 마지막 최악의 단계였다. 나의 감정이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온 것이다.

 그 길로 나는 회사 앞 공터에 앉아 하늘을 보았다. 손이 떨리고 하늘이 노랗게 보였다. 이런 노란 하늘을 예전에 본 적이 있다. 고등학생때 기말 고사를 망치고 망연자실해서 본 하늘과 같은 색이였다. 수능만 보면 시험이 끝날 줄 알았는데 인생 자체가 시험인 것을 새삼 깨달았다. 내 안에는 고등학생 때 운동장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던 나를 발견했다. 갑자기 어머니가 보고 싶었다. “엄마, 저예여” 나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이 시간에 니가 웬일이냐?”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자 갑자기 울컥했다. 나이는 마흔이 넘었지만 아직 어머니의 목소리에 눈물을 흘리는 어린아이였던 것이다. “그냥 식사 하셨나 궁금해서 전화했어요” 나는 감정을 추스르고 이유를 둘러되었다. “밥은, 지금이 시간이 몇신데 벌써 먹었지. 야. 내가 니 아버지 때문에......” 아들이 오랜만에 전화해서 인지 어머니는 신이 나서 아버지 흉을 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 어머니의 푸념을 듣고 전화를 끊었다. 기분이 좀 가라앉는 것 같았다.

 그렇게 기분을 가라 앉히고 나니 희한하게 생각이 정리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너 언제까지 이렇게 살래” 나에 대한 회의가 느껴졌다. 그리고 내 마음 상태를 치료하고 싶었다. 이대로 회사 생활을 계속 유지한다면 언젠가 나는 증발해버릴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월급을 받아 돈을 벌고 가족을 부양하는 것보다 나를 먼저 치료해야겠다는 이기적인 생각이 들었다. 

 그날 저녁 아이들은 학교에서 돌아와 텔레비전을 보고 있고 일을 마치고 돌아온 집사람도 빨래를 개며 간간히 아이들과 같이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나는 쇼파에 앉아 집사람에게 꺼내야 할 말을 생각하며 눈치를 살폈다

“여보, 나 할말있는데”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무슨 할말, 또 뭐가 필요한데” 집사람은 농담식으로 받아주었다. “음...나 일년만 휴직해보면 안될까”나는 그냥 본론부터 말했다. 모든 것을 설명하기엔 너무 벅찼다. “......” 집사람이 말이 없었다. 

“당신이 하고 싶으면 해”

그리고 약간의 시간이 흘러(아니 긴 시간처럼 느껴졌다.)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집사람을 설득시키기 위해 이것저것 핑계거리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흔쾌히 허락해주었다. 

“쉬면서 공부도 더 하고 싶고...대신 집안일은 내가 다할게”

궁색한 변명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휴직에 대한 열망이 컸다. 다행히 집사람이 운영하는 학원사업이 잘 되고 있어서 내가 수입이 없어도 가정경제를 유지할 수 있었고 둘째 아이의 나이가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 연령이어서 회사를 일년정도 쉴 수 있었다. 

일단은 휴직을 쓸 수 있는 조건이 되니 회사에 통보만 하면 되었다. 막상 휴직을 결정하고 나니 모든 준비가 순조롭게 진행 되었다. 그렇게 무기력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한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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