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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나사 Aug 21. 2020

3. 코로나, 복병을 만나다

2020년 1월 20일 국내 첫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관심을 받던 코로나는 2월 18일 신천지 교인인 31번 확진자가 나오면서 관심이 아닌 위기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대구 경북 지역에 급속도로 확진자가 나오면서 몇 사람의 문제가 아닌 모두의 문제가 되버렸다. 연일 신문과 메스컴에서는 확진자 발표가 끊이질 않았고 코로나에 대한 공포는 나날이 증가했다.

 

휴직을 시작했을 때 코로나에 대한 기사가 나왔을 때는 메르스나 사스처럼 뉴스에서나 확진자를 확인하겠구나 했지만 이번 전염병은 좀 달랐다. 왜냐하면 엄청난 전염률이 전세계를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영화에서나 보던 팬데믹이 현실에서도 일어나고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불안에 떨었고 마스크가 예방책이라고 하니 마스크 사재기가 기승을 부렸다. 결국은 품귀현상에 마스크가격이 하늘 높은지 모르고 치솟았다. 

 코로나 유행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을 제한하게 만들었다. 학교나 교회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는 집합금지 명령이 떨어졌고 그 여파는 집사람이 하는 학원에 까지 영향을 미쳤다. 학원생들이 코로나 때문에 학원에 나오지 못하자 학원 수입이 줄었다. 심지어 시간이 지날수록 코로나 감염이 지역사회로 번지자 수입이 전무한 달도 생기게 되었다. 

휴직 후 집사람의 수입이 전부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휴직한 것이 후회가 되진 않았지만 집안 경제에 대한 걱정이 되었다. 저축한 돈으로 일년을 버티기가 쉽지 않았다. 아니 몇 달을 못 버틸것이라고 생각하니 복직에 대한 심적 압박이 되었다. 하지만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회사에다가는 일년후에 뵙겠습니다 라고 당당히(?) 말하고 걸어나왔는데 몇 달도 안되서 다시 복직한다는 것이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모든 계획도 엉망이 된 것이다. 나라 전체가 심난한데 그 속에서 내가 결심한 무기력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한 시간도 여유도 찾을 수가 없었다. 

누가 그랬다. “진정한 위대함이란 다른 사람이 미쳐 날뛰는 상황속에서 조용히 자기 실현을 하는 사람이다.” 라고 말이다. 하지만 나에게 진정한 위대함을 실현하기에는 무기력에 지쳐 있는 몸과 마음이 도와 주지 않았다. 지금 시국에 멀쩡한 사람도 코로나 때문에 미쳐가는 마당에 무기력에 힘들어하던 나 역시도 더욱 무기력의 수렁에 빠져 들었다.

 제일 힘들었던 것이 가족들 앞에서 우울해하지 않은 척 하기였다. 코로나 때문에 가족들이 모두 집에 있어서 같이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자 내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관찰(웃음)당하였다.

한번은 딸아이가 이렇게 물어왔다


“아빠, 화났어?”


마음의 무기력이 표시가 안나는 것 같았지만 아이들에게 표정을 들켜버린 것이다. 갑자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건강한 가장이라면 이런 상황에서도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내 마음 하나 추스르지 못하면서 어떻게 가정을 책임질 수 있을지 몰랐다. 그런 모습을 들켜버리자 또 다시 무기력이 찾아왔다. 무기력은 현재 상황을 더 이상 통제할 수 없을 때도 나타난다. 나의 한계가 여기까지 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더욱 답답해지는 것을 느꼈다.

 내 모든 에너지를 무기력에 대해 생각하다보니 몸이 지쳐갔다. 몸이 피곤해지는 것을 느꼈다. 잠만 계속 잤다. 내 몸을 지키기 위해 나의 뇌가 잠을 자라고 시키는 것이다. 의욕은 점점 없어지고 무기력은 나를 점점 죄여왔다.  회사일을 잠시 내려놓고 나를 찾아보고자 한 휴직이 나를 점점 옭아매고 있는 상황이였다.

 어느날이였다. 그날도 나는 침대에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간신히 눈을 떠서 보니 아이들과 집사람은 각자 할 일을 하고 있었다.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기도 하고 레고를 조립하기도 했다. 집사람은 어딘가로 통화를 하며 노트북을 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각자 할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 부러웠다. 마음이 건강한 사람은 이런 상황도 일종의 휴식인 셈이였다. 하지만 나에게는 무기력 그 자체였다.

그러다가 집사람이 하는 일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전화통화 내용도 들리기 시작했다. 가만히 들어보니 누군가에게 조언을 구하는 중이였다. 코로나가 유행하고 제일 불편했던 것이 사람끼리 접촉을 제한하는 것이였다. 그러니 학원에서도 학생들과 접촉을 제한할 수 밖에 없었다. 학원을 운영해 나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학부모들이 코로나로 인하여 아이들을 집밖에 나가지 못하게 한 것이다. 그러자 집사람이 선택했던 방법은 온라인 수업이였다. 학원 커뮤니티에서 앞으로 코로나 유행이 더 심해질것이라고 예상해서 온라인 수업을 준비해야 한다고 한 것이다. 그래서 집사람은 온라인 수업을 진행할 프로그램을 배우고 동영상 강의도 만들어서 학생들에게 보급할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에서도 온라인 수업방식을 택해 개학을 했다. 온라인은 비대면이므로 코로나의 전염성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방식이었다. 

위기의 순간에 탁월한 선택을 한 것이었다. 

비록 학원생이 반이나 줄었지만 온라인 수업을 진행한 덕분에 가계를 꾸려나갈 어느정도의 수입이 생겼다.

 집사람의 이런 변화에 대한 선택의 순간들을 보면서 나의 모습을 반성하게 되었다. 나는 지금 어떠한가. 무기력을 핑계로 변화의 순간에 주저앉아 버린 것은 아닌가 싶었다. 문제를 고민만 하지 말고 해결할 생각을 해야했다.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주저앉아 버리지 말고 더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갈 방법을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의 상황을 이겨낸다면 나의 의식은 더 높은 곳에 있을 것이다. 이렇게 용기를 내니 무기력으로 힘들어하던 몸이 점점 회복되어 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 이 상황을 이겨낸다면 나의 의식은 좀 더 높은 곳에 있을 것이야”


생각을 바꾸면 의식도 변하게 마련이다. 상황이 나를 힘들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에 대한 생각이 감정을 지배하는 것이었다. 무기력의 상황이 생겼을 때 내가 무기력의 감정에 빠지는 것은 상황과 감정 사이의 생각 때문에 무기력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지금 나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생각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았다.

      

첫째, 휴직한 상황에서 가정경제에 문제가 생길까봐 걱정하는 것

둘째, 휴직을 선택한 지금 상황에서 계획한 것을 못하는 패배자가 되는 것

셋째, 무기력을 해결하지 못한 채 복직할지도 모른다는 것

     

위의 세가지를 종이에 적고 해결방법을 생각해보았다. 고민만 하고 있지 말고 해결책을 찾아보고자 했다. 첫째 생각의 해결책을 위해 나는 우선 통장 잔고를 확인했다. 그동안 벌어온 수입을 경제적으로 쓰기 위해 통장 쪼개기를 했지만 이번에는 흩어져 있는 금액들을 모두 모으기 시작했다. 집사람의 수입까지 합치면 세달은 버틸 수 있었다. 그리고 돈이 모자라면 카드론 대출등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당분간은 가정 경제에 어려움이 없어보였다. 둘째는 코로나로 인하여 어수선한 상황에서 계획한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것이였다. 우선 기술사 공부를 하기로 했지만 도서관들이 모두 잠정 휴관에 들어가서 공부를 하지 못하는 것이였다. 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있자니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가 없었다. 하지만 꼭 도서관에서만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였다. 그래서 나는 방 한쪽에 공간을 만들었다. 가구 배치도 다시 하고 집안 정리를 하니 내가 공부할 수 있는 책상을 놀수 있는 공간이 나왔다. 아이들에게 방해 안 받는 시간에 틈틈이 공부를 하면 될 것이었다. 셋째는 무기력을 해결하지 못한 채 회사를 다시 다닐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느껴진다는 것이다. 패배자. 기회를 살리지 못하는 패배자가 되는 것이 싫었다. 하지만 누구를 위한 패배인지 의문이 들었다. 아무도 내게 패배자라고 말한 적이 없었다. 이대로 복직한다면 회사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지 그것이 걱정된 것이다. 


“남의 기준대로 살아서 얼마나 잘 살아온거지?”


이런 생각이 들자 마법처럼 가슴이 시원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렇다. 이런 생각이 떠오르자 복직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졌다. 남들의 눈이 뭐가 중요한가, 중요한 것은 내가 내 스스로를 얼마나 자랑스럽게 생각하느냐였다. 나에 대한 믿음과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였다. 남의 기준대로 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자 나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넌 무기력을 이겨낼 수 있어, 이겨낼 수 있는 용기만 가지면 돼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었다. 이렇게 지금 나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생각에 대한 정리를 끝내자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문제는 이런 깨달음에 대한 마음의 자유로움이 얼마 가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또 다시 무기력에 빠져 힘들어할 것이다. 뇌는 시간이 지나면 익숙한 쪽을 선택한다고 한다. 또 다시 무기력이 찾아오면 나는 주문을 외울 것이다.

“넌 무기력을 이겨낼 수 있어. 이겨낼 수 있는 용기만 가지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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