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나사 Aug 21. 2020

2. 휴직을 선포하다


막상 휴직을 한다고 생각하니 준비해야 될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였다. 우선은 팀장님한테 면담 신청도 해야 하고 휴직 후에 막연하게 쉬는 것은 무기력에 힘을 실어줄 것 같아서 무기력을 잊을 만한 무엇인가를 해야했다. 그래도 회사를 잠시 쉰다고 생각하니 오랜만에 느껴보는 마음의 자유로움이 좋았다. 무엇을 해야 할지 리스트를 작성하는 것도 또 하나의 즐거움이였다.

일단 신년 다이어리를 샀다. 휴직하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그날의 일들을 기록해보고 싶었다. 어쩌면 일생에서 일 년간 주어지는 자유로움이 흔한 기회는 아니였기에 모든 순간을 기록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서점에 들려 나와 같이 휴직을 한 작가들이 쓴 책을 몇 권 골랐다. 미리 쉬어본 사람들이 어떤 생활을 했는지 또는 어떤 생각들을 했는지 참고해보면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나처럼 무기력에 빠져 회사 일에 적응하지 못하고 휴직을 한 내용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렇게 예쁘게 포장된 다이어리와 도움이 될 만한 책 몇 권을 골라 집으로 향했다.

12월의 차가운 바람이 옷속에 스며 들어와 몸이 떨렸다. 하지만 이제 곧 쉰다고 생각하니 발걸음이 가벼웠다. 그때 지하철을 타러 가던중 계단을 힘들게 올라가고 있는 여자를 보았다. 젊은 여자가 계단을 왜 이렇게 힘들게 올라가지라고 생각하면서 그 여자를 지나쳐 가려는데 느낌이 이상하여 뒤를 돌아보니 눈이 안보이는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였다. 젊은 여자가 안됐다고 생각하며 남은 계단을 마저 올라가는데 맞은편에서 내려오고 있는 젊은 남자를 발견했다. 추운날씨에 반바지에 반팔을 입고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한 손에는 지팡이를 든 것이 한눈에 봐도 눈이 안보이는 장애를 가진 남자였다. 그러고 보니 뒤에 있는 여자도 손에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둘은 지팡이로 바닥을 짚어가며 오르 내리고 있었다. 둘이 엇갈리는가 싶더니 이내 서로의 존재를 알았는지 서로 웃었다. 눈에 보이지는 않겠지만 그들은 분명히 서로 웃음을 주고 받았다. 그리고 남자는 여자에게 다가가서 “춥지?” 하며 여자를 꼬옥 안아주었다. 연인 사이인 것 같았다. 다만 일반적인 연인사이가 아닌 눈이 보이지 않는 그런 연인 사이였던 것이다. 

난 어려서부터 장애를 가진 사람들중에서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제일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볼수 없다는 것은 아마도 늘 어둠속에서 무언가를 해야만 했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것들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제일 절망적일 것 같았다. 물론 나도 귀 한쪽이 안들리는 청력장애를 가지고 있다. 어렸을 때 감기를 심하게 앓았는데 그때 중이염이 심해져 한쪽 청력을 잃었다고 했다. 하지만 눈이 안보이는 장애만큼 살아가는데 힘든 것은 아니였다. 지금까지 잘 살아왔으니 다른 장애를 가진 사람들보다는 힘들지는 않았다. 그런데 눈이 안보이는 연인사이를 보니 갑자기 공허함이 느껴졌다. 저들 보다는 난 너무 많이 가진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그 가족들이 생활하는 모습을 매일 볼 수 있다는 것, 이것이 행복이지 무엇이 행복일까

나는 무엇을 위해 삶에 무기력을 느끼는 걸까. 최소한 눈이 보인다는 사실 만으로 난 이미 다 가진 것인데 난 왜 삶의 무기력을 가지고 살아가는 거지. 그렇게 멀어져가는 두 남녀의 뒷모습이 나보다 더 행복해 보였다.  

한편 지금 내 모습에 다행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가슴을 짖누르고 있던 무기력도 없어지는 것 같았다. 어쩌면 무기력을 치유할 수 있는 힘이 내 안의 어딘가에 존재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번 휴직을 통해서 그 힘을 되찾는 것이 목표가 되었다. 


“그래 나도 할 수 있어. 마음의 족쇄를 풀고 나도 자유로워 질 수 있어”


갑자기 용기가 생겼다.


“그랬구나. 나는 용기가 없었구나. 자유로워 질 수 있는 용기가 없었어”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나와 아무 상관없는 타인에 의해 난 잠시지만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데이비드호킨스의 의식지도에서처럼 깨달음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정신상태이다. 잠시지만 그렇게 난 행복을 느꼈다.

집에 들어와 난 오늘 일을 다이어리에 남기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 회사에 출근하면 팀장님께 선전포고를 해야 했다. 직장상사 울렁증이 있는 나에게 팀장님과 개인 면담은 입사면접 만큼이나 떨리는 순간이였다. 낮에 있었던 깨달음도 시간이 지나니 무기력에 잠식되어 서서히 그 느낌을 잃어갔다. 일찍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그렇게 뒤척이다 새벽을 맞이한 듯 싶더니 어느덧 핸드폰에서 아침 알람이 울리기 시작했다. 

회사에 출근해서 팀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내선번호를 누르자 신호가 갔다. 잠시뒤에 팀장님이 받았다

“팀장님 , 저 개인 면담시간좀 내주십시오”

“그래, 알았어, 본사 사무실로 오게”

일의 특성상 분소 개념으로 부서가 나눠줘있고 나는 본사에서 조금 떨어진 사무실에 있었다. 그렇게 팀장님과의 면담 시간을 약속하고 잠시 뒤 나는 본사 사무실로 넘어갔다. 

“어, 양대리 오랜만이야. 무슨 일있어 면담신청을 다하고”

“예, 육아 휴직을 쓰고 싶어서 면담 신청했습니다.”

짧은 인사를 하고 이야기는 바로 본론으로 넘어갔다. 나는 휴직 의사를 밝혔고 팀장님은 승낙을 해주셨다. 의외로 휴직을 허가 받기가 쉬었다. 하긴 회사에서도 존재감없는 나였기에 회사에서 나 하나 없다고 표도 안날 것이다. 그래도 한번은 잡을 줄 알았는데(웃음)

그렇게 면담을 마치고 부서로 돌아오니 소식은 이미 널리 퍼져있었다. 작은 조직이라 소문이 빨리 퍼졌는지 아니면 나의 휴직소식이 갑작스러운 것이였는지 평소 친분이 있는 타부서 사람들까지 얼굴을 마주치면 나의 휴직에 대한 궁금증을 물어왔다.

“왜 좋은 데 가려고 그래?”,“ 이거 이대로 쭉 못보는 거아니야”,“왜 휴직 하는 거예요”

모두들 물어보는 방식은 달랐지만 나의 휴직에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그렇게 관심 받으니 오랜만에 인생의 주인공이 되는 느낌이었다. 어릴적부터 누가 나에게 관심을 주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다. 학생때에는 곧 잘 공부를 했어도 칠판옆에 성적순대로 등수를 매겨 붙여놓는 것도 싫었다. 어쩌다 학업우수상을 타오면 부모님은 좋으셨는지 그 상을 들고 동네에 자랑을 하러 다녔는데 그것이 싫었던 나는 상장을 찢어버린 적도 있었다. 유별난 성격탓에 부모님이 마음고생도 많이 했을 것이다. 그렇게 관심과 비교를 싫어하던 아이는 자라서 관심과 비교가 회사생활의 대부분인 곳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이렇게 무기력에 빠져있던 것이다. 관심과 비교를 유별나게 싫어했지만 사실 나는 관심받고 싶어했는지도 모른다. 남들과 비교해서 유능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정말로 오랜만에 느끼는 관심에 이렇게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보면 사실 나는 관심과 비교에 집착했던 것이다.

 휴직을 하려면 회사에서도 행정절차가 필요했기에 나는 휴직 하기 한달전에 미리 알렸다. 그러니까 한달 동안은 회사를 계속 다녀야했다. 그렇게 나는 “휴직할 직원”으로 한달을 다녀야했다. 매년 초에 회사의 인사이동이 있기 때문에 인사이동 시기에 휴직할 마음이였다. 부서간 업무에 차질이 생기지 않게 그래도 시기를 생각해서 결정한 것이었지만 나의 휴직이 회사의 업무에 차질이 생기지는 않을 것이었다(괜한 것에 마음을 쓴 것이다). 하긴 괜한 것에 마음쓴적이 어디 한두번이랴. 나의 기준보다 남의 기준에 늘 신경 써야 했다. 그래서 남이 하는 말과 행동 하나가 마음에 걸릴때면 몇일이고 최선을 다해 힘들어했다. 생각이 반복되다 보면 집착이 되고 집착은 무기력을 낳았다. 답답한 마음에 여기저기서 읽은 책의 내용을 참고해 보자면 나의 이런 반복적인 마음의 작용은 사실 뇌에서 일어난다고 한다. “그것은 뇌다”의 저자 다니엘G 에이멘에 따르면 “불안하거나 우울하거나 강박증이 있거나 화를 참을 수 없거나 쉽게 주의가 산만해진다면 당신은 아마도 이런 문제가 성격 탓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마음을 고쳐먹어야 한다고 자신을 몰아세울 것이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문제는 마음이 아니라 뇌가 문제인 것이다”라고 했다. 즉 뇌에 그려진 의식작용의 패턴이 반복적인 행동을 하게하고 그런 반복적인 행동 때문에 무기력에 빠지는 것이다. 다행인 것은 뇌에서 작용하는 의식의 패턴이 지금까지의 생활양식에서 비롯됐듯이 새로운 의식의 패턴으로 리셋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건 바로 생각의 전환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생각의 전환은 뇌에 환기를 시켜주고 새로운 생각패턴이 형성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은 길고 지루할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40년이 넘게 몸에 익숙하게 배어진 습관들을 버리고 새로운 생각 습관을 가지려면 한 두 번만의 생각의 전환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실 진짜 무기력에 빠질때면 이런 이론을 알고 있는 나로써도 단순히 생각의 전환만으로 기분을 끌어올릴 수는 없었다. 전문가들의 말하는 진정한 생각의 전환은 다른 큰 의미가 있을거라 생각하고 앞으로 최선을 다해 몸소 체험해 볼 생각이다. 

 다시 나의 휴직 이야기로 돌아와서, 그렇게 나는 회사에 휴직 통보를 했고 홀가분한 기분으로 회사 생활의 한달을 즐기면서 다녔다. 마치 제대를 앞둔 말년병장의 기분으로 마음의 여유를 갖고 회사 생활을 하자 무기력도 어느 정도 치유가 되는 듯 했다. 하지만 방심하면 안되었다. 나는 회사를 영원히 쉬는 것이 아니라 잠시 쉬었다가 언젠가는 다시 회사로 돌아올 것이다. 그때도 무기력에 빠져 나의 인생을 무의미하게 만든다면 그때는 돌아갈 곳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업무에 집중하기 보다는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가졌다. 나를 관찰하는 시간을 가진 것이다. 어느순간에 내가 우울감에 빠지는지 어느 순간에 나의 의식이 저 깊은 무기력의 수렁에 빠지는지 관찰하는 것에 시간을 투자했다. 그렇게 나는 회사일은 잠시 접어두고 나에게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한달은 훌쩍 지나갔고 나의 휴직 생활은 시작되었다

이전 01화 1. 무기력에 지치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