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항아리에 천천히 물을 채우듯 신념은 만들어집니다.
어리버리 신규교사
신규교사 시절, 대학을 졸업하고 1년이 지나 합격을 했으니, 그때의 내 나이 24살이었다. 참 어리고 어여쁜 나이였지만, 채워짐이 없는, 아니 채워져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그저 해맑은 선생님이었다.
처음 맡은 업무는 교무일지계였다. 그 당시에는 교무일지라는 것이 있어 손으로 직접 작성을 해야 했다.
업무에도 어리버리, 그다음 해 맡은 담임도 어리버리, 수업도 어리버리 하면서도 교사가 되었다는 기쁨은 늘 가슴 한구석에서 뛰고 있었다.
신규교사에게 수업과 학교에 열정을 다하는 선배교사, 사명감을 가지고 흔들림이 없는 탄탄한 교사로서의 가치관을 가진 선배교사가 있다는 것은 교사로 발을 딛는 첫해에 큰 행운이다.
나에게는 그 행운이 없었다.
그 당시 나에게 와 닿은 학교의 분위기는 ‘함께, 으쌰 으쌰’가 아니라 ‘침범하지 마’였다.
혼자서 끙끙 앓거나, 인터넷 정보나 책을 통해 학급 담임의 일, 수업의 고민들을 해야 했고 학교에서는 아주 사적인 이야기들이 오고 가며 하하호호해야 했다.
저 선생님의 수업이 궁금한데..
저.. 선생님의 담임 활동이 궁금한데..
저… 선생님은 어떤 교사일까?
수많은 물음표는 학교의 침묵의 분위기 속에서 한없이 작아졌다. 일을 열심히 하시는 선생님은 말수가 적으셨고, 일을 열심히 하지 않으시는 선생님의 이야기는 주로 학교 밖의 이야기들이었다.
수업은? 알 수가 없었다. '침범하지 마' 분위기였기에,
수업은 공식적인 공개수업 날에나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일상의 수업이 아녔기에 자연스럽지 못했다. 마음이 불편했다.
수업의 한 시간은 수업자인 교사의 영역이니, 함부로 침범할 수 없다는 게 무언의 약속이었다.
어리버리 신규교사 타이틀로 풋풋했던 2005년의 이야기이다.
분위기는 어리버리한 사람의 신념을 잊게 했다.
아니 어쩌면 큰 신념이 없이 시작한 교사라는 이름표였을지도 모른다.
경력 5년 차 조금은 알듯, 말듯
시간이 흘러 벌써 5년 차 경력교사였던 나에게, 담임교사로서의 노하우가 생기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스크랩한 담임의 학급활동들과 상담활동 등의 자료들을 잘 다듬어 활용했고, 아이들과의 레포 형성도 조금은 나아졌다. 수업은 여전히 갈팡질팡, 무언지 모르게 계속해서 결핍의 상태이고, 수업은 두려운 존재였다.
아이들이 열심히 활동을 해주었으면 좋겠고, 멋진 결과물을 만들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수업을 준비했지만, 항상 한구석이 텅 빈 느낌이었다. 돌이켜보면
부족한 느낌, 채우고 싶은 욕심, 시행착오들은 부정의 언어이지만 신념을 만들기에 꼭 필요했던 경험이었다.
7년 차에 긴 육아휴직
엄마가 되었다. 그리고 수많은 날동안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재웠다. 그랬더니 내가 학교에서 만난 수많은 아이들 얼굴이 스쳐갔다. 좀 더 관심을 가졌더라면..
좀 더 따뜻하게 이야기했더라면.. 어땠을까? 그저 작은 물음표를 가진 교사로 만났던 아이들과의 형식적 만남들이 나는 너무나도 아쉬웠다. 엄마의 마음이 교사에게 덧 입혀지며 드디어 나에게 신념이라는 작은 씨앗이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중간 복직 1년
학교를 이동하여 5년만에 복직을 하게 되었다. 고3 담임을 맡아 아이들의 기초조사서를 3월이 되기 전 받아 사전 파악을 위해 하나씩 읽어가며, 나는 펑펑 울었다. 아이들의 이야기들에 마음이 쓰리고 아팠다. 신념의 작은 이야기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내가 만난 아이들을 세상에
빛이 될 수 있게 하자”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들의 장점과 목표를 이끌어 내기 위한 상담과 활동들이 중요했다. 담임으로서는 학기초 상담에 열의를 다했고, 수업에서는 단원과 주제에 맞추어 아이들의 미래역량을 키워주기 위한 활동을 구상했다. 무엇보다 활동을 통해 “나도 할 수 있어”,
라는 뿌듯한 성취감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아이들에게는 자신에 대한 신뢰와 뭐든 도전하는 자신감이 필요했다. 그해, 취업과 진학을 위해 온 힘을 다 쏟아
입시에도, 취업에도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교사의 신념은 점점 차올라 학교의 모든 일과 수업에서 두려움이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건 교사로서의 삶이 선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오랜만의 학교생활이라 1년 내내 들떠 있었다.
그래픽 작업한 이미지를 실제로 제품으로 만들어 내는 경험을 직접 해보게 하고 싶어 실크스크린 기계를 사비로 구입해 고속버스터미널에 물품을 받으러 가기도 하였다. 합창대회에서는 여자 친구의 교복을 빌려 입고 학생들 사이에서 노래하고 춤을 추기도 하였다. 졸업식날 전체 학생 졸업가운을 대여하여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역시나 지나고 나면 아쉬움 투성이었다. 특히 수업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그 아쉬움을 안고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내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1년을 다시 쉬게 된다.
다시 휴직
1년의 꽃 같은 시간이 지나갔다. 나는 또 잠시 “엄마”로 잠시 머물렀다.
그러면서 지난 1년간 결핍으로 남았던 수업의 문제에 대한 해결을 찾기 위해 수많은 교육 서적을 찾아보고, 수업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변하였다. 그 이면에는 답답함도 있었고, 앞으로 남은 교직 생활이 행복하고 싶은 개인적인 바람과 내가 만나는 아이들과 수업을 통해 진짜 만남을 하고, 아이들을 성장시켜 세상에 빛이 될 수 있게 탄탄하고 흔들림이 없는 땅을 만들어 주고 싶은 신념이 있었다.
복직 후 앞만 보고 달린 3년의 시간
이상하게 학교에만 가면 에너지가 나왔다. 지치지 않았다.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았고, 일에 빠져, 수업에 빠져 지난 3년을 달렸다. 진짜 열심히 뛰었다.
수업 알아차림(수업과 성장 연구소) 통해 진정한 내 수업의 지향점을 발견하게 된 일은 교직생활 중 최고의 선물이었고, 수업연구대회에서 도대회 1등급, 전국대회 1등급의 영광이 있기도 하였다. 수업전문가 활동을3년간 하며 내실을 쌓았고 무엇보다 수업성찰 활동지, 그리고 취업과 입시에서 보여준 아이들의 성장이 나에게는 큰 힘이 되어 뛰고 더 열심히 뛸 수 있었다.
물론 나는 교사 집단이라는 조직에서 함께 흘러가야 하는 사람이라 나의 내달림이 모든 사람에게 좋게 보이지 않았을 거다.
‘유난스럽고 별나고 나와는 다른 사람이야’ 지나고 보니 보이는 것들, 그리고 어쩌다 생긴 사람과의 스크래치가 아프긴 했지만, 잘 아물어 또 다르게 성장한 느낌이다.
교사의 신념이란 갑자기 뚝딱, 어쩌다 보니 생기는 것은 아니다. 어려운 상황들, 힘든 일든, 속상한 사건들, 잘 된 수업, 뿌듯한 만남, 수없이 부딪히는 아이들과의 관계들이 시간 안에서 흘러 흘러 단단한 무언가가 발견된다. 그리고 작은 물음표가 점점 커지면서 답을 찾게 될 것이다.
그 신념이 교사로서의 에너지를 만들어주고, 주변의 시선에 크게 동요되지 않는 단단함을 만들어주고, 길고 길 교사로서의 삶에 힘이 될 것이다.
[메인이미지출처. 핀터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