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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숨결 사이에서

요양원의 작은 풍경

어김없이 하루가 시작되었다.

몸집이 작은 그녀는 늘 누워 있다. 다른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으면 움직이지 못한다.

하루 세 번! 식사를 위해 그녀는 휠체어를 탄다.

노인은 아무 말 없이 웃으며 쳐다본다. "어르신, 식사하러 가시게요." 두 팔을 활짝 펴고 말한다. " 안아 보세요. " 노인은 목을 꼬옥 끌어안는다. " 어르신, 사랑해 해보세요. " "사랑해..." 이주 작은 소리로 답한다."사랑해요." 토닥토닥. 노인은 두 손으로 등을 토닥여 준다.

그렇게 하루가 시작된다.


항상 누워 있는 그녀는 눈을 감고 있다.

다가가 "어르신, 기저귀 갈게요" 하면 고개를 끄덕여 주신다. 그녀는 어떤 삶이었을까? 체구가 작은 그녀의 눈빛은 아직도 살아있다. 갑자기 그녀의 삶이 궁금하다. 파란 하늘 언저리 서성이는 구름떼에 그림을 그려본다. 홀로 남겨진 그녀의 눈이 갑자기 열린다. 아무도 보지 못하는 그녀의 마음속 독백이 시작된다.

'여기가 어디지? 내가 왜 여기 있는 걸까... 아, 그래. 이곳이 내 마지막 집이구나.'

그녀의 눈동자가 천천히 움직인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하늘을 바라본다.

'우리 민수는 오늘도 안 오는구나. 언제였더라, 마지막으로 본 게. 설날이었나, 추석이었나...'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바라보며 그녀의 기억 속으로 돌아간다.

'그때 민수가 다섯 살이었을 때였나, 뒷산에 진달래 피던 봄 날, 꽃잎을 머리에 올려놓고 웃던 모습이 눈에 선하네. "엄마, 나 예쁘지?" 하고 물어보던 그 모습...'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다. 미소일까, 아니면 그저 근육의 떨림일까.

'그리고 민지가 중학교 입학하던 날, 새 교복을 입고 등교하던 아침. 내가 해준 김밥을 친구들과 나눠 먹겠다며 얼마나 좋아했던가. "엄마 김밥이 최고야!" 하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데...'

그녀의 눈가에 물기가 차오른다. 아무도 닦아주지 않는 눈물이 주름진 볼을 타고 천천히 베개로 흘러내린다. 입술은 움직이지만 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보고 싶다... 내 새끼들...'

창밖의 햇살이 그녀의 얼굴을 비춘다. 누군가 다가와 커튼을 친다. 그녀의 눈물은 이제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 된다.


그녀가 엄마의 자궁에 자리 잡았을 땐

그녀의 발차기마저도 엄마 아빠의 행복이었고,그녀가 엄마의 자궁에서 음식을 찾을 땐 아빠는 두 발을 부지런히 그녀가 먹고 싶어 하는 음식을 찾아서 움직였을 것이고,그녀가 세상에 태어나 힘차게 노래할 땐 온 세상이 엄마 아빠의 것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그녀는 엄마를 배우고 아빠를 쓰고 한 발 두 발 세상을 향해 나아갔겠지.

세상에서 만난 사랑은 그녀를 설레게 했을 것이고 부모를 떠나 사랑하는 사람과 저 푸른 초원 위에 하얀 집을 짓고 살았겠지. 언덕 위의 하얀 집은 때로는 폭풍에 지붕이 날아가기도 했을 것이고 하얀 눈에 덮여 갇히기도 했겠지.

무엇이었을까? 이렇게 작은 그녀를 나아가지도 돌아가지도 못하게 잡고 있는 이 작은 공간으로 데려다 놓은 사연은...평생 그녀의 흔적이었을 그 사연마저도 어쩌면 잊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다시 혼자만의 세계로 돌아간다.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르지. 명절마다 창가에 앉아 대문 쪽을 바라보던 나날들. 전화벨 소리에 심장이 쿵쾅거리던 순간들. 그래도 올 줄 알았어. 내 새끼들이니까...'

그녀의 눈꺼풀이 무겁게 감겼다가 다시 열린다.

'아... 내 손이 왜 이렇게 늙었지? 이 손으로 민수 열났을 때 밤새 이마에 수건 얹어주던 게 엊그제 같은데. 민지 머리 땋아주며 리본 묶어주던 때가 언제였더라...'

그녀의 눈가에 다시 눈물이 고인다. 이번엔 흘러내리지 않게 애써 참는다. 주름진 입술을 꽉 깨문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 더 사랑해줬어야 했나... 더 표현했어야 했나...'

문득 들려오는 발걸음 소리에 그녀는 재빨리 눈을 감는다. 아무렇지 않은 척, 평소와 같은 표정으로 돌아간다.

힘을 주어 잡아주는 그녀의 손길이 따뜻하다. 나의 가슴은 숨 돌릴 사이 없이 흥건해진다.

그녀의 사랑하는 남편은, 그녀가 온 생을 다하여 품어온 그녀의 열매들은 그녀를 잊었을까? 오늘도 소식이 없다. 허공을 맴도는 작은 눈동자는 다시 눈을 감는다.

불타는 태양과 함께 하루를 접는다.이 밤도 아무 일 없이 지나가길,

그들이 잠든 사이 사랑 많은 신이 다녀가길...두 손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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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의 무게/보헤미안(박지수)

어머니의 주름진 손등에는

내 어린 날의 기억이 흐르고

아버지의 굽은 등에는내 무거운 삶이 새겨져 있네

잠깐의 망설임이 영원한 후회가 될까

한 번의 외면이 돌이킬 수 없는 부재가 될까

마음 한편에 자리한 그리움은

이제야 비로소 이름을 얻는다

부모라는 이름의 무게를


세월은 흘러도 어미의 품은 언제나 따뜻한 고향의 모습

잊혀진 듯 보이는 그 사랑도

시간의 켜켜이 쌓여 더 단단해지리

오늘은 돌아가 안부를 묻자

그저 안녕하냐고,

그 작은 말 한마디가 세상의 문을 열리라

어미의 눈빛에 담긴 기다림을

이제는 우리가 품어 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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