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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해버린 세대의 초상-엄마

"누군가의 고생은 나의 낙이 될 수 없다"는 세대로.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세대에서 "누군가의 고생은 나의 낙이 될 수 없다"는 세대로.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달라졌을까?


눈앞에 펼쳐진 불편한 진실

늦은 오후, 하루의 일과가 서서히 마무리 되어 가는 시간. 동주민센터의 창문으로 비치는 햇살이 점점 길어지고 있었습니다. 퇴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그때, 한 젊은 여성이 상담실 문을 열고 들어왔습니다.

그녀의 표정은 담담했습니다. 불안해 보이지도, 슬퍼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단단한 결심을 한 사람의 냉정함이 느껴졌습니다. 처음에는 일상적인, 아니면 복지 서비스나 수급 신청과 관련된 상담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습니다.


직원: "어떻게 오셨어요?"

민원인: (머뭇거리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직원: "커피 한 잔 드릴까요?"

민원인: "네."

직원: "무슨 일이세요? 마음 편하게 말씀하세요."

민원인: "남편과 이혼하려고요."

직원: (받아본 인적사항을 확인한 결과 수급자는 아니다. 수급권을 신청하려고 하는 것일까?) "무슨 일이신데요?"

민원인: "남편이 공사장에 일하다 다쳐서 중환자실에 누워 있어서 돈을 못 버니까 이혼을 해야겠어요."


그 순간, 시간이 멈춘 듯했습니다. 실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으로서 수많은 상담을 해왔지만, 이런 이유의 이혼 상담은 처음이었습니다. 아픈 남편, 그것도 일하다 다쳐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남편을 두고 '돈을 못 벌기 때문에' 이혼하겠다는 말에 잠시 할 말을 잃었습니다.

그 젊은 아내의 차가운 현실 감각은 충격적이었지만, 솔직히 말하면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가정의 '생존'은 대부분 경제적 기반 위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그녀에게 가족이란 무엇일까요? 사랑과 헌신의 공동체일까요, 아니면 경제적 안전망의 다른 이름일까요?


변해버린 세대, 무너진 가치관


그녀가 남긴 말들은 하루 종일 제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그동안 가정을 책임지던 가장이 일하다가 쓰러졌는데 이혼을 요구하는 아내. 이것이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모습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동주민센터의 문을 열고 들어와 상담까지 했다는 건 더 이상 숨기거나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세대가 등장했다는 신호일지도 모릅니다.

불과 20-30년 전만 해도 '가족'은 영원한 것, 무조건적인 것, 희생을 감내하는 것이라는 가치관이 지배적이었습니다. 특히 우리 부모 세대에게 결혼은 '평생의 약속'이었고, 배우자의 아픔은 곧 나의 아픔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 결혼과 가족의 의미는 다른 것 같습니다.


현대의 젊은 세대는 더 실용적입니다. 그들에게 인간관계는 때로 '비용-편익 분석'의 대상이 됩니다. 투자한 만큼 돌아오지 않는 관계는 과감히 정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결혼도 예외가 아닙니다. 예전에는 "죽을 때까지 함께"라는 서약이 절대적이었다면, 이제는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한 함께"라는 조건부 서약으로 변해가는 듯합니다.

이런 변화는 어디서 왔을까요? 아마도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입니다. 빠른 경제 성장과 함께 개인주의적 가치관이 확산되었고, 사회안전망의 부재는 각자도생의 논리를 강화했습니다. 평생직장이 사라지고 불안정한 고용 환경이 일상화되면서, 미래에 대한 불안이 관계의 지속성보다 더 중요해진 것일지도 모릅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젊은 세대에서 나타나는 '조건부 애정'의 논리입니다. 사랑은 더 이상 무조건적이고 영원한 것이 아니라, 서로의 필요와 만족에 기반한 교환 관계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더 이상 경제적 기여를 할 수 없는 배우자는 관계의 균형을 깨뜨리는 요소가 됩니다.


직원: "선생님, 선생님의 문제는 저희 부서에서 상담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이들도 있고 그동안 남편분이 고생하셨는데 지금은 곁을 지켜야 하지 않을까요?"

민원인: "너무 힘들어서 그래요." (잠시 침묵 후) "알았어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문을 열고 나갔습니다. "너무 힘들어서"라는 그녀의 마지막 말에는 단순한 경제적 고려 이상의 무언가가 느껴졌습니다. 아마도 그녀 역시 내적 갈등을 겪고 있었을 것입니다. 전통적 가치관과 현실적 필요 사이의 간극, 헌신과 자기보존 사이의 갈등, 도덕적 의무와 현실적 욕구 사이의 충돌...

그 날 이후로도 종종 그 젊은 여성의 결정이 궁금했습니다. 그녀는 결국 남편 곁을 지켰을까요? 아니면 정말로 이혼 절차를 밟았을까요? 어느 쪽이든, 그녀의 선택은 단순히 개인의 결정을 넘어 시대의 변화를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사회는 급격한 가치관의 변동기에 있습니다. 부모 세대가 당연하게 여겼던 가족의 의미, 결혼의 약속, 희생과 헌신의 가치는 더 이상 보편적이지 않습니다. 젊은 세대는 그들만의 새로운 관계 규범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더 개인주의적이고, 더 계약적이며, 더 유연한 관계 말입니다.

이러한 변화를 단순히 도덕적 타락이나 이기심의 증가로 보는 것은 너무 단편적입니다. 그보다는 변화된 경제, 사회적 환경에 대한 적응 전략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입니다. 평생 직장이 보장되지 않고, 노후가 불안하며, 사회적 안전망이 부실한 상황에서 각자의 생존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반응일 수 있습니다.


새로운 관계의 윤리를 향하여


사실 우리 업무가 하루종일 전산 확인하고 상담하고 지역사회 자원 연결하고 그리고 또 상담하는 반복의 연속입니다. 그 날의 상담 이후 한참동안 멍하니 앉아 있다가, 쓰디쓴 커피 한 잔에 정신을 차리고 다시 업무를 진행했습니다.

그동안 철썩같이 믿었던 엄마의 자리, 아내의 자리도 이제는 위태로운 것일까요? 삶의 모든 순간이 산이었고, 그 산을 눈물 삼켜 가며 넘었을 우리네 어미의 모습은 이제 과거의 유물이 되어가고 있는 것일까요?

우리 세대와 부모 세대가 지켜온 가치관의 변화는 불가피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으로 물어야 할 질문은 "어떤 가치관이 옳은가?"가 아니라 "어떤 가치관이 우리를 더 행복하게 하는가?"일 것입니다. 무조건적 헌신은 때로 자기 파괴적일 수 있고, 극단적 개인주의는 결국 고립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변화된 세대의 가치관을 단순히 비난하기보다는, 새로운 시대에 맞는 건강한 관계의 윤리를 함께 모색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무조건적 희생도, 극단적 이기주의도 아닌, 자율성과 연대가 공존하는 관계의 모델을 찾아야 합니다.


오늘 상담을 하였던 젊은 여인도 결국은 엄마, 아내의 자리를 끝내는 지켰으리라 믿고 싶습니다. 아마도 그녀의 선택이 무엇이었든, 그것은 단순한 이기심이나 헌신의 문제가 아닌, 복잡한 현실 속에서의 고뇌에 찬 결정이었을 것입니다.


어머님 - 남진

어머님 오늘 하루를 어떻게 지내셨어요

백날을 하루같이 이 못난 자식위해 손발이 금이 가고 잔주름이 굵어지신 어머님

몸만은 떠나있어도 어머님을 잊으오리까

오래 오래 사세요 편히 한 번 모시리라


이 노래가 우리 부모 세대의 이야기였다면, 지금 젊은 세대는 어떤 노래를 부르고 있을까요? 어쩌면 그들은 "나도 내 삶이 있어요, 나를 위해 살게 해주세요"라고 노래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단순한 이기심이 아니라, 자신의 행복을 지키려는 필사적인 몸부림일 수 있습니다.


인간의 근본을 되찾는 여정, 함께 걷기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점점 더 본질적인 것들로부터 멀어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경제적 가치가 인간 관계의 가치를 대체하고, 효율성이 정의를 압도하며, 물질적 성공이 정신적 풍요로움보다 우선시되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이런 시대일수록, 우리는 인간의 근본적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기적 개인주의와 맹목적 집단주의 사이의 균형, 자율성과 연대성의 조화, 효율성과 인간다움의 공존을 모색해야 합니다. 인간이란 무엇입니까? 단순히 경제적 이해관계로 움직이는 존재입니까, 아니면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는 존재입니까? 관계란 무엇입니까? 단순한 거래입니까, 아니면 서로의 성장을 돕는 여정입니까?


변화된 세대의 가치관을 부정하기보다는, 그 안에 담긴 진정한 욕구와 필요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들이 추구하는 자율성과 개인의 행복에 대한 열망에는 충분히 존중받을 가치가 있습니다. 동시에, 우리 부모 세대가 지켜온 헌신과 인내의 가치도 여전히 소중합니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과거의 가치와 현재의 가치를 통합하는 새로운 관계의 패러다임일지도 모릅니다. 무조건적 희생도, 계산적 이해관계도 아닌, 자율적 개인들 간의 자발적 연대와 상호 돌봄의 윤리를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인간의 근본을 되찾는 여정은 혼자서는 갈 수 없습니다. 세대 간의 대화와 이해, 서로 다른 가치관 사이의 진정한 경청과 공감이 필요합니다. 급격한 변화 속에서 우리 모두가 함께 길을 찾아가야 합니다.

이 시대에 우리가 진정으로 외쳐야 할 것은 "과거로 돌아가자"도 아니고 "모든 것을 버리고 새로 시작하자"도 아닙니다. 그보다는 "우리 함께 인간다움의 의미를 다시 찾아가자"입니다. 효율성과 경쟁 너머에 있는 연대와 공감의 가치, 소비와 소유를 넘어선 존재와 관계의 충만함, 계산적 이성을 초월하는 사랑과 돌봄의 의미를 함께 발견해 나가는 것입니다.


다 같이 힘내자. 그래도 세상은 살만한 것이다.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인간성의 아름다움을 믿으며, 오늘도 우리는 한 걸음씩 나아갑니다.


세상의 엄마, 아내여 화이팅 하시라.

동시에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한 명의 인간으로서도 화이팅 하시라.

희생만이 미덕은 아니며, 자신을 사랑하는 것도 소중하다.

그리고 우리 모두,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인간다움의 의미를 함께 찾아가는 여정에 동참하자.

오늘 그리고 지금, 우리 행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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