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을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추억을 모으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창밖으로 햇살이 부드럽게 쏟아지는 요양원의 오후입니다. 복도 끝에서 은은하게 들려오는 클래식 음악, 벽에 걸린 추억의 사진들, 곳곳에 놓인 꽃병의 들꽃들이 이곳의 정적을 부드럽게 적시고 있습니다. 창턱을 타고 들어온 봄바람이 레이스 커튼을 살짝 흔들고, 바람에 실려 온 꽃향기가 공간을 채웁니다.
이 평화로운 정적을 깨고, 바퀴 소리가 복도를 따라 울립니다. 그녀가 오십니다. 하얀 머리를 단정하게 빗어 넘기고, 검은색 유모차를 밀며 오늘도 자신만의 여정을 시작하는 노인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녀의 눈빛은 때로는 흐릿하지만, 무언가를 찾는 듯한 예리함이 숨어 있습니다.
그녀의 치매는 남의 물건을 '모으는 것'입니다. 수집가처럼, 보물찾기를 하듯, 그녀는 요양원 구석구석을 탐험합니다.
아마 지금 60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겪었을 대화일 것입니다. 우리의 부모 세대는 아마 더 심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 시절의 각인된 가난과 결핍은 기억이 흐려진 지금까지도 그들의 몸과 마음에 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노인은 하루종일 유모차를 몰고 다니면서 마치 소중한 보물을 찾는 탐험가처럼 이 방 저 방을 세심하게 살펴봅니다. 그 손놀림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고 정확합니다. 지난 팔십여 년의 세월 동안 수없이 많은 물건을 집어들고, 담고, 정리했던 손길은 기억이 흐려져도 여전히 그 솜씨를 잃지 않은 듯합니다.
숟가락, 젓가락, 앞치마, 그릇... 그녀의 눈에 들어온 모든 것은 어느새 유모차 안에 정성스럽게 모입니다. 그리고 그 물건들을 다시 가져오려면 노인이 자리를 비운 사이를 살펴야 합니다. 만약 노인이 가져간 물건에 손을 대는 것을 노인이 본다면? 하루종일 세상에서 가장 희귀하고 강렬한 꾸지람을 들어야 할 것입니다.
노인의 손길은 마치 과거의 시간을 붙잡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녀에게 이 물건들은 단순한 물건이 아닌, 잃어버린 무언가를 대신하는 기억의 파편일지도 모릅니다. 후회, 그리움, 결핍, 사랑... 그 무엇이든, 그녀는 그것들을 모아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왜 그러실까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그 시대의 우리 선배들이 경험했던 깊은 가난이 남겨준 본능적인 행동일 것입니다.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낫다는 생존의 지혜, 무언가를 모으는 행위에서 느끼는 안도감, 그리고 어쩌면 가족을 위해 끊임없이 무언가를 마련해야 했던 평생의 책임감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그 노인도 누군가 다가가 따뜻하게 안아주면 금세 표정이 밝아지신다는 점입니다. 그 순간만큼은 물건을 모으는 행동도 잠시 멈추십니다. 딱딱하게 굳어있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번지고, 초점 없던 눈동자에 잠시나마 맑은 빛이 돌아옵니다. 온몸으로 그 따뜻함을 느끼는 듯, 조금은 여린 모습으로 그 품 안에 안기십니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새삼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물질의 소유보다 더 근원적인 갈망, 더 본질적인 필요가 있다는 것을. 그것은 바로 '사랑'이라는 이름의 따뜻함입니다.
신이 사랑으로 모든 것이 족하다는 말의 의미를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은 누구나 말할 수 있고 누구나 들을 수 있는 단어이지만, 진정으로 누구에게나 쉽게 하고 싶거나 들려주고 싶지 않은 고귀한 말입니다. 그 말에는 책임과 헌신, 인내가 함께 따라오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이 한 발을 떼기가 힘들어 잠시 머뭇거리고 있다면, 입속 끝에서부터 사랑을 고백해 보세요. 당신 주변에 사랑을 고백할 누군가가 없다면, 신이어도 좋고 당신 자신에게도 좋습니다. 사랑한다고 고백해보세요.
그러면 당신 주위엔 쌍무지개가 뜰 것이고, 당신이 서 있는 그곳은 환하게 빛이 날 것입니다. 사랑의 고백은, 발화하는 순간 이미 그 자체로 빛이 되어 어둠을 밝히기 시작합니다.
물건을 가져가 모으는 노인에게 '훔친다'라는 말보다는, 그것이 질병이라 이해하고 따뜻하게 안아준다면, 보는 이들도 스트레스에서 해방되고 노인도 사랑으로 가득 차 다시 예전의 엄마로, 아내로 잠시나마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