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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전쟁고아의 슬픈이야기

그들의 삶은 전쟁이라는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버렸습니다.


그들의 삶은 전쟁이라는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버렸습니다. 하지만 그 파도를 넘어 살아남은 이들의 이야기는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역사입니다.


빗 소리가 이어준 인연

창밖으로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사무실의 불빛마저 흐릿하게 비춰지는 어둑한 오후, 직원들은 구청 행사에 동원되어 사무실엔 저를 포함해 단 세 명만이 남아 있었습니다. 적막한 사무실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아 있을 때, 갑자기 울린 전화벨은 그날의 고요함을 깨뜨렸습니다.

한 통의 전화, 그리고 그 전화 너머의 목소리가 20년 이상의 인연으로 이어질 줄은 그때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가끔은 우연이라는 이름으로 찾아오는 운명의 손길이 있는 것 같습니다.


노인: (술에 잔뜩 취해서) "나 임철수요."

직원: "네, 말씀하세요."

노인: "내가 하모니카 한 번 불러주고 싶은데 들어볼래요?"

직원: "네, 그러세요."


그렇게 노인은 세 시간 이상을 울다가, 웃다가, 소리를 지르고 그리고 담담하게 하모니카를 불며 당신의 넝마주의 인생을 생면부자 나에게 털어 놓습니다. 제 직장생활을 통틀어 가장 큰 인내심이 필요했던 시간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그 인내의 시간이 지나자 내 심장은 꿍 하고 내려 앉습니다


전쟁이 앗아간 엄마, 아빠


노인은 6.25 전쟁으로 부모를 모두 잃었습니다. 전쟁은 그에게서 부모를, 집을, 학교를, 그리고 무엇보다 평범한 어린 시절을 앗아갔습니다. 폭격 소리가 잠을 깨우고, 총소리가 자장가를 대신하던 시절, 그는 단지 아이였습니다. 전장이 된 고향에서 헤매던 소년은 결국 넝마주이가 되어 살아남았습니다.

거리에서 주운 넝마로 연명하던 나날들, 추위와 배고픔과 외로움이 그의 유일한 친구였습니다. 밤이면 무너진 건물 잔해 사이에서 몸을 웅크리고 자야 했고, 낮에는 먹을 것을 찾아 거리를 헤매야 했습니다. 다른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고 친구들과 뛰어놀 때, 그는 생존을 위한 고된 싸움을 하고 있었습니다.

성인이 되어서는 군에 입대하여 국가를 위해 복무했고, 제대 후에는 가정을 꾸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상처와 아픔은 결코 그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처와 만나 결혼했지만 끝내 헤어져야 했고, 자녀들과의 관계도 순탄치 않았습니다. 평생을 정상적인 가정에 대한 갈망으로 살았지만, 그 상처받은 내면의 아이는 결코 치유되지 않았습니다.

한 인간으로 태어나 살아온 삶이 이렇게까지 비참할 수 있을까요? 가족도, 배움도, 따뜻함도 없이 오직 전쟁의 잔해 속에서 홀로 자라야 했던 아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살아온 노인의 모습은 어떤 의미에서는 위대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생존 자체가 저항이었던 시대, 그는 끝까지 살아남았습니다.


노인: "선생님, 감사합니다. 제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신 분은 선생님이 처음이십니다."

직원: "감사합니다. 언제든지 힘드시면 전화하시고 오세요."

노인: (한참을 울며) "네, 고맙습니다."


사실 세 시간 이상을 전화로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은 많이 힘든 작업이다. 직장생활 처음부터 '들어주는' 연습이 되어서였을까요? 노인의 이야기에 함께 울고, 웃고, 그리고 때로는 박수를 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노인과의 인연은 제가 퇴직할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놀랍게도 노인은 십 년 이상 자신의 사연을 노트에 꾸준히 기록해왔습니다. 삐뚤빼뚤한 글씨로 채워진 그 노트들은 한국 현대사의 슬픈 자화상이었습니다. 6.25 전쟁의 참상, 전후 혼란기의 고통, 산업화 시대를 거치며 소외된 이들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함께 근무하던 공익요원의 도움으로 노인의 기록들은 마침내 책으로 출판되었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발간된 그 책은 세 권으로 예쁜 상자에 포장되어 노인의 손으로 전달되었습니다. 노인의 평생이 담긴 이야기가 책이 되어 돌아오는 순간, 그것은 정말 눈물나는 장면이었습니다. 노인도 울고 저도 울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책의 출판이 아니라, 한 인간의 생애가 기록으로 인정받는 순간이었습니다.


잊혀진 영웅들의 이야기


퇴직 후 4년이 지난 지금도 늘 노인이 궁금합니다. 누가 노인의 마음을 들어줄까요? 나에게 주기 위해 아침부터 시켰던 짜장면이 불어터지도록 오후 늦게까지 날 기다렸던 임철수 어르신. 그분의 삶은 우리 사회가 쉽게 잊어버린 전쟁의 상처를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전쟁 고아, 월남 귀환 국군, 파독 광부와 간호사, 베트남 참전 용사... 우리 현대사의 고난과 역경을 온몸으로 맞서 싸워온 이들은 대부분 지금 잊혀진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자신의 청춘을 바쳤지만, 평화의 시대가 오자 그들의 희생은 서서히 기억에서 지워졌습니다.

고달픈 언덕을 넘어가는 우리에게 누군가 마음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언제든 전화를 할 수 있는 사람, 언제든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사람, 언제든 찾아가 만날 수 있는 사람. 당신은 그런 사람이 있나요? 아니면 누군가에게 당신이 그런 사람인가요?

특히 전쟁의 아픔을 겪은 노인들에게는 그런 사람이 더욱 필요합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단순한 개인의 경험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역사이자 교훈입니다.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은 우리의 역사를 기억하는 일이며, 미래를 위한 소중한 지혜를 얻는 과정입니다.


국가유공자를 향한 감사와 기억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평화와 번영은 국가유공자들의 희생과 헌신 위에 세워졌습니다. 6.25 전쟁에서 싸운 참전용사들, 국가 재건을 위해 몸바친 산업전사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아이들까지... 그들 모두는 우리 사회의 기둥이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국가유공자들이 적절한 보상과 인정을 받지 못한 채 어려운 노년을 보내고 있습니다. 특히 전쟁 고아와 같이 공식적인 '유공자' 지위를 인정받지 못한 피해자들은 더욱 소외되어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물질적 지원만큼이나 사회적 인정과 정서적 지지가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입니다. 아직 살아계신 참전용사들과 전쟁 피해자들을 찾아가 그들의 경험을 듣고 기록하는 것, 그들의 희생을 기억하고 감사를 표현하는 것, 그리고 그들의 경험을 후세대에 전달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그들에게 보답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리일 것입니다.


국가유공자 예우에 관한 정책적 지원을 확대하고, 그들의 명예를 높이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유공자들을 위한 의료 서비스, 주거 지원, 생활 보조금 등의 실질적인 지원과 함께, 그들의 희생을 기리는 교육과 문화 프로그램도 확충되어야 합니다.


임철수 어르신과 같은 분들이 우리 사회에서 잊혀지지 않고, 그들의 값진 경험과 지혜가 다음 세대에 전해질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관심과 사랑을 가져야 할 때입니다. 그들은 우리의 과거이자, 현재의 토대이며, 미래를 위한 값진 교훈입니다.


어두운 밤 하늘 높은 곳에서는 이름 모를 수많은 별들이 향연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 별들은 어쩌면 전쟁으로 희생된 이들, 그리고 상처를 안고 살아남은 이들의 영혼일지도 모릅니다.

이 밤, 저도 별들과 함께 춤추고 노래하며 좋아하는 시 한 수 읊어봅니다.

당신의 하루를 사랑합니다.
특히 전쟁의 아픔을 견디고 오늘을 만들어주신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이 그리고 지금이 행복한 삶을 사시길 기도하며
두 손 모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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