깻잎
텃밭이 무르익는 8월 말이다.
봄의 이상기온이라는 험난한 여정을 지나 다행히 예년의 여름 기온을 회복하여 안정권에 접어든 텃밭. 예년만은 못해도 걱정했던 것보다는 빨리 회복하고 있는 채소들. 요 근래에는 호박, 근대, 케일, 오이 등등 매번 텃밭을 갈 때마다 한가득 수확을 해오곤 한다.
오늘 한가득 수확한 작물은 '깻잎'이다.
내 경험상 깻잎은 가장 키우기 쉬운 텃밭 작물 중 하나다. 어떤 때는 씨를 뿌리지 않아도 여기저기서 갑자기 싹이 나와 어느새 골프공 크기만큼 자라 있는 모습도 보게 된다. 깻잎을 더 많이 수확하기 위해서는 순 치기 또는 순 따기를 해줘야 한다. 새 깻잎이 나올 때, 아주 작은 크기 일 때 그 순을 '똑' 따주면 그 자리에 두 갈래로 잎이 나게 된다. 마치 세포분열을 하듯이. 그동안 깻잎순도 떼어주고 해서 나름 풍성하게 자라서 이제 수확의 적정기에 접어들었다.
깻잎은 키가 내 허리 정도까지 오기 때문에 주로 위에서 아래를 보며 깻잎을 따준다. 그도 그럴 것이 나의 생각에 깻잎들이 머리 위의 태양을 향해 자라기 때문에 위쪽에서 태양을 가장 많이 받은 잎들이 가장 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손바닥 크기 정도는 되어야 삼겹살과 김치, 파절이 등을 넉넉하게 올려 완벽하게 싸서 한 잎에 먹을 수 있는 쌈채소로써의 몫을 한다. 가지치기용 가위 같은 건 필요 없이 그냥 손으로 '똑' 따주면 되니 50장을 손에 쥐기까지는 몇 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얼마나 빠르고 쉬운가. 자, 깻잎수확 끝. 이러고 깻잎을 비닐봉지에 잘 넣어두고 다시 깻잎 고랑 쪽으로 눈을 돌리는 순간 '앗!' 하는 짧은소리가 입 밖으로 나온다. 분명 큰 잎들을 다 땄는데, 깻잎 쪽으로 가면서 보니 옆에 큰 잎들이 나를 놀리기라도 하는 듯 바람에 살랑거리고 있는 게 아닌가.
서있는 자세로 위에서 아래로만 바라보던 내 시야로는 당연히 옆에서 자라나 온 가지의 잎들은 그 크기를 가늠하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옆이나 아래의 잎들은 자세를 낮추고 앉아서 눈높이를 비슷하게 하고 봐야만 정확한 잎의 크기가 보인다. 사실, 옆쪽으로 난 잎들이 더 크게 자라나 있는 것을 보고 놀라기도 했다. 이렇게 크고 예쁜 잎들을 두고 오늘 밥상 위에는 쌈을 싸기에 어중간한 크기의 깻잎들만 올라가 내용물들이 삐져나온 쌈을 먹었을 걸 생각하니 이 발견이 대견스럽게까지 느껴졌다. 그렇게 또다시 옆에서, 아래에서 자라고 있던 커다란 깻잎을 따며 생각했다.
단순히 깻잎 수확에서도 볼 수 있듯, 이렇게 보지 못해서 자칫 지나치는 중요한 것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을지 상상하니 사뭇 뭔가를 잃어버린 기분마저 든다. 보지 못한다는 건 알지 못한다는 것이고, 알지 못하면 공감하지 못한다는 것이며, 공감하지 못한다는 건 세상과 소통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보지 못한 것들을 무시하고 모르는 것들을 외면하고 공감하지 못하는 것들을 적대시하게 된다.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들이 계층 간의 갈등임을 볼 때 이 논리는 정말 딱 들어맞는 것 같다. 요즘 윗집과 아랫집의 층간 소음으로 인한 타툼에 대한 뉴스를 자주 접한다. 만약 윗집 사람이 아랫집 사람의 괴로움을 알고 느끼고 공감한다면, 또는 아랫집 사람이 윗집의 환경, 소음의 발생원인 등을 자세히 알고 이해하게 된다면 이런 다툼이 생길 이유가 있을까? 뭔가 다른 방향으로 글이 전개되는 기분이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한 가지 현상, 상황, 사건 등을 그저 한 앵글로만 보게 되면 잃게 되는 많은 것들,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내는 편협된 생각과 말들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 뉴스나 미디어를 통해 많이 들어오던 이러한 사실을 오늘 나는 '깻잎 수확'을 통해 직접 배운 것이다.
여기 캐나다는 다양한 문화와 배경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곳이다. 그렇기에 자신이 가진 한 가지 눈으로만 보게 되면 이해하기 힘들거나 또는 받아들일 수 없는 수많은 인종, 종교, 문화 등등의 것들이 존재한다. 우리의 눈은 오직 하나지만 우리는 아래서, 옆에서, 뒤에서, 위에서 볼 수 있게 자세를 바꿀 수 있는 몸을 가지고 있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자세를 바꿔가며 다른 앵글에서 세상을 또 타인을 볼 수 있는 의지도 있다. 다양한 각도로 초점을 맞춰주는 다초점 렌즈처럼, 세상을 보는 나의 눈의 앵글도 다각도로 바꿀 수 있다면 보다 넓은, 다양한 세상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야만 무엇보다도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것들을 놓치치 않을 테니 말이다. 깻잎을 수확할 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