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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석 Oct 25. 2024

인간과 사회의 민낯을 극단적으로 그려낸 문제작

영화 '조커'


고담시에서 힘든 현실 속에 쇠약한 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는 아서 플렉. 그는 유명 토크쇼 ‘머레이 프렝클린 쇼’의 호스트 머레이처럼 코미디언이 되는 게 꿈이지만, 현실에서는 광대 분장을 하고 각종 이벤트를 하며 하루하루 살아간다. 


어느 날 아서는 광대 복장으로 보드를 들고 광고를 하던 중 불량청소년들에게 광고판을 빼앗기고 구타를 당한다. 그리고 불량청소년들에게 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동료로부터 총을 건네받지만, 이것이 화근이 되어 병원에서 광대 공연 중 총을 갖고 있단 사실을 들키고 직장에서 쫓겨난다.


갑작스럽게 해고 통보를 받고 분장도 지우지 못한 채 지하철을 타게 된 아서. 그는 우연히 술 취한 웨인 엔터프라이즈 직원들과 시비가 붙고 그들을 총으로 쏴 죽이게 된다. 이후 고담시는 그들을 죽인 광대 복장의 미스터리한 인물을 추종하는 빈민들과 그들을 무시하는 부유층으로 나뉘어 갈등이 깊어진다.


이후 아서는 한 펍에서 꿈에 그리던 스탠드업 코미디 무대에 서게 된다. 처음엔 웃음 발작에 한참을 말을 잇지 못하지만, 조금씩 진정되며 평탄하게 연기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거리에 불고 있는 광대 마스크 신드롬에 우쭐해진다. 


하지만 집에 돌아온 그는 어머니의 편지에서 자신이 웨인 엔터프라이즈의 회장이자 시장 후보로 출마한 토머스 웨인의 아들이라는 문구를 발견하고 혼란에 빠지게 되는데…….


2019년 개봉한 영화 ‘조커’는 액션 영화가 아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조커’는 모두가 알고 있는 배트맨에 나오는 바로 그 조커지만,결은 다르다. 스릴러라고 분류하긴 하지만, 조금은 심각한 사회 도발적인 드라마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성에서는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무려 500만명이 넘는 누적 관객 수를 기록하며 엄청난 화제를 모았다.


이 영화는 DC 코믹스의 배트맨의 대표 등장인물이자 역사상 가장 유명한 빌런 중 하나인 조커가 어떻게 시작됐는지 그 기원을 다룬다. 하지만 코믹스나 액션의 분위기는 전혀 없이 시종일관 진지하고 심각하게 인물과 그를 둘러싼 사건, 사회를 비추며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 



여러모로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이 작품은 그동안 코미디 영화를 주로 찍어왔던 토드 필립스 감독에게 첫 비코미디 영화로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의 영광을 안겼으며, 주연 조커 역을 맡은 호아킨 피닉스는 미국 아카데미부터 골든글러브 등 미국 내 주요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휩쓸다시피 했다.


조커는 명확히 호불호가 갈리는 영화다. 영화적 완성도는 말할 것도 없이 뛰어나지만, 그 안의 메시지와 군데군데 발견되는 광기와 잔혹성은 팬들에게는 열광적인 충성도를,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는 거북함을 안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안에서 조커, 즉 아서가 마주하게 되는 고통스러운 현실, 그리고 살인자인 그가 대중의 희망으로 올라서게 되는 과정은 깊은 생각 거리를 던진다. 



가장 약한 자에서 악의 상징으로


아서에게 세상은 매우 불친절하다. 돈이 없어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아서는 정부 지원을 받는 심리상담사와 정기 상담을 갖지만, 아서가 느끼기에 그녀는 그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고 무시하는 듯 보인다. 그마저도 이제는 정부의 예산 지원이 끊겨 더 이상 상담을 받을 수 없다. 



버스에서 우연히 만난 아이에게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어 웃음을 선물하지만, 아이의 부모는 그런 그를 질책한다. 불량청소년에게 당했다는 얘기에 총을 건넨 동료는 사실 그를 쫓아내기 위한 수작을 부린 것이었고, 아서가 동경하던 코미디언은 그의 무대를 비웃음거리로 전락시킨다. 


이 영화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고, 꿈은 있지만 비루한 현실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벅찬 아서가 그 끝없는 불친절함에 시달리며 조금씩 광기에 이르고 폭발하는 과정을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괴로울 정도로 집요하고 밀도 있게 그려낸다.


영화 속에서는 그런 그에게도 약간의 희망의 기미를 보여준다. 우연히 만난 소피와 연인이 되기도 하고, 펍에서 스탠딩 코미디를 할 기회도 주어진다. 어머니의 편지 속에서 그가 웨의 아들일지 모른다는 단서도 보게 된다. 


하지만 영화 후반부에서 이런 장면들이 사실은 아서의 환상이거나, 아서에 앞서 정신질환을 앓았던 어머니의 착각일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다. 


결국 아서는 의도치 않은 사건으로 빈민의 영웅으로 부상하게 된 ‘광대 마스크’로서 새로운 자아로 변신하고, 그렇게 빌런 조커가 된다.



극단적인 사회의 갈등, 그저 영화만은 아닌 우리 이야기


이 영화는 빈민과 부유층이라는 사회적 계층의 갈등구조를 극단으로 끌고 간다. 영화 초반부 아서의 뒤에 방송되는 뉴스에서는 청소부들이 파업을 하며 길거리에 쓰레기가 넘치고 쥐떼가 들끓는 고담시의 모습을 비추며 파업의 이유는 외면한 채 파업을 비난하기 바쁘다. 


도시의 모든 부는 웨인으로 대표되는 부자들에게 몰리고, 시민들은 가난하며 희망 없는 삶을 살고 있다. 그들의 분노는 아서에 의해 살해된 이들이 웨인 엔터프라이즈 직원들이라는 이유만으로 이유와 상관없이 그를 영웅시할 정도로 극에 치달아 있다. 



뉴스에 등장한 청소부들의 파업에 대한 이유를 생략한 비난과 광대 마스크의 살인에 대한 맹목적인 시민들의 열광은 서로 대조되며 비정상적일 정도로 극단적인 갈등을 보여준다.


이러한 배경에서의 극단적인 사회 갈등, 그리고 아서를 향한 과도할 정도로 잔혹한 세상의 폭력은 분명 부담스러운 부분이 있다. 하지만 그 극단적 상황과 배경 속에서 우리는 외부에 공격적인 집단성과 약자에 대한 조롱과 극단적인 이기심과 사회적 불평등 같은 인간 세계의 잔혹한 면모를 여과 없이 경험하게 된다. 


이 영화에서 아서는 혼란스럽다. 정신질환으로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허물어진 탓도 있지만, 사실 그에게 주어진 현실 그 자체가 하나의 혼란이다. 그가 결국 그 혼란에 먹혀 악의 화신이 되는 과정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그러나 영화를 보는 동안 그의 고통과 분노에 조금이나마 공감한다면, 그 경험은 우리의 평화로운 일상, 그 이면의 민낯을 돌아보는 작은 기회로서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당장 우리나라의 현실만 보더라도, 얼마나 많은 갈등을 겪고 있는가. 빈부의 격차는 이미 사회 계층화를 공고히 하고 있고, 남녀갈등에 세대갈등까지 온갖 갈등이 넘쳐나며, 각각의 편에서 이유막론하고, 전후사정과 참, 거짓을 가리지 않고 그저 우리 편의 입장만 목소리를 높이며, 집단의 승리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혼란 속에 그 한 가운데에서 한 집단의 상징이 된 조커. 아마도 영화를 보는 관객들 중 그를 이해할지언정 절대적으로 신봉할 이들은 거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삶은 어쩌면 이미 영화 속 고담 시 사람들의 그것과 무척이나 닮아있을지 모른다. 조커가 보여주는 극단의 광기만 걷어낸다면 말이다.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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