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어느 날, 서울의 모든 것을 파괴한 대지진이 일어난다. 온전하게 남아있는 건물은 작은 아파트 단지인 ‘황궁 아파트’ 뿐이다. 추운 겨울, 꼼짝없이 얼어 죽게 생긴 상황 속에서 주변 사람들은 황궁 아파트의 소문을 듣고 몰려든다. 하지만 물도, 음식도 한정된 지금 황궁아파트 사람들은 계속 유입되는 외부인들이 위협적으로만 느껴진다. 결국 아파트 주민들은 주민 투표를 통해 외부인과의 공존 대신 퇴출을 선택하고, 사력을 다해 그들을 몰아낸다.
그 중심에는 주민 대표 영탁이 있었다. 갑자기 난 불에 몸을 사리지 않고 뛰어들어 상황을 정리한 그는 이를 목격한 부녀회장의 강력한 추천과 사람들의 호응으로 주민 대표에 오르고, 외부인들을 내쫓는 과정에서의 헌신적인 모습으로 강력한 권한을 가진 리더가 된다.
602호에 사는 젊은 부부 민성과 명화는 생존을 위한 아파트의 변화에 서로 다른 견해를 보이는데, 민성은 가족의 생존을 위해 영탁의 옆에서 믿음을 얻고자 노력하고, 명화는 외부인을 얼어 죽을 수밖에 없는 바깥으로 내모는 아파트 주민들의 비인도적인 처사에 상심한다.
황궁 아파트는 내부 자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질서를 지키기 위한 규칙을 만들고, 영탁과 민성을 비롯한 젊은 남자들은 외부로 나가 식량과 생필품을 구해오는 등 하나의 체계적인 사회로 자리 잡는다.
그러던 중 영탁의 옆집에 살던 혜원이 아파트로 돌아오면서 사실은 입주민이 아니었던 영탁의 정체가 밝혀질 위기에 놓인다. 여기에 몰래 외부인을 숨기고 돌보던 도균을 비롯한 몇몇 사람들이 발각되고, 기여도에 따라 물자의 양과 질이 달라지는 시스템 아래에서 서로 간의 갈등이 벌어지며 유토피아 같던 황궁 아파트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한다.
2023년 개봉한 엄태화 감독의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줄거리다. 망해가는 세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작은 사회, 그리고 그들이 내부적으로, 또 외부와 갈등하며 극단으로 치닫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은 지난해 대종상 작품상을 수상한 수작이다.
아파트를 지키기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하지만, 남몰래 비밀을 숨기고 있는 주민 대표 영탁 역할을 맡은 이병헌은 이 영화로 거의 지난해 주요 영화제의 남우주연상을 싹쓸이하다시피 했으며, 부녀회장 역의 김선영과 부부로 출연한 박서준, 박보영 또한 훌륭한 연기를 보여 준다.
통상 재난, 재앙 영화에서는 불굴의 의지와 희생정신으로 재앙을 극복하는 인간의 힘에 초점을 맞추거나, 극단적인 생존의 위기에서 나타나는 인간 본성을 다루는 스토리를 보여준다. 이 작품의 경우 ‘유토피아’라는 단어의 반어적 느낌으로 전형적인 후자에 가까운 이야기를 다룬다.
‘우리’의 범주와 의미는 어떻게 규정되어야 하는가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와 닿았던 대사는 외부인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두고 주민 회의를 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다.
"드림 팰리스가 남고 우리 아파트가 무너졌다면, 드림 팰리스 사람들은 우리를 받아들였을까.
평소에 아이들이 거기 놀이터 쓰는 것만 해도 가만히 있지 않았던 사람들인데. "
황궁 아파트 옆에 있는 드림 팰리스는 부유층들이 사는 공간이다. 평소에도 황궁 아파트 사람들을 낮춰 보던 그들이 이제는 오히려 황궁 아파트에 기생하려 하는 상황이 고소하다는 의미로 한 말이기도 하지만, 그 말을 곱씹으면서 주민들은 물론, 영화를 보고 있던 나도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자원은 한정적이고, 생존 자체가 녹녹지 않은 상황에서 황궁 아파트 사람들은 일종의 기득권이 된다. 그리고 생존의 위기라는 상황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그들의 잔혹한 선택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그들은 ‘아파트는 입주민의 것’임을 외친다. 그것은 황궁 아파트라는 사회를 지키는 가장 큰 명제다. 황궁 아파트는 ‘우리 아파트’고, 내부의 규칙을 지키며 공동체를 위한 역할을 하는 것은 ‘우리 아파트’를 유지하기 위한 기본적인 의무가 된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우리’는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영탁은 아파트의 생존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사실 그는 외부인이다. 혜원은 이 아파트의 주민이다. 하지만 재앙 전 아파트를 떠났고, 돌아와서는 현재의 공동체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한다.
생존을 이유로 비인간적인 행태를 보이는 주민들을 보며 불안과 회의를 느끼는 명화는 혜원과 손을 잡고 영탁의 정체를 밝힌다.
그 순간 아파트는 혼란에 빠진다. ‘우리’의 개념이 모호해지는 것이다.
아파트의 생존에 앞장섰던 영탁은 존재 자체로 ‘아파트는 주민의 것’이라는 명제를 무너뜨린다.
하지만 그는 황궁 아파트 공동체의 존립에 핵심적인 인물이며, 가장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여기에 또 하나의 문제가 터진다. ‘우리’로 묶여 있지만, 그 안에서도 ‘기여도’라는 명목으로 권력과 계층 구조가 생기고, 이는 외부의 침입으로 황궁 아파트가 무너지는 원인이 된다.
민성마저 잃고 홀로 남겨진 명화는 아파트 밖의 새로운 공동체를 만나 생존하게 된다. 그곳은 오갈 데 없는 사람을 거두고, 보살피고,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곳이다.
그곳 사람들은 명화에게 묻는다. 황궁 아파트 사람들은 인육을 먹는다는데 사실이냐고. 하지만 황궁 아파트에서는 오히려 외부인들이 인육을 먹을 것이라는 소문이 돈다.
아파트 안과 밖으로 나뉘는 극단적인 편 가르기는 그렇게 서로에 대한 편견과 불신을 만든다.
‘우리’라는 범주를 규정하고 서로 극단적으로 대치하는 대재앙 시대의 사람들을 보며 문득 영화 속 특수한 상황에 국한되는 것만은 아니라는 느낌이 든다.
부자 아파트 단지 사람들이 임대 아파트 단지 사람들을 업신여긴다는 영화 속 대사에서 언급된 이야기는 이미 현실에서도 자주 보는 모습이다. 부와 권력의 계층에 따라, 성별과 지역에 따라 편을 가르고 극단적으로 상대를 혐오하는 세태가 만연해 있고, 얼마 전 총선에서도 보듯이 정책과 민생이 아닌, 상대 편에 대한 적대감과 혐오로 정치적 대결이 이뤄진다.
그나마 영화는 생존의 위기라는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도 있지만, 그런 것도 아닌 현실에서의 '우리'와 또 다른 '우리'의 충돌과 적대감이 씁쓸하게 느껴진다.
대재앙의 시대, 배려와 공존의 마음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 영화는 잘 만든 작품이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우선 생존을 위한 배척과 공존의 딜레마를 다룬 이야기가 결국 명화가 꿈꿨던 사회와 유사해 보이는 서로 돕고 의지하는 새로운 공동체를 보여주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부분이다.
명화가 만난 새로운 공동체는 진정 정의로운 사회일까? 그 공동체의 수명은 얼마나 갈 수 있을까? 황궁 아파트가 외부인과의 공존을 택했다면 더 나은 상황이 될 수 있었을까?
어떤 것도 우리는 확신할 수 없다. 명화의 이상적인 바람이 생존이라는 가치 앞에서도 반드시 옳은 길이라고 볼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다.
결국 닥치고, 겪지 않으면 결과는 모르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황궁 아파트 사람들의 선택을 비웃기 위함인지, 세상의 희망을 보여주기 위함인지 끝내 공존을 선택한 사람들의 생존을 결말로 담아낸다.
사실 현실적인 결말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정말 현실적인 선택은 결국 황궁 아파트 사람들이 택한 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럼에도 정의를 버린 이들은 무너지고, 정의에 가까운 길을 향했던 사람들이 웃는 장면으로 마무리한 것은 결국 이 영화가 이 사회의 현실을 잔혹동화로 풀어낸 하나의 우화임을 보여준다.
이것은 개인적으로 영화 속 현실에 대한 감정 이입이라 할 것이고, 정말 좀 아쉬운 부분은 계속해서 정의와 인간의 도리를 고민하던 명화가 영탁을 무너뜨리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다.
명화는 영탁의 비밀을 밝힘으로써 '우리 아파트'라는 공동체의 허상을 드러낸다. 하지만 그녀의 그런 선택을 현실적으로 보자면, 결국 자신과 대척점에 있는 인물인 영탁을 그의 약점을 이용해 끌어내린 것에 지나지 않는다.
명화가 작중 갖는 상징적 이미지와 가치를 생각하자면, 결국 그녀는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과의 연대와 선한 영향력으로 세상의 변화를 시도했어야 맞지 않았나 싶다. 시스템의 비인간성과 불합리성을 설득하는 방식이 아닌, 권력의 정점을 무너뜨리는 정치적 방식을 선택한 그녀의 모습은 그녀의 상징성이나 영화가 지향하는 메시지의 순수성을 약화시키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든다.
*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