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샤 Mar 30. 2021

경칩(驚蟄), 개구리 소리에 깨어난 새로운 인생

절기의 일기, 경칩(驚蟄)

  경칩, 두 귀로 직접 경칩의 개구리 소리를 들어본 사람이 있을까. 겨울잠에서 깨어난 개구리의 울음소리라는 뜻의 경칩, 경칩의 시기는 모든 것이 새로이 시작되는 3월 초이다. 그러니까, 모든 시작의 시작에 경칩이 있다. 그리고 나는, 경칩 즈음 정말 개구리울음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다. 20대 중반, 길을 잃기 위해 새로운 길로 들어선 새로운 시작점에서.


경칩





  10년을 넘게 갈망해온 기자의 꿈을 놓고 나니, 삶이 가벼워졌다. 남들처럼 아르바이트도 했다. 기자 준비한다는 핑계로 엄마 아빠한테 받아쓴 돈이 도대체 얼마이던가. 엄마의 계좌번호와 비밀번호를 외우고 다니면서 인출한 돈에 묻은 엄마의 회한을 얼마나 쉽게 무시해 왔단 말인가. 기자를 버리고 나니, 원래도 일개 대학생이었던 나는 진정으로 평범한 대학생이 되었다. 집 앞 호프집 알바도 하고 편의점 밤샘 아르바이트도 했다. 남들 취업준비로 학교도 안 나오는 4학년 2학기를 23학점 꽉 채워서 듣고 졸업을 했다.


  이듬해 3월, 나는 태어나서 사실상 처음으로 논산을 가 봤다. 행정구역으로는 논산이었지만, 사실상 계룡산이었다. 그리고 첫날밤, 나는 현실을 마주했다. 아, 이것은 제대로 잘못되었구나. 나는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제대로 했구나. 불빛 하나 없는 적막한 산골, 그 컴컴한 기숙사에 누워 나의 처지를 돌이켜 보았다.

최고학년이 나보다 어린 신생대학에 인생 공부해보겠다고 입학했다. 가장 큰 메리트는 '전원 장학금 지급', '전원 최고 수준 기숙사 제공'이었다. 하고 싶은 공부를 공짜로 시켜준단다. 사실 이거 때문이었다. 공부를 하는 데 돈을 안 낸다고 하니, 인생 모험이었다. 그래, 한 번뿐인 인생인데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자. 물론 깊고 긴 고민이 있었지만, 어쨌든 결심했다. 나는 졸업하고 나서 다시 새내기가 된 것이다.




  기자는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자 준비하면서 매일 새롭게 생겨나는 의심과 회의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랐다. 10년 전부터 꾸준히 신문을 봐 왔으나, 사회가 발전하거나 나아진다는 확신은 사라졌다. 오히려 사회는 점점 더 악해지고 퇴화하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내가 기자가 된다고 해서, 일개 여기자 한 명 더 늘어난다고 해서 우리 사는 세상이 좋아질 거라는 기대나 희망 같은 건 비웃음 사기 딱 좋은 주제였다. 그러면 그냥, 나도 다른 기자들처럼 사회부 파출소부터 시작해서 월급 받다가 기레기가 되는 것일까. 그렇게 해서 바라던 상해특파원이 되면, 친구들은 자식새끼들 낳고 잘 살 텐데 나 혼자 독야청정 중국과 한국을 드나들며 생의 외로움은 꼭꼭 감춘 채 데스크에서 글이나 쓰는 꼰대로 늙어 가겠지. 내가 생각한 기자와는 점점 멀어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야,라고 생각하던 어느 날 아빠가 툭 건넨 '불교 공부를 해보지 그래'라는 말은 그날부터 나의 화두가 되었다. 그리고 두 달 후, 나는 기자 스터디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6개월 후 나는 계룡산 자락의 07학번이 되었다. 내 주변에는 고등학교 4학년들이 아직 벗지 못한 수능의 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코찔찔이들처럼 보였다.

  반면 싸2월드 속 나의 스물다섯 살 친구들은 신입사원 환영회 사진을 올려댔다. 어, 저 친구가 은행에 입사했다고? 그럴 능력이 되었던가, 얼굴이 예뻐서 애교로 뽑힌 거 아닌가? 어, 저 친구가 승무원이라고? 그냥 키 커서 뽑힌 것 아닌가? 나와 매 주말 치열하게 글을 쓰고 토론하던 스터디 친구들도 은행원과 광고회사 신입사원이 되었다는 소식을 알려 왔다. 그들이 처절했던 노력과 결실을 맺은 기쁨은 생각도 못한 채, 내 모든 질투와 시기심을 끌어올려 그들을 미워하고 있었다.

  주말에 서울을 올라가 그들을 만나면 사수에 대한 존경과 푸념이 반반 섞인, 설레는 사회 초년생의 얼굴을 보여 주었다. 그 얼굴들은 하나같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물었다.

  "불교 공부하면 뭐해? 스님 되는 거야? 그 여자 스님 뭐라고 하지? 비구니? 그거 되기엔 우리 너무 창창하지 않냐? 비구니 기자, 그거라면 인정하겠어."

  그래 볼까, 라며 나도 웃어 보였다. 스님 같은 건 생각도 없었다. 스님이 되기에 나는 삶에 미련이 차고 넘치는 사람이었다. 친구들의 생기 넘치는 웃음을 뒤로하고, 을씨년스러운 논산 터미널에 내려 할머니 할아버지 가득한 시내버스를 타고 학교로 돌아올 때마다 나는 1년 전의 나를 끝없이 미워했다. 그 길로 지관전으로 가서 불상을 탓했다. 그런 자비로운 미소 짓지 마세요. 마음의 평화 따위, 개 같은 소리네요.

  생의 굳건한 바닥을 다져보겠다고 스물다섯의 나이에 산속으로 들어온 건 온전히 나의 결심과 선택이었다. 그러나 나의 몸의 현실과 맘의 이상은 전생과 이생처럼 멀었다. 친구들의 세계에서 나도 월급통장을 만들고 사원증 목걸이를 걸고 있어야 했는데, 황금색 뽐내는 불상 앞이라니. 꼴도 보기 싫어서 고개를 숙이면 왠지 더 짠맛이 강한 듯한 눈물이 툭 떨어졌다.   

  그랬다. 나는 나의 '회피'를 증오하고 있었다. 회피는 나의 자랑이자 증오였다. 삶이 힘들어지려는 순간마다 요리조리 피해 왔다. 기자가 되면 뻔할 거다, 라는 나의 오만은 결국 회피하고자 하는 나의 마음을 이기지 못한 채 계룡산 자락으로 끌고 왔다.





  다른 세상의 거대한 입구처럼 서 있었던 계룡산, 나의 논산은 논과 산과 계룡산으로 기억된다. 내가 자랐던 강원도 태백의 산과는 달랐다. 태백의 산은 높고 험준했다. 계룡산은 그처럼 높지 않았으나 거대했다. 영험함, 그렇다. 영험함을 뿜어내는 산의 기운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무당도 많다는 그 산자락에서 나는 스물다섯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받아들이려 노력해도 자꾸만 꿈만 같은, 깨고 싶은 꿈만 같은 현실이었다. 누굴 탓할 수도 없이 온전한 나의 선택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다시, 내가 그런 결심을 하게 된 순간의 마음을 돌아봐야 했다.


  앞으로의 나의 인생에서 수많은 고통과 갈림길을 마주하게 될 것인데, 그때 무참히 무너질 나의 마음에 미리 대들보를 세워 주고 근육을 좀 붙이는 시간이야.
 나의 통제를 벗어나는 나의 감정에 대해 공부하고, 나의 감정을 진짜 내 것으로 만드는 연습을 하는 거야. 나는 시기심과 질투, 변명으로 가득한 사람인데, 그런 마음들이 앞으로의 인생에서 진짜 나를 잡아먹지 않게 하기 위해 잠시 쉬면서 보는 거야.
인생 80으로 보면, 나는 지금도 여전히 초봄이야. 나는 지금 월급보다 더 큰 것을 벌어가려 이곳에 온 거야.
  지금도 조바심이 너를 삼키려 하잖아. 인생에서 중요한 건, 너의 두 발로 네가 굳건하게 설 수 있도록 하는 마음의 힘이야. 마음에 덕지덕지 붙은 질투, 시기심, 조바심, 과거의 너에 대한 증오와 한탄, 후회 같은 것들은 너의 것이 아니야.
이제 깊이 숨을 들이쉬고 내쉬면서 그런 감정들을 꺼내어 봐.  


  

  다시 주변을 돌아봤다. 코찔찔이 고 4 새내기 친구들의 얼굴이 티 없이 맑았다. 그들은 내 안의 용광로 따위 무어 문제 될 것이 있냐는 듯이 웃어 보였다. 계룡산은 영험한 기운을 쉬지 않고 뿜어내고 있었고, 그 위의 하늘도 질세라 끊임없이 순수한 파랑을 뿜어내고 있었다. 겨울의 끄트머리를 지나가고 있는, 아직은 차가운 3월의 공기가 폐 깊숙이 까지 들어와 쓸데없는 감정들을 싣고 나갔다. 마음공부 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곳은 없었다.

  그날 밤, 자기 위해 침대에 누웠는데 창 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지 몰랐다. 룸메이트가 하품을 마치고 알려주었다.


  "언니, 그거 개구리 소리예요. 여기 개구리 많아요. 새 학기 시작하니 또 들리네요, 봄이 왔나 봐요."


  새로운 학기와 새로운 봄의 소리가 내 인생의 새로운 시작을 열어 주었다. 경칩의 소리였다.






  15여 년의 시간이 지나고 돌아본 지금, 그때의 나의 선택은 옳았다. 그때부터 2년 반의 시간 동안 치열하게 해온 마음공부-이론과 실기 모두- 지금 내 인생의 기둥이 되어 주고 있다. 물론 흔들리고 무너지고 쓰러지려 할 때가 있다. 그때마다 그 기둥을 부여잡는다. 그리고 내 안의 들끓는 감정들이 결코 내 것이 아님을, 순간순간 일어났다 사라지는 것임을 알고 있다. 나에게서 떨어져서, 내 것인 척하는 그러한 감정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내 사그라든다. 특히 분노와 증오 같은 감정들은, 그것들에 기름을 부어주는 것이 다름 아닌 '나'임을 철저하게 깨닫게 되었다. 그럴 때마다 20대 중반의 나에게 참 잘했다고 쓰다듬어 주고 싶어 진다.

  

  무엇보다, 기자가 되었다면 만나지 못했을 보물을 셋이나 쥐고 있다. 마음공부하다가 떠난 대만 유학길, 그 인연이 다리를 놓아준 지금의 남편과 평생을 기약하고 얻어낸 보물이다. 이것만으로도 인생은 꽉 찬다. 무엇이 더 필요할까. 파충류와 양서류 백과를 늘 쥐고 다니며 '엄마, 개구리 개굴개굴' 하는 아이의 손을 잡고 개구리 소리를 들으러 다녀야겠다. 모든 시작의 시작을 알리는 경칩, 그즈음의 개구리 소리가 얼마나 나지막하고 예쁜 소리인지 알려 주어야겠다.



  


0으로 끝나는 날마다 절기의 일기를 써보려 합니다.

입춘과 입하를 지나 입추와 입동에 이르는 찰나의 순간들, 그 틈새에 끼워져 있던 이야기를 펼쳐 보려 합니다. 퀴퀴한 냄새를 털어내고 빛바랜 장면을 손으로 쓸어내다 보면, 무기력을 벗어난 진짜 나를 찾아낼 수도 있을 것만 같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