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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샤 Mar 12. 2021

입춘(立春), 완벽한 거짓의 시절

절기의 일기, 입춘

 

  입춘, 만큼 완벽한 거짓을 품은 동시에 완벽한 진실을 품은 단어가 있을까.


  매우 오랫동안 입춘의 입(立)이 입(入)인 줄 알고 있었다. 봄으로 들어서는 시절. 그러나 한자마저도 배신의 냄새가 짙다. 봄이 일어서는 시절이라는 의미였으나, 입춘은 단 한 번도 봄과 관련된 적이 없었다.


입춘



  입춘의 시절에는 늘 눈이 내렸다. 적어도 내 기억 속의 모든 입춘에는 눈이 내렸다. 그냥 눈도 아니다. 대설 같은 절기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만큼 커다란 눈이 내렸다.

  강원도 산골에서 자란 나에게 겨울은 6개월이었다. 내복을 입기 시작하면 나에게 겨울은 시작되었다. 10월부터 입기 시작한 내복은 4월이 되어서야 벗을 수 있었다. 일 년의 절반은 겨울인 고장에서, 나에게 봄은 '좋아하는 계절'같은 유치한 타이틀 이상이었다. 어떤 간절함이 있었다. 봄의 연두가 피어나고 봄의 바람이 불고 봄의 햇살이 내리쬐는 것은, 단순한 봄의 도래가 아니라 늙은 계절의 얼굴을 한 지긋지긋한 겨울의 퇴장을 의미했다. 봄이 온다는 것은 어린 내게 실로 묵직한 현실이었다. 아빠, 입춘인데 왜 아직 겨울이야?라고 물으면 아빠는, '밖은 겨울인데 땅은 이미 녹기 시작해, 땅 속의 씨앗들은 나올 준비를 하려고 싹을 틔우기 때문에 입춘이지'라고 말했다. 순 거짓이었다. 땅이 녹기에는, 쌓인 눈의 두께가 씨앗을 질식시키기 딱 좋았다.

  그럴수록 춘(春)은 더욱 간절한 기다림이 되었다. 그러나 늘 기다림의 결과는 참혹했다. 입춘이라는 단어는 눈사태와 눈 뭉텅이에 압살 되었다. 겨우겨우 2월이 지나 본격적인 봄의 발현인 3월이 되어도, 꽃샘추위 따위의 단어가 다시 두꺼운 현실로 내 앞에 버텼다. 봄은 도대체가 느려 터졌다. 4월 중순 즈음이 되어 진짜 연두와 진짜 꽃, 진짜 봄바람이 불어서야 진짜 봄은 시작되었다. 입춘(立春)을 60일 정도 더 지나서야 비로소 진짜로 입춘(入春)할 수 있었다. 입춘과 봄의 괴리는 너무나도 컸다.



  나의 스무 살의 입춘도 거짓말 같은 시기였다. 거의 10년 가까이 품어온 '상해특파원'의 꿈을 이룰 첫 단계를 거쳤다. 중국어과의 겨울 연수로 상해로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6주간의 단기 어학연수였다. 첫 출국이 꿈의 도시였다. 2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상해 푸동공항에 첫 발을 내리던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6주간 푸단대학 중문과와 기숙사를 들락거리며 상해의 공기를 폐 깊숙이 찔러 넣었다. 개혁 개방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중국의 상해 이곳저곳에는 빨간 플래카드에 선동적인 글귀가 걸려 있었다. 이게 중국이지. 

  기숙사 앞의 훈툰 맛집, 중국에 빨리 적응하고 싶어 웩웩거리며 쑤셔 넣었던 샹차이(고수 나물), 몰래 흠모했던 장바오꾸이(張寶貴)라는 이름의 라오스, 캠퍼스 가득했던 자전거와 자전거 주인의 오래 감지 않은 머리, 밤마다 상해의 얼굴을 빛냈던 황푸강과 둥팡밍주(東方明珠), 자주 놀러 갔으나 함부로 쇼핑할 수 없었던 신톈디(新天地), 모든 것이 지금도 여전히 생생하다. 10년 후에 난 이곳에서 기자 생활을 하고 있을 것이다, 라는 주문을 아침 점심 저녁으로 되뇌었다. 

  그렇게 6주를 지내고 돌아온 날이 하필, 입춘이었다. 인천공항에 발을 내리는 그 순간 역시 잊을 수가 없다. 상해의 그 모든 순간이 거짓처럼 휘발되었다. 입춘은 그런 힘이 있었다, 봄 따위 나와 관련 없다는 배짱, 내 모든 소중한 순간을 꿈같은 거짓으로 만드는 뻔뻔함.


  그로부터 8년 후의 입춘도 비슷했다. 대만 유학 중이던 나는 친한 친구와 겨울 방학을 맞아 홍콩으로 여행을 갔다. 홍콩에는 친한 친구가 있었다. 그녀만 믿고 떠난 것이 '거짓'의 시작이었다. 그녀가 예약한 숙소는 한 명이 자다가 기침만 해도 다른 한 명은 침대 밑으로 떨어지는 그런 숙소였다. 결국 중간에 우리가 직접 다른 숙소를 찾아 떠났다. 가난한 학생들에게 걸맞은 숙소의 침대는 2개가 분리되어 있었으나, 침대 간격이 약 10센티미터였고 머리맡에는 재래식 변기가 있었다.

  어쨌든 홍콩은 홍콩이었다. 딤섬은 하나같이 맛있었고, 홍콩을 위해 30번쯤 본 영화 중경삼림의 에스컬레이터도 몇 번이나 탔다. 량챠오웨이(梁朝偉)의 눈빛을 떠올리려 노력했으나, 그러기에는 '세상에서 가장 긴 에스컬레이터'라는 명칭에 어울리지 않게 중간중간 끊어졌다. 

  무엇보다 겨울인데도 덥고 습했다. 홍콩 스타들의 거리 싱광다다오(星光大道)도 처음에 갔을 때는 흥미로웠으나 매일 가기에는 그저 '보도'일 뿐이었다. 트램도 세 번을 탔고, 홍콩의 밤도 딱 3일째 되던 날부터는 다리만 아팠다. 스타페리와 빅토리아 파크의 감동, 침사추이의 산책 역시 감흥을 잃어가고 있었다. 8일이나 있었으면서, 마카오도 못 가보고 디즈니랜드도 가지 못했다. 우리에게는 홍콩의 추억을 반짝이게 할 돈이 없었다. 

  입춘 즈음, 나와 친구는 침묵을 사이에 두고 어색하게 대만행 비행기에 올랐다. 8일의 홍콩이 거짓처럼 사그라들던 조용한 비행기였다. 홍콩은 우리에게 실재했으나, 우리에게 즐거운 추억은 부재했다. 그 끝에 입춘이 있었다.


  입춘의 거짓은, 4년 후에도 재현되었다. 평생을 비혼으로 살아온 나는, 서른을 넘기고 그다음 해 입춘 즈음 시댁 식구들이 모두 모인 자리의 주인공이었다. 연예인이 운영하는 고급 레스토랑이었다. 사실상 처음으로 시어머니와 시이모와 시동생과 올케 될 사람과 두 돌이 지난 시조카를 보는 자리였다. 부유한 조명과 더 부유한 음식들, 여유로운 얼굴들과 대화 속에 나는 꽤나 까끌거리는 모래처럼 느껴졌다. 네, 와 아니요, 만 겨우 대답하는, 매 순간이 거짓이 아닌 진실임을 확인해야 하는 나였다. 마지막까지 웃는 얼굴을 장착하고 나온 그 식당의 입구에, 입춘은 역시나 거짓처럼 눈을 뿌리고 있었다.





  내 기억 속 모든 입춘은 처음부터 끝까지 거짓으로 일관했다. 입춘인 내일은 강원 산간 지역에 대설주의보가 내려졌습니다 같은 일기예보, 희석된 장래희망의 도시, 씁쓸한 꿈같은 여행의 종착역, 그리고 평생의 단단한 의지였던 비혼의 종점, 모든 지점에 입춘이 있었다. 돌이켜 보면 하나같이 완벽한 꿈만 같은 배신으로 점철되어 있다. '입춘'이라는 위선의 단어가 봄의 시작을 알린다는 것이 서글퍼질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하나 어찌할 수 없는 굳건한 진리가 있다. 입춘을 지나지 않고는, 결코 봄은 올 수 없었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 입춘은 그 자체로서의 완벽한 진실이다. 거짓 같은 모든 입춘을 지나고 모습을 드러낸 봄은 어쨌든 총천연 연두의 절대적인 봄이었다. 역시나 눈이 왔지만 그 순간을 지나 결국은 다시 글을 쓰고 있는 나의 지금 이 순간처럼.

 

  입춘(立春), 바야흐로 봄으로 들어서는(入春) 거짓 같은 순간이다.






0으로 끝나는 날마다 절기의 일기를 써보려 합니다.

입춘과 입하를 지나 입추와 입동에 이르는 찰나의 순간들, 그 틈새에 끼워져 있던 이야기를 펼쳐 보려 합니다. 퀴퀴한 냄새를 털어내고 빛바랜 장면을 손으로 쓸어내다 보면, 무기력을 벗어난 진짜 나를 찾아낼 수도 있을 것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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