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그리고 계절은 '흐른다'. 그렇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흐른다'라는 동사가 그들에게 가장 어울린다. 다른 적합한 동사를 떠올리려 해 봐도 좁고 작은 내 어휘의 방안에서는 건질 수 있는 것이 없다. 흐르는 물속에서 쥐이는 것이 없듯이, 시간이나 계절 속에서 나는, 잡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나의 생은 그러한 줄 알았다. 무엇 하나 잡히지 않는, 성과나 결실 이런 것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절기, 절기의 동사는 무엇일까. 쉽게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그나마 어울리는 것이 '오다'나 '가다'같은 왕래 동사이다. '입동이 왔구나, 추분을 지나고 보니'처럼 쓰이는 걸 보면 그렇다. 그렇게, 절기는 '시점'이자 '생의 위치'같은 것이었다. 봄은 입춘, 우수, 경칩, 춘분, 청명, 곡우라는 여섯 '시점'을 밟고 지나야 만 봄의 시절을 졸업할 수 있었고, 우리는 비로소 '입하'로 들어서며 여름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입하'에 들었다고 바로 여름이 시작되는 것은 아니었으나, 여름은 우리 발 밑에서 나무의 뿌리를 두드리며 줄기를 타고 올라오고 있었다. 입춘과 입동 모두 그렇게 계절보다 빠르게 대지의 온도를 변화시키고 있었다.
유치하게 따져보자면, 만으로는 서른여덟 번의 사계절과 서른여덟 번의 24절기를 지나왔다. 내 지난 모든 계절은 수수한 낯빛을 하고서는 치열하게 추억을 지워왔다. 계절은 그렇게 양면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저 '10대의 그 봄, 20대 여름 언젠가, 30대 초반의 가을' 정도로 추억을 흐리게 하고 뭉개 왔다.
그래서 나는, 내 삶도 그렇게 흐리고 으깨어진 줄로만 알았다. '사람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별 거 없어'라고, 사람들이 하는 말을 그대로 내 인생에도 적용시켰다. '사는 게 꿈같다'라는 말도 비슷했다. 잘 기억나지도 않고 몇몇 장면만 또렷할 뿐 새어나가는 그 영상의 어디에서도 나는 주변처럼 존재할 뿐이었다.
그러나 '절기'는 달랐다. 절기는 '시점'이고 '위치'여서, 시점을 가진 자와 특정 위치에 서 있는 자가 필요했다. 절기는 비로소 나를 내 인생의, 내 기억과 추억의 주인공으로 나를 불러들였다. 내 15살 봄의 그 교실의 지우개, 26살 여름의 뜨거웠던 활주로, 34살 가을 아이와 보낸 병실, 그리고 유년의 겨울 공부방에 있는 나를 실존자로 내세웠다. 무의식 속에 납작하게 엎드려있던 그곳의 눈빛들과 냄새들, 그림자의 농도와 스쳐가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일으켜 세웠다.
사람 사는 건 그렇고 그런 게 아니었고 꿈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인생은 그리고 과거의 추억은 완벽한 현실이었다. 모두의 인생은 각자의 빛과 온도와 질감을 갖고 있었다.
나 역시 '절기'라는 프리즘을 통해 보고서야 알 수 있었다. 멈추어 봐야만 알 수 있는, 내 지난 생의 다채로웠던 나날들이 갖는 빛깔과 온도와 질감을. 그리고 지금 여기서 내 인생을 24절기로 쪼개고 나누어 보는 작업을 마무리하면서, 과거의 날들과 그날들을 기록한 날들과 그 후의 날들을 이어보려 한다. 흐르는 시간 속에 추억을 꽂아둔 채 이어져 있는 절기처럼.
후일담, 에필로그, 이야기의 그후
이제 24개월이 지난 막내가 요즘 부쩍 '많이'를 많이 말한다. 나를 꼬집고 내 표정을 보고는 '많이 아파?' 묻는 것이다. 내가 우는 시늉이라도 하면 '많이 많이 아파?' 묻고, 내가 엉엉엉 소리라도 내면 '많이 많이 많이 많이 아파?' 묻는다. 막내의 부사는 '많이'가 유일하다. 많이의 개수만큼 정도가 표현된다.
부사(附詞). 많은 글쓰기 수업이나 책에서, 글을 쓸 때는 부사의 사용을 줄여 최대한 간결한 문장을 쓰라고 한다. 마흔을 앞두고 지난 생을 돌아보는 글을 쓰면서 나 역시도 그랬다. 몇 번의 퇴고를 하면서 부사를 최대한 빼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백스페이스를 열심히 누르는 부지런한 손가락이 문득 질문거리를 던졌다. 너의 지난날은 이렇게나 풍요로웠으면서, 왜 글은 간결하려고만 하는 거야.
약간의 숨을 고르고, 결국 나는 백스페이스 위의 손가락을 거두었다. 그리고 열심히 부사를 다시 덧붙이기 시작했다. 덕지덕지여도 좋으니 내 그 시절의 감정만큼 내 글도 풍요로운 느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솔직해지고 싶었다. 문학적인 글이라는 허울을 뒤집어쓰지 말고, '그날을 그대로 불러오자'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렇게 쓴 24개의 글에는 부사가 가득하다. 더욱, 엄청, 매우, 많이, 아주, 심히, 극도로, 완전히, 완벽하게, 가 여기저기 넘쳐난다. 유일했던 반려견을 보내고, 큰 집을 다녀오고, 가족여행을 다녀오고 삼계탕 생일 선물을 받던 날들의 기분이 그러했기에 그렇게 쓸 수밖에 없었다. 그 다양하고 실제적이며 풍부한 감정을, 도대체 부사 아니고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글에서 부사만큼 사용을 자제해야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접속사'이다. 그러나 나는, 절기의 일기에서만큼은 접속사 또한 남발했다. 나의 날들은 이어졌기에 '그리고'가 필요했고, 힘든 가운데 배움이 있었으니 '그러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필연적이었다. 문학적 글쓰기가 아닌 나를 털어내는 이야기들이었기에, 내 내면의 이야기들은 완벽이나 완성 그런 것들을 가까이하지 않았다. 필요하면 얼마든지 부사와 접속사들을 불러왔다. 글은 길어지고 볼품이 없었으나 어째 내 속은 더욱 단정해지고 있었다. 부글거리던 내 안의 감정들이 가라앉는 데 일조한 것이, 글과 그 안에 산재(散在)한 부사와 접속사들이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내 앞으로 펼쳐질 생에도 풍부했으면 좋겠다. 기쁨과 행복은 '매우, 엄청, 아주' 많았으면 좋겠고, 슬픔이나 고통은 '덜'이나 '조금' 함께했으면 좋겠다. 살면서 슬픔이나 고통은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그럼에도' 교훈과 깨우침이 함께 하길 바란다.
인생은 가르침과 더불어 계속 이어져 나갈 것이기에, 가슴속에 늘 '그리고'를 품고 지내려 한다. 지금까지 그러했듯, 앞으로도 입춘과 입하, 입추 '그리고' 입동을 거쳐나갈 것이다. 그 나날들 속에 여전히 많은 부사와 접속사들이 흘러넘쳤으면 좋겠다. 내 인생의 부사와 접속사들이, 내 글의 부사와 접속사로 적절하게 치환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내 글을 읽게 되는 이들의 마음에도 적잖은 부사를 불러일으켰으면 좋겠다. 그들과 나의 마음이 접속사로 잘 이어졌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 앞으로의 '절기의 일기'는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지난 40년의 절기의 일기는 이렇게 마무리짓지만, 앞으로 40년의 절기의 일기는 이제 시작이다.
막내가 '많이 많이 많이 많이'를 '아주 많이'라고 말할 즈음, 내 마흔의 첫 '입춘'이 시작될 것 같다. 내 아이의 부사가 무르익을 즈음 내 나이 앞의 4도 성숙의 증거가 되었으면 좋겠다.
내 마흔의 입춘, 그날도 어김없이 '완벽한 거짓의 시절'이었으면 좋겠다. '입춘(春)'이라고 발음하는 입술 사이로 흰 눈이 내렸으면 좋겠다. 그렇게 내 절기의 일기가 다시 쓰이게 되길 바란다. 계절은 반복되어도 추억은 새로운 것처럼 절기는 반복되어도 앞으로의 삶은 새로울 것이기에, 세포분열을 시작할 이야기들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분열의 조짐을 지니고 있다. 그 탄생의 처음은 역시나, '입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