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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샤 Oct 18. 2021

대한(大寒), 이끼언 이끼재 온호 이끼야

절기의 일기, 대한(大寒)

  소한(小寒)의 눈이 대한에 녹는다는데, 대한의 창밖은 그저 하얗기만 했다. 물론 유년의 내 지방은 눈이 많이 내리는 곳이었고, 나는 그 눈을 좋아했다. 눈이 많이 오는 곳에 산다는 자부심이, 적설의 속도를 자랑스러워했다. 눈은 그렇게 1월을 가득 채웠고, 창밖의 눈이 녹지 않기를 바라며 '이끼 언 이끼재 온호 이끼야'를 외쳤다. 외침의 끝엔 다행히, 용해를 허락하지 않은 눈이 우리 남매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한






  연두색 책이었다. 방학이 이틀 정도 지나자 아빠는 우리 남매를 앉혀 놓고는 말했다.

  "매일 이거 처음부터 끝까지 소리 내서 읽어라. 이거만 하면 다른 거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 대신 이건 매일 꼭 해야 돼. 검사한다."

  千字文. 아, 아빠, 시대가 어떤 시댄데 천자문. 물론 소리 내서 말하진 않았다. 표정으로 말한 것 같은데, 아빠는 역시나 눈치채지 못한 것 같다. 하아, 천자문이라니. 국민학교 마지막 방학인데, 천자문이나 하고 썩으라니. 진짜 싫다.

  피할 순 없어 보였다. 웬만한 건 웃으며 말하는 아빠가 그때만큼은 조금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빠가 가끔 그럴 때가 있는 데, 그럴 땐 무조건 말을 들어야 하는 거다. 새해 첫날 새벽 태백산 산행이라던가, 병원에서 주사를 맞아야 하는 때라던가. 대신 이거만 하면 뭐든 해도 된다 했으니, 디즈니 만화를 계속 봐도 될 거고 가요톱텐 녹화 비디오를 계속 봐도 될 거다. 그래서 참고 시작했다.

  하늘천天 따(ㅇ)지地 검을현玄 누를황黃 집우宇 집주宙 넓을 홍弘 거칠 황荒 날일日 달월月 찰영盈 기울측仄 별진辰 잘숙宿 벌일렬列 베풀 장張. 


  이 정도까지는 기세 등등하다. 일부러 들으란 듯이 더 크게 읽었다. 거의 외치는 수준이었다. 동생과 나는 경쟁하듯, '누가누가 더 큰 소리로 외치나' 시합하듯 질렀다.   

   찰한寒 올래來 더울서暑 갈왕往 가을추秋 거둘수收 겨울동冬 감출장藏. 

  

  벌써부터 집중력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동생은 쉬 마려, 누나 이거 봐, 이를 말하기 시작했고, 나는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에 동생이 뭐라 하든 혼자 읽어 나갔다. 그러나 동생의 방해공작은 늘 효과가 좋았다. 한자 옆에 그림에 코털을 그리거나 뿔을 그려놓은 동생의 책을 보고 킥킥 대거나 코딱지를 붙여놓은 걸 보며 아하하하 웃었다. 그러다가 대충 두 세장 넘겨 읽기도 하고 읽은 부분을 또 읽기도 했다.

  아직 1/10도 안 읽은 것 같은 데 벌써 너무나도 지겹다. 넉사四 큰대大 다섯오五 항상상常, 동녘동東 서녘서西 둘이二 서울경京  같은 부분에서는 '오, 나 이 네 글자 다 알아' 하면서 반가웠지만, 대부분은 모르는 글자였다. 그래서 더 지겨웠다. 책상에 얼굴을 붙이고 책을 세우고 대충 읽다 보면 아빠가 문을 벌컥 열곤 했다.

  "어디 읽고 있노. 제대로 읽고 있나."

  그러면 동생과 나의 척추뼈는 자동 기립했다. 아빠는 공부방으로 들어왔다. 공기가 한순간 50킬로그램은 더 무거워졌다.

  "이거 무슨 글자로?"

  아빠가 짚은 글자를 알 리가 없다. 우리는 한자 밑에 한글만 주야장천 읽어 댔으니. 몇 글자 더 짚은 아빠의 손가락 끝에 거스러미는 한눈에 들어왔으나 아빠 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글자는 알 턱이 없었다.

  "니들 제대로 읽고 있나. 한자를 보면서 읽어야지 한글만 읽으면 무슨 소용이로. 제대로 읽어."

  다행히 아빠는 별 말 안 하고 나갔다. 휴, 다행. 그러면 동생과 나는 다시 제대로 읽는 것이다, 두 페이지 정도. 그러다 '지아비부夫 노래부를창唱 지어미부婦 따를수隨'에서는 '나 이거 알아' 살짝 우쭐대기도 하고, '두려울송悚 두려울구懼 두려울공恐 두려울황惶' 같은 부분에서는 '다 똑같은 의미인데 한자는 다 달라' 하면서 신기해했다. 그러나 그런 것은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빨리 읽고 빨리 끝내는 것이 중요했다. 빌려온 알라딘 비디오가 기다리고 있었고, 창 밖에 눈이 오고 있는데 이딴 천자문이나 읽고 있는 것이 너무나도 속상했다. 열두 살 속이 까맣게 타들어 갔다.

  어느 날은 '슬플척㥻 사례할사謝 기쁠환歡 부를초招'*를 읽다가 울기도 했다. 너무너무 읽기 싫었다. 내가 왜, 이딴 옛날 걸 읽느라 겨울방학의 한 시간 반을 꼬박 바쳐야 하는 거지. 친구들 아무도 안 하는데 나는 왜 이렇게 재미없는 걸 하고 있어야 하는 거지. 살면서 아무 짝에 도움도 안 될 걸 왜 해야 하는 거지. 너무나도 억울했다. 오늘 다 읽으면 아빠한테 안 하고 싶다고 말해야지, 라는 생각을 읽는 내내 했다. 천자문 책을 버리거나 태우는 꿈도 꾸었다. 그렇게 깝깝한 마음으로 매일 읽었다.

 

  매일 그렇게 점심을 먹고 난 즈음 아빠는 슬슬 우리 남매를 불렀다.

  "인제 천자문 해야지? 빨리 읽고 놀아라."

  그러면 우리는 수갑 찬 범죄자의 모습으로 공부방으로 끌려갔다. 나란히 책상에 앉아 울기 직전의 표정으로 '하늘천따지검을현누를황'을 외쳤다. 그것은 거의 울분이었다. 그렇게 억울함에 한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나귀려驢 노새라騾 송아지독犢 소(특별)특特'의 부분을 읽고 있었다. 나귀려, 라는 복잡한 글자를 지나는 것은, 그것은 마치 고속도로의 하이패스를 지나는 기분임을 의미한다. 그러면 어느새 목적지에 달해 있다.

  '이끼언焉 이끼재哉 온호乎 이끼야也!'

  

  동생과 나는 이 부분만큼은 늘, 매번, 빠짐없이 '하늘천따지검을현누를황'보다 더 크고 진심을 다해 외쳤다. 그러고는 연두 색 책을 세상 모든 사람이 들을 만큼 크게 '쾅' 덮고 기세 등등하게 공부방을 빠져나왔다. 동생은 레고 통을 쏟고 나는 비디오를 틀었다. 아빠는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알라딘을 다 보고 가요톱텐을 다 보아도 아빠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오후가 가고, 저녁을 먹고 놀다가 잠이 들고 다음날이 되어 아침을 먹고 도망칠 궁리를 하다 보면 어김없이 우리 앞에는 연두색 책이 놓여 있었다. 하늘천따지검을현누를황,을 외치는 동안 창 밖엔 어김없이 흰 눈이 쌓이고 있었다.

  나의 국민학교 마지막 대한이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3주 정도가 지나자, 천자문은 입에 붙기 시작했다. 의미도 조금씩 눈에 들어오면서 한자에도 눈길이 갈 여유가 생겼다. '재미'나는 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읽기 전 책의 서문을 보았다. 

아주 옛날 어느 신하가 왕을 노하게 하여 옥에 갇혔는데, 천 개의 글자로 4 행시를 지으면 풀어주겠다고 해서 밤을 새워서 글을 지었다는 이야기였다. 너무나도 고심해서 글을 쓰는 바람에 머리가 하얗게 셌다고 해서 천자문을 백수문(白首文)이라고도 한다고 했다. 


  이게 진짜면, 내가 매일 억지로 읽은 글은 한 사람의 목숨 값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부터 천자문은 나에게 '네 글자로 이루어진 한시 250편'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읽자, 천자문의 내용들이 버릴 것이 단 하나도 없었다. '알지知 지날과過 반드시필必 고칠개改'나 '큰덕德 세울건建 이름명名 설립立'같은 부분은 직관적으로 그 뜻이 받아들여져 열두 살에게도 꽤 큰 가르침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다가 거의 유일하게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었으니, 그것은 마지막 네 글자 '이끼언 이끼재 온호 이끼야'였다. 아니, 잘 나가다 왜 이끼들이 한데 모여 끝나는 거야?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많이 궁금했지만, 궁금증이 계속 이어질 순 없었다. 언재호야를 외치고 책을 덮어야 했기 때문이다. 천자문을 다하고 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 

  기다리고 있을 친구와 스노 브루스 끝판을 깨기 위해 오락실을 가야 했고, 룰라 춤 연습을 해야 했다. 다 읽은 밍크나 나나를 보며 그림을 따라 그렸고, 아인슈타인 책도 마저 읽어야 했으며 옥상에 건설해둔 눈의 도시를 완성시켜야 했다. 학원은 안 다녀도 할 건 많았고 그래서 많이 바빴다.

  '천자문'만 아니면 더 재미있었을 국민학교 마지막 방학인데, 천자문이 조금 망친 기분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천자문이 갈수록 입에 붙어 방학이 끝날 즈음엔 '40분 독파'가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마무리 '이끼언 이끼재 온호 이끼야'는 한결같이 외침으로 끝났고, 방학 마지막 날의 외침은 유난히 속 시원했다. 그렇게 겨울방학을 가득 채웠던 연두색 천자문 책은 그 후로 단 한 번도 제대로 펴보지 않았다. 내 인생에서 다시는 마주치지 말자, 천자문아.

  인생은 아이러니로 가득하다. '이끼언 이끼재 온호 이끼야'의 비밀이 풀린 건 그로부터 9년 후였다.



  대학교 2학년 때 사서인 대학(大學), 논어(論語), 맹자(孟子), 중용(中庸)을 공부해야 했다. 필수과목이었다. 논어, 맹자, 중용의 대부분 문장이 언재호야(焉哉乎也)로 끝나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맹자의 고자장의 첫 문장, '天將降大任於斯人也'**에도 也가 들어갔다. 그러니까, 그들은 의문, 반어, 완료, 탄식, 단정 등의 어감을 나타내는 어미 조사였던 것이다.  

  그제야 연두색 서문의 이야기가 다시 떠올랐다. 996자를 쓰고 마지막 네 글자를 짓지 못해 고심하던 차에, 귀신이 어조사 네 글자를 알려줘 완성하였다는 이야기. 천자문을 50일 정도 매일 읽고 남은 거라곤 사실상 하늘천땅지검을현누를황과 이끼언이끼재온호이끼야 뿐이었는데, 마지막 네 글자의 뜻을 20살이 넘어서야 겨우 알게 된 것이다.

  앞의 글자들로 그 뜻을 알렸다면 천자문의 끝자락에서는 결국, 그 말과 문장을 완성시키는 '어조사(助辭)'를 보임으로서 문장으로서도 완성되었음을 보였다. 중간중간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것들, 없어도 될 것 같지만 없으면 안 되는 것들, 어조사, 그것은 마치 우리 남매를 교육하는 아빠의 눈빛과도 같은 것이었다.





  생업의 현장에 나가 있는 엄마 대신 나의 교육을 돌본 것은 아빠였다. 아빠와 함께 자리에 앉아 교과서나 문제지를 쳐다본 기억은 거의 아니 아예 없다. 아빠는 늘 숙제를 하고 있는 나의 등이나 뒷모습을 슬쩍 보고는 나갔다. 또는 잠시 들어와서 '지금 하는 숙제가 어떤 내용이로' 묻고 나의 대답을 듣고 나갔다. 그게 다였다. 아빠가 나의 공부를 돌본다는 느낌은 없었지만, 숙제를 하는 내게 그 눈빛은 단연코 빠진 적이 없었다.

  4학년이 되었을 때였다. 곧잘 공부를 하던 딸이 사회를 65점을 받아 왔다. 4학년부터 사회는 외워야 할 것이 많아진다. 공부해야 하는 방법이 달라져야 했지만, 나는 늘 그랬던 교과서 몇 번 보고 시험을 본 것이다. 아빠는 그날로 문구점에 가서 온갖 지도를 사 왔다. 농업지도, 공업지도, 행정지도, 등고선 지도, 특산물 지도, 지형 지도, 세계지도까지. 말없이 나의 방과 식탁 앞과 화장실에 붙였다.

  그리고 주말마다 나를 태우고는 한두 시간 갈 수 있는 거리 그러니까 강원 중부와 경북 북부까지 태우고 다녔다. 이곳이 지역 이름이 뭐로, 여기서는 뭐가 잘 나오노, 사과지, 왜 사과가 잘 나오노, 경북이 햇빛이 좋아서 대구까지 전체적으로 사과가 유명하다. 사과를 한 봉지 샀다. 나는 돌아오는 차에서 사과를 먹거나 잠을 잤다. 그렇게 기말고사에서 사회 90점을 받았다. 늘 그렇듯 아빠는 나를 앉혀놓고 공부시키지를 않았다. 앉아있는 내 등에 눈빛을 한 두 번 얹을 뿐이었다.

  크면서도 그랬다. 여자도 이런 거 할 줄 알아야 돼, 하면서 아빠는 못질을 하다가 나를 불렀다. 싫었지만 해야 했다. 이미 내 손에 망치가 쥐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빠가 하는 걸 볼 땐 쉬워 보였는데, 나는 벽을 때렸다. 어라, 왜 이러지. 다시 쳐봐도 못의 왼쪽으로 스쳐갈 뿐이었다. 그 못 하나를 제대로 박을 때까지 나는 벽을 대여섯 번을 더 때려야 했다. 그래도 아빠는 끝까지 지켜봤다. 사람이 직접 해봐야 돼, 안 해 보고는 몰라, 한 마디 던지고는 나머지 못을 직접 박았다.

  동생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너 이리 와 앉아 봐, 하고는 마늘을 까게 했다. 물론 나 역시 마늘 까는 사람 3에 동참시켰지만, 나보다는 동생이 아빠 옆에 앉은 횟수가 많았다. 너네가 사는 시대는 남녀가 없어, 이런 걸 남자가 더 잘해야 하는 거야, 라며 동생에게 마늘 까는 법을 가르쳤다. 동생은 묵묵히 마늘을 깠다. 나는 그런 아빠와 동생 옆에서 '마늘 까는 남자들'을 자연스레 보며 자랐다.  

  그런 아빠를 볼 때마다 내 안에서는 조용히 연두색 책이 펼쳐졌다. 몇 천 년 전 천자문을 쓴 그 사람의 내용보다 아빠의 가르침과 교육 방식이 더 크게 울려왔다. 자식들을 교육함에 있어 직접 개입하지 않고 한 발짝 떨어져 필요한 곳에서 드러나지 않게 지켜보는 것, 마치 '언재호야' 같았다. 어조사처럼 조용히 있어야 할 곳에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나와 동생의 성장에 필요한 곳에 꼭 필요한 만큼 있어 주었다.

그렇게 아빠의 교육은 늘 부드럽고 깊은 의미를 가진 문장 같았다. 힘이 있고 억지가 없었다. 덕분에 나와 동생은 각자의 삶에서 각자의 주어와 동사가 되어 능동 표현을 드러낼 수 있었다. 그 바탕에 '이끼언 이끼재 온호 이끼야'가 있었다.






  유년기의 기억이 삶을 살아가는 힘의 원천이 된다는 것을, 사십 년 가까이 살면서 처절하게 깨닫고 있다. '어렸을 때 그랬었는데', '어렸을 때 엄마랑 아빠랑', '어렸을 때 산에 가서', '어렸을 때 옆집에' 이런 말들이 실질적으로 우리 삶의 대부분을, 특히 감정적인 색을 결정하고 있음을 나의 아이들을 보며 배우고 있다. 몇 번 가지 않았던 가족 나들이의 길에서 본 나무와 주말마다 먹었던 닭갈비집 신발장 색깔, 매일 깨우고 싶었던 엄마의 낮잠 밑에 깔려 있던 노곤함, 책을 보는 아빠 뒤의 새카만 책장 속 붉은 책들 이런 것들이 내 삶의 저변에서 중요한 순간마다 튀어나오는 것을 본다. 내 모든 유년의 기억 속 중심과 언저리 어느 곳에나 엄마 아빠가 있었음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매주 주말여행 계획을 세운다. 부모와 함께 간 곳, 그곳에서 먹었던 음식, 그 음식을 앞에 두고 했던 웃겼던 이야기, 근처 편의점에서 사 먹은 아이스크림 결국 이런 시시콜콜한 것들이 아이들의 삶의 양분이 됨을 나는 내 유년을 통해 배웠다. 부모가 중요하게 떠오르는 위치는 그런 곳이면 충분하다고 믿는다. 그리고, 부모가 사이사이 또는 주변에서 서성일 곳이야말로 '학업'에서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공부의 중심이 아닌 문밖 또는 등 뒤에서 눈빛으로 점검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면서 물러나 있으려 한다. 아빠의 그런 자세 덕에 나는 공부가 즐거웠다. 내 등에 쌓이는 아빠의 눈빛은 무겁기는커녕 따뜻해지기만 했다. 그 느낌을 잘 알고 있기에, 나 역시 눈빛의 온도를 데우는 연습을 지금부터 하려 한다. 엄마 나이 일곱 살의 다짐이다.


  인생은 아이러니로 가득하다. 학령기에 접어드는 첫째와 함께 하고 싶은 유일한 공부가 다름 아닌 '천자문'이다. 그전에 혼자 제대로 공부하고 싶어 책을 사 보니 마지막 문장이 '어조사'로 표현되어 있었다.

일신 서적 출판사, <사행시 천자문 쓰기> 중에서

 

  생각보다 아쉬움이 컸다. '이끼언이끼재온호이끼야'가 입에 딱딱 붙는데, 어쩔 수 없지. 한편으론 아이가 나같이 어리석은 궁금증은 가지지 않을 것 같아 다행이기도 했다.

  나의 어조사는 아빠보다는 조금 존재감이 강할 것 같다. 아이 옆에서 함께 천자문을 읽고 싶다. 순전히 내 욕심이다. 흰 눈을 바라보며 억울해하며 읽었던 그 음률이 새삼 아늑하고 그립기 때문이다. 그 아늑함을, 어미가 되어 다시 느껴보고 싶어 나의 천자문 옆에 아이를 앉혀 보고 싶기 때문이다. 아이의 천자문에 엄마의 미소가 어조사처럼 문장 중간중간 껴있길 바라며, 30년을 돌고 돌아온 내 천자문이 아이의 유년에 차곡차곡 쌓이길 바라며.





* 척사환초(㥻謝歡招): 슬픈 것은 없어지고 즐거움만이 (손짓하며) 부르듯이 온다

* 天將降大任於斯人也 必先勞欺心志 勞其筋骨 餓其體膚 窮乏其身行 拂亂其所爲 是故 動心忍性 增益其所不能

하늘이 장차 그에게 큰 임무를 내릴 때에는 반드시 먼저 그 심지를 지치게 하고 뼈마디를 힘겹게 하며 몸을 굶주리게 하고 생활은 빈궁하게 하여 하는 일마다 어지럽게 한다. 이는 마음의 참을성이 동하게 하여 지금까지 못하던 바를 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맹자 고자장 중에서)




 


0으로 끝나는 날마다 절기의 일기를 써보려 합니다.

입춘과 입하를 지나 입추와 입동에 이르는 찰나의 순간들, 그 틈새에 끼워져 있던 이야기를 펼쳐 보려 합니다. 퀴퀴한 냄새를 털어내고 빛바랜 장면을 손으로 쓸어내다 보면, 무기력을 벗어난 진짜 나를 찾아낼 수도 있을 것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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