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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샤 Jan 13. 2021

택배 배달원의 딸입니다

일체개고(一切皆苦), 배달하는 삶이나 받는 삶이나 쉬운 인생은 없습니다


   한 시라니, 한 시라니.


   막내를 재우다가 깜빡 잠이 들었습니다. 눈도 제대로 못 뜨고 폰을 봤는데, 잠이 확 달아났습니다. 한 시라니요. 그 깟 서랍 잠금장치랑 기저귀, 제게 당장 급하지도 않은 것들을 배달해 주겠다고 이 눈길에 오시겠답니다. 늘 9시, 10시에 오시긴 해서 좀 늦어져도 그러려니 할 때가 많았는데, 오늘 같은 날 이렇게 늦어진다 하면 마음이 많이 쓰일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택배 배달원의 딸이기 때문입니다.






   스물한 살 되던 해 서울로 이사 왔습니다. 강원도 산골에서야 부부가 같이 미용학원을 하면서, 아빠가 특정 직업을 갖지 않아도 먹고 살만 했습니다. 그러나 서울은 아니었습니다. 정수기 영업을 해 봤다가 막내 삼촌의 청바지 공장에서 일해 봤다가 과일 장사를 해 봤다가 집에 좀 계시더니 '행랑' 일을 한다고 하십니다. 행랑과 택배의 차이를 잘 알지 못하는 이십 대 초반이었지만, 어쨌든 아빠가 일을 하는 것 자체가 내심 뿌듯했습니다. 게다가 아빠는 그 일을 하며 즐거워했습니다. 운전도 즐겁고 몸을 쓰는 일도 즐겁다 하셨습니다. 그런 아빠를 보는 것도 즐거웠습니다.

   그러나 '행랑 또는 택배' 일은, 사회적으로는 늘 즐거운 일은 될 수 없었습니다. 아이를 좋아하는 아빠가 엘리베이터에서 '귀엽다' 하며 쓰다듬어 주려 하면 엄마들이 혐오의 눈길을 보냈다는 이야기, 초인종을 눌러보니 받는 사람이 고모였다는 이야기, 그런데도 그냥 택배만 전해주고 왔다는 이야기, 아파트 경비원들이 스트레스를 택배 배달원들한테 푼다는 이야기, 냉동고에 에어컨을 틀기 위해서는 운전석 에어컨을 틀면 안 돼서(차량 고장) 한 여름에도 에어컨 안 틀고 창문만 열고 운전한다는 이야기, 식사는 늘 차에서 김밥이나 엄마가 싸준 도시락이나 고구마를 먹는다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좀 서글퍼졌습니다. 그러나 딸로서의 서글픔은 그때뿐이었습니다. 그런 상황들을, 그런 때의 아빠의 얼굴과 마음을 이해하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어느 날은 다리를 저시길래 어쩐 일이냐고 물었더니, 브레이크가 상태가 안 좋았는데 경사로에 세워둔 차가 슬슬 내려오더라는 겁니다. 그 차를 혼자 막아내느라 다리에 무리가 갔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도 나는 그저 '그랬구나' 하고 말았습니다. 삼손처럼 경사로의 택배 차를 홀로 막고 섰을 아빠를 굳이 상상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상상하지 않아도 눈물은 났지만, 쓱쓱 닦아내고는 말았습니다. 생각날 때마다 자꾸 눈물이 났지만, 그 때마다 그냥 쓱쓱 닦아내기만 했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는 딸이 그런 말에 자꾸 울면 아빠가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함부로 울면 안 됩니다.

   어느 날은 아이스크림을 잔뜩 내놓습니다. 냉동고가 고장 난 줄 모르고 실었다가 다 녹았다며 가지고 왔답니다. 물론 아이스크림은 그대로 배상을 해야 합니다. 먹기 싫었습니다. 그래도 갖고 온 아이스크림이라길래 입에 넣어 보았습니다. 역시나 달고, 꽤나 맛있었습니다. 그래서 더 싫었습니다. 마치, 이십 대 중반 밤샘 편의점 알바를 하고 유통기한이 지난 삼각김밥을 들고 집에 오던 제가 생각나게 하는 맛이었습니다. 엄마는 그 삼각김밥을 부수어서 볶음밥을 해 주셨는데, 기분 나쁘게도 참으로 맛있었습니다. 아침 삼아 그 밥을 먹고 오후까지 자고 일어나던 시절이 생각났습니다. 유통기한 지난 음식을 먹는 삶, 그것은 사실 아무 문제없었습니다. 그저 내 마음만이 지겨워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이런 인생 유통기한 좀 만들고 지키자고.

   명절은 택배 배달부들에겐 특수입니다. 일당이 매우 높아집니다. 물건들도 깔끔하고 물량도 평소보다 적습니다. 운전하는 사람 따로, 배달하는 사람 따로 일할 수 있습니다. 차에서 물건을 내려 집 앞까지 배송하는 인원은 알바를 쓸 수 있어 배달원들은 운전만 하면 됩니다. 아르바이트비 벌러 조수석에 몇 번 타봤습니다. 아빠는 제 용돈 챙겨 주시려 물건 내리고 각 집마다 배달 가는 것마저 다 하셨습니다. 저는 그저 종일 조수석에서 수다나 떨고 음악이나 듣고 자기도 했습니다. 아빠가 들고 가는 황금빛 보자기들을 바라보곤 했습니다. 저런 것들을 주고받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명절마다 주고받는 것일까, 보자기 하나가 내 종일 아르바이트 비보다 비싸겠지.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아빠가 어느새 차를 타고 다음 배송지로 향하곤 했습니다. 그렇게 종일 운전하는 아빠 옆에 있으면서 아빠의 직장 체험도 해 보고 오랜만에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10만 원이 주어졌습니다. 그때만 해도 엄연히 제 아르바이트비였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보다 더한 불로소득이 없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아빠가 택배 일을 한다는 게 어딘가 불편해졌습니다. 뒤늦게 찾기 시작한 직장에서는 면접마다 쓸데없이 아빠의 직업을 물어봤습니다. 늘 '택배 하십니다'라고 솔직하게 대답했지만, 집에 오고 나서는 후회하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택배 말고 '운송업'이라는 어휘를 선택해서 사용한 건, 본격적으로 소개팅을 하면서부터였습니다. 남편을 만났을 때도 그랬습니다. 남편은 그런 것은 개의치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로지 '나'의 조건만 보는 사람이었고, 그 덕분에 우리는 결혼을 약속할 수 있었습니다.

   상견례 날이 오고야 만 것입니다. 상견례 날은 정말 특별할 것 없는 날이었습니다. 양가 가족이 모이고 함께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졌습니다. 단, 우리 가족이 조금 늦게 도착해 아빠의 택배 차를 시댁 사람들이 모두 보게 된 것을 제외하면 말입니다. 동생은 극도의 취업 스트레스로 감기 몸살이 심했습니다. 동생이 못 오는 바람에, 아빠의 낡은 택배 차에서 엄마와 아빠 단 둘이 내렸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정말이지 아빠가 택배 일을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부끄러웠습니다. 싫었습니다. 차라리 아빠가 아파서 못 왔으면, 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식사를 다 하고 차를 마시러 장소를 이동하는 때에도, 나는 남편의 차를 타고 먼저 도착했었습니다. 트럭이 들어서자, 시어머니는 '사돈어른 오시네' 하셨습니다. 택배 차 타고 오는 사돈, 우리 엄마 아빠였습니다.






   결혼을 하고 나니, 어쨌든 그마저도 추억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그저, 오늘처럼 눈이 많이 오는 날이나 장마철 비가 많이 오는 날, 미세먼지가 유독 심한 날, 요즘 같은 경우는 확진자가 폭발하는 날 마음 한편에 걱정이 배달되는 것입니다. 낡은 차라 운전 조심해야 할 텐데, 눈길 빗길 위험할 텐데, 창문은 좀 닫고 운전해야 할 텐데, 마스크 아끼지 말고 매일 바꿔 껴야 할 텐데. 아기 키운다는 핑계로 매번 전화드리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그저 마음에서 일어나는 걱정을 붙들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다 저런 문자를 받게 되면, 걱정이 그 실체를 여실히 드러내는 것입니다. 오늘 당장 필요하지 않으니, 굳이 안 갖다 주셔도 돼요. 그냥 쉬셔도 돼요. 내일 주셔도 되니, 이런 길에는 운전 마시고 집에 가세요. 그러나 그분도 혹은 나의 아비도 먹고살아야 하니, 나에게 주어진 일이니, 어쨌든 애타게 기다리는 이들이 있으니 배달을 해낼 겁니다. '위탁 장소에 배송하였습니다' 같은 문자를 기어코 보내고야 말 것입니다. 그러고 저같은 이들은 그 문자에, 다행히 조심히 오셨구나 안도할 것입니다. 그리고 내일 아침 아빠한테 전화를 할 것입니다. 오늘도 일해? 꼭 나가야 돼? 체인은? 조심조심 운전해, 천천히 다녀, 막내손녀가 지켜보고 있다~ 같은 말들을 건넬 것입니다. 그러고는 혼자 조금은 위안을 할 것입니다. 딸내미 도리는 했다고.

   다행히 내일은 기온이 오른다고 합니다. 오후에는 영상의 기온이 유지될 거라고 합니다. 눈이 좀 녹아 질척 질척해지면, 그래도 길은 덜 미끄러울 겁니다. 영상의 온도만큼 따뜻한 마음을 부여잡고 잠이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글을 쓰는 와중에, 택배가 '문 앞'에 배송 완료되었다고 문자가 왔습니다. 다행입니다. 얼른 마치고 조심히 집에 들어가시길 바랍니다. 이제 정말 푹 잘 수 있게 되었습니다.



 


   브런치 막 시작하던 즈음, 며칠을 하루 두 편씩 글 발행하면서 몸이 많이 지쳤습니다. 제 나름대로 브런치 글은 최소 이틀에 한 편이라고 생각하며 나름 피로를 관리하며 지냈는데, 쓸데없이 예쁘게 내리는 눈이 또다시 밤을, 맘을 두드립니다. 아빠의 이야기를 꺼내라고. 머릿속에서 밀려드는 활자들의 힘이 더 세어지길래 어쩔 수 없이 노트북을 열었습니다. 부끄러운 이야기를 펼쳐 놓았습니다. 펼쳐 놓고 나니, 왠지 모를 사랑스러움도 묻어 나오는 것만 같습니다.

   아비의 고된 하루를 생각하다 끄적여 본 시도 늘어놓아 보려 합니다. 부끄럽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저는 택배 배달부의 딸이라 배달하는 삶과 받아들이는 삶에 대해 끄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그 양분을 먹고 자랐으니까요.  


택배를 배달하는 삶이나 택배를 받는 삶이나, 어느 인생도 도대체가 쉬운 삶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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