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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 Aug 02. 2020

악연인 나라가 있는 걸까

 여기저기 여행을 많이 다녔어도 다행히 큰 사고는 없었는데, 그중 가장 큰 사고를 꼽자면 캐리어를 통째로 잃어버린 일이 두 번 있었다는 것이다. 이 두 번의 사고가 모두 특정 나라와 연관되어있으니 바로 캐나다이다.


 첫 번째 사고의 범인은 캐나다 항공이다. 당시 뉴욕 여행을 갔는데 토론토를 경유하는 에어캐나다를 이용했다. 최종 목적지는 뉴욕이지만 경유지에서 짐을 찾아 심사를 마친 후 다시 부치는 시스템이었다. 토론토에 도착해서 시키는 대로 짐을 찾아 잘 부쳤다.

 뉴욕행 비행기에 올랐는데 악천후라 기체가 심하게 흔들렸다. 멀미하느라  위생봉투에 고개를 처박은 상태로 착륙했다. 그렇게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내려 짐을 기다리는데 토론토에서 똑같이 부친 친구 짐은 이미 나왔는데 컨베이어 벨트가 멈출 때까지 나의 짐은 나오지 않았다.

 이지젯, 라이언에어 같은 저가 항공을 그렇게 많이 탔어도 짐을 잃어버린 적이 없었는데 메이저 항공사, 그것도 캐나다라는 뭔가 신뢰 가는 국가 브랜드의 국적기에서 분실당하다니 충격이었다. 우선 공항 직원에게 신고를 는데 짐 찾기까지 마나 소요될지는 확답할 수 없다고 했다. 멀미의 신체적 충격과 짐 분실의 정신적 충격이 가시지 않은 채 여전히 거센 비바람을 뚫고 라과디아 공항에서 맨해튼의 숙소에 어찌어찌 도착했다.

 

 숙소 주인은 사정을 듣더니

"그래도 캐리어 안에 뭐 중요한 물품 넣은 건 없죠?"

"돈이랑 신용카드가 들었는데요."

 나의 대답을 듣고 다들 경악했다. 현금을 거기 왜 넣어두냐고.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여행경비의 반은 항상 캐리어에 두고 나머지 반만 지갑에 들고 다녔었다. 지갑은 항상 들고 다니니 분실하기 쉽고 캐리어는 보통 두고 다니니 더 안전하다고 생각해서 나름 분산을 해둔 건데 나의 짧은 생각이었다. 적어도 항공사가 내 짐을 잃어버릴 줄은 몰랐고, 공항은 무범죄 구역인 줄 알았건만 캐리어를 열어서 귀중품을 훔쳐갈 리스크가 있단 것도 처음 알았다.


 어쨌든 정신을 가다듬고 에어캐나다 한국지사에 전화를 해봤는데 수십 통을 걸어도 단 한번 받질 않았다. 짐이 언제 올 지 모르니 멀리 나갈 수도 없고, 나가서도 마음이 불편하니 뉴욕의 가을이 전혀 와 닿지 않았다.

 천만다행으로 이틀 만에 짐이 도착했다. 캐리어의 태그에 보스턴이라고 적힌 걸 보니 토론토에서 뉴욕이 아닌 보스턴으로 갔었나 보다. 나도 아직 못 간 보스턴을 혼자 여행하고 온 가방 상태는 다행히 멀쩡했고 내용물도 그대로였다. 시작이 안 좋아서 그랬는지 난생처음 방문해본 뉴욕은 기대에 비해 그저 그랬다. 어찌 됐든 귀중품은 몸에 잘 지니고 다녀야 한다는 걸 배울 수 있는 경험이었다고 치자.




 두 번째 사고의 범인은 캐나다 버스이다. 시애틀에서 밴쿠버로 이동하는 퀵 셔틀이라는 버스를 이용했다.  미국 캐나다 국경에 도착하면 버스에 실은 짐을 들고 내려서 캐나다 입국심사를 받아야 한다. 가 가장 마지막으로 심사를 마치다 보니 다시 버스를 탈 때는 내 캐리어가 트렁크 가장 바깥쪽에 다.

 국경을 출발한 지 불과 10분 만에 첫 번째 정류장에 도착했다. 시내가 아니라 그냥 도로 한가운데의 주유소다. 하차하는 승객들의 짐을 기사가 내려주는데 창 밖을 무심코 보니 내려진 캐리어 하나가 왠지 내 것 같았다. 하지만 밤이라 어두워 긴가민가했다. 만약 내 것이 맞다면 내 짐이 트렁크 가장 바깥에 있었으니까 다른 짐을 꺼내기 위해 잠시 내린 거겠지 싶었는데 버스가 그냥 출발하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꺼림칙해서 얼른 운전석으로 달려가 내 짐이 내려진 거 같은데 확인하고 싶다고 했다.

"어디까지 가시죠?"

"다운타운의 OO호텔이요."

"다운타운 가는 거면 안 내렸어요."

 그래, 기사가 처음 운행하는 것도 아닐 테고 알아서 잘했겠지.


 한 시간 남짓 더 달려 드디어 내가 릴 곳에 도착했다. 기사에게 짐을 꺼내 달라고 했더니 남은 짐이 없다는 것이다. 아, 역시 아까 그 짐이 내 것이 맞았구나. 하지만 더 화가 난 건 기사의 태도였다. 내가 목적지를 잘못 말해서 본인이 짐을 다른 곳에 내린 거지 본인은 잘못 없다고 우기는 것이다. 승객별 목적지 예약 리스트가 본인 손에 들려있는데 이 무슨 억지인가. 어쨌든 지금 남은 승객들이 있으니 더 이상 기사를 붙잡고 있을 수도 없어 우선 버스에서 내려 호텔로 갔다.


 그나마 첫 짐을 잃어버렸을 때 얻은 교훈으로 귀중품은 소지하고 있었다. 특히 폰 충전기까지 지니고 있었던 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이럴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친구들한테 물어보니 여행자 보험도 안 들었냐고 한 소리 들었다. 한 번도 여행자 보험을 들고 떠난 적이 없었는데 떨결에 또 교훈을 얻었다.

 호텔 침대에 누워있는데 잠도 안 오고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캐리어 안에 든 물건들 - 시애틀 스타벅스에서 산 굿즈들, 면세점에서 쇼핑한 물건들, 여행하면서 입고 다니려고 가지고 온 예쁜 옷들이 하나씩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지난번 에어캐나다 짐 분실 사건도 떠올랐다. 역시 난 캐나다와 안 맞아, 내가 여길 왜 왔을까, 다시는 안 온다!


 뜬 눈으로 밤을 새우고 아침이 되자마자 버스회사에 전화했다. 경악한 것은 담당자가 본인이 뭐를 해야 할지 전혀 모른다는 것이었다. 이런 사고가 드물진 않을 것 같은데 대매뉴얼도 없는 것인가. 어찌어찌해서 버스회사 직원이 알아본 바, 주유소 연락해보니 발견된 캐리어는 없고 CCTV가 설치되어 있는데 경찰 입회하에서만 확인이 가능하단다. 주유소에서 내린 승객들에게 연락을 시도했으나 예약 시 연락처를 안 적거나 아무 연락처나 적는지 통화가 안되기도 하고 일부 연락이 된 승객들은 캐리어에 대해 모른단다.


 망연자실한 채 경찰서 신고 관련 조언이라도 얻을까 해서 마침 호텔 근처에 위치한 영사관을 찾아갔는데 도보로 10분밖에 안 걸리는 짧은 거리 동안 나에게 길을 물어보는 사람들을 4명이나 만났다. 내가 지금 도움이 필요한 상황인데 왜 다들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지 어이가 없었다.

 영사관 개인의 분쟁에 직접 끼어들 수는 없기 때문에 우선 사정을 들으시고 어떻게 해야 할지 같이 얘기했다. 그러던  버스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짐을 찾았다는 것이다! 사연인즉, 그 주유소에서 내린 승객 중 한 명이 짐 하나가 덩그러니 남아있는 걸 보고 우선 자기가 맡았는데 그 와중에 본인 아이폰은 버스에 두고 내렸단다. 폰을 찾으러 버스회사 사무실에 방문하면서 내 캐리어도 가져다 주기로 했다. 정말 잃어버릴래면 어떻게든 잃어버리고 찾을래면 어떻게든 찾나 보다.

 생각보다  빨리 해결되어서 너무 감사했고, 그 짧은 시간 동안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던 걸 생각하면 지금도 앞이 깜깜하다.


 이래저래 다시 한번 교훈을 얻었다. 귀중품은 역시 몸에 잘 지녀야 하고, 버스 좌석은 오른쪽 짐 트렁크가 보이는 좌석으로 예약해 내 짐실리는지 살펴보고, 여행자 보험도 들자.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다시는 캐나다에 안 온다! 반전이 있다면 내 결심이 무색하게 밴쿠버는 생각보다 너무 좋았다. 분실 사고만 제외하면 밴쿠버와 빅토리아 섬, 휘슬러에서 재밌게 잘 놀다 왔다. 

 캐나다와 진짜 악연인 걸까? 다시 가면 또 이런 사고가 벌어질까? 결국은 두 다 짐을 찾았으니 해피엔딩인가? 그냥 내가 조심을 더 해야겠다. 경험치가 상승했다고 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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