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 차 직장인, 갭이어를 선택하다
2001년 학교라는 시스템을 벗어나 사회인이 되어
2005년 1월 대학로 극단에 첫 발을 디딘 후
쉼 없이 극단 또는 극장에서의 삶을 살았다.
연극일 해요.
나의 유일한 정체성은 아니지만, 오랫동안 나를 소개하는 말이었다.
길게 머문 이곳에서 그동안 두 번 정도의 퇴사 고민이 있었다.
그때마다 나를 나의 자리(라고 생각한 곳)에 두게 한 것은
웃음과 일상과 고민과 고충과 아름다움을 나누는 안팎의 동료들,
엄마의 사려 깊은 하지만 가벼운 한마디,
동생의 무심한 한마디,
낯선 이의 논리적이고 솔직한 한마디,
옆에 있어주는 이의 다른 시선의 한마디
들이었다. 모두가 사람들이었다.
어떤 한마디는 강력하고,
어떤 한마디는 오래갔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하는 일과 새롭게 하고 싶어지는 나의 마음 때문이었다.
재미있어요. 아직 재미있어요.
내가 유일하게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한마디였다.
아침, 주말 또는 휴가 후 출근길, 새로운 작품과 사람들의 설렘이 있었고,
단 한순간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
그런데
가장 좋아하는 순간인 첫 공연 커튼콜의 감동이 여전하지만
감동의 크기가 달라지고,
많은 이야기와 사람들이 여전히 힘을 내게 하지만
에너지의 크기가 달라졌다.
누군가 그랬다. 본인의 친절함과 인내심이 줄어든다고.
그렇다.
친절함 보다는 다정함, 그리고 인내심의 크기가 줄어들었다.
자연스러웠던 것이 더 이상 자연스럽지 않고, 때로는 상당히 노력해야 하며,
그럼에도 충분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렇게 하기로 했다.
콤마가 될지, 마침표가 될지 알 수 없지만, 누군들 알겠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대와 희망을 순간순간 갖게 되는 나 자신이 이해되지 않는다.
정말 신났었고, 정말 힘들었다.
시작점과 끝점이 모두 다르지만
스쳐가며, 머물며 동료 또는 친구가 되어준 이들이 많았다. 감사를.
그들이 다른 이유로, 다른 의미로 지금의 나를 만들었으리라.
그저, 이쯤에서 그만 포기가 아님을 믿고 싶다.
수고했다.
나 스스로에게 찬란한 시간이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그리고 말로만 듣던 직장인의 갭이어를 선택했다.
그저 2024년 1월 1일부로 그냥 나로 자리를 옮겼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