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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디너리페이퍼 Jun 19. 2024

구조맹도 시스템 안에 있습니다

2020년 6월 #2

지난주 금요일에는 담당하고 있는 사업에서 외부 강사님을 모셔 강의를 들었습니다. 사회학자이자 대학 교수로 계신 분인데, ‘대한민국 들여다보기’라는 제목으로 강의를 청했습니다. 그분의 책도 흥미로웠는데, 이번 강의도 좋았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내용은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구조맹’이라는 개념과

현재 대한민국의 잠재력은 ‘20-30대 여성’에게 있다는 교수님의 진단 또는 기대였습니다.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구조맹’은 개념 자체보다는 다시 한번 저 자신을 개념적으로 진단해 보게 되었다는 점에 있어서 흥미로웠는데, 개인의 지력이 약해 어쩔 수 없는 구조맹일 수도 있고, 알고는 있으나 행동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구조맹을 선택할 수도 있다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둘 중 무엇이 더 문제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구조맹이라며 개인의 문제로 귀인할 수 있을까요.

대중에게 구조적인 문제, 시스템에 대한 논의를 제공해야 할 언론이 언론의 기능을 못하고,

큰 그림을 그리며 더 나은 곳으로 나아가야 할 정치가 바른 정치의 기능을 못하고,

비판을 통해 발전적인 합으로 나아가야 할 전문가들이 비난에만 맛을 들이고,

이런 ‘구조’들이 모여 선택적 구조맹과 눈이 가려진 구조맹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위 혜안을 가지지 못한, 정치적 사회적 판단을 하지 못하는 저 자신의 부끄러움은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유야 어찌 되든, 구조맹도 시스템 안에 삽니다. 때문에 이번주 결국 코로나19의 수도권 확진자 증가로 일상에 제한이 따르고, 저희는 공연이 다시 취소, 연기… 되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전과는 달리 임원진들의 최종 결정과 그에 따른 후속조치가 빨라졌습니다. 그리고 외부와의 논의도, 알림도 분명 명쾌해진 것 같아 보입니다. 현재 상황에서의 불필요한 감정적 소모가 줄어든 것 같아 보이기도 하구요. 표면적으로는.

하지만 이제 괜찮을 거라는 기대 후에 다시 결정할 수 밖에 없었던 취소라서,

한 치 앞을 알 수 없다는 이유로 만약의 상황에 대비한 논의를 지속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벌어지고 보니 오히려 헛헛한 마음이 더 심한 것 같습니다.

연초에는 헉! 하는 당황스러움이 더 컸다면, 이번에는 망연자실?  

애써 씩씩하게, 함께 이겨낼 수 있다 했던 것들이 왠지 신이(있다면) 인간에게 늘어놓는 거짓부렁처럼 느껴집니다.


이런 와중에 저는 오늘 신촌극장에서 공연을 보고 왔습니다.

꿈 꾸지만 결코 이룰 수 없는, 안될 것 같은 느낌을 애써 피하려 하지만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는 그런 친구들의 이야기였습니다. 특별하지 않지만, 과정 속 사람들의 모습이 참 친근하더라구요.

그런 순간들이 있잖아요.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뻔히 보이는 것을 애써 외면하고,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 결국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그런 때, 그런 상황.

객석 간 거리유지 때문에 그렇잖아도 작은 극장에 관객이 저 포함 딱 16명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작은 규모의 공연장은 그렇게 공연을 다시 올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공연을 올릴 수가 없죠. 집합 규모에 따른 제재 차이 때문에.

정말 어쩔 수 없는 건가요?

이제는 정말 내년 예산이 심각한 상황이지 않은가,

인건비와 기본 사업비 만으로 어디까지 다행스러워 할 수 있나 싶습니다.

복닥복닥한 머리에 오늘은 이만 줄여야겠습니다.


많이 웃고 다음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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