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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디너리페이퍼 Jun 16. 2024

우리에게 흐르는 서로 다른 시간

2020년 6월 #1

새 달이 되었습니다. 

1이라는 숫자는 대부분 아침 출근길 버스의 카드단말기에 찍히는 숫자 1250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아.. 새달새날이구나. 다시 시작하는구나.


지난 토요일 엄마집에 갔는데,

전 대부분 토요일 점심식사를 엄마집에서 합니다. 불가피한 일정이 있지 않는 한. 일반적으로 독립하고 일정 시간이 지나다 보면 자연스레 본가에 주기적으로 가지는 않게 된다던데, 저는 아직 이 일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사실 제 취향 맞춤으로 준비된 음식으로 포식과 폭식을 하는 날이에요. 엄마 제보에 따르면 그날이면 아빠도 좀 더 열심히 맛있게 식사를 하신답니다.


엄마집에 갔는데, 아빠가 월요일에 어깨수술을 하신다는 거예요.

으응…?!?! 수술?!?

간단한 거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얘기 안 하려다 하는 거라고… 

그래도 수술이잖아요. 월요일 휴가를 내고 오전에 병원으로 갔습니다.

간단한 수술이라고 얘기한 이유는 전신마취를 하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한쪽 팔을 마취하고, 전신마취 대신 수면마취를 하고, 

긴 준비시간이 포함된 시간이라지만 병실을 떠나 다시 병실로 돌아오기까지 3시간이 걸리고,

내시경 수술을 위해 어깨에 구멍을 뚫어 피주머니까지 차고 침대에 누워 있는 비쩍 마른 아빠를 보니,

그리고 수술하는 동안 혼자 기다렸을 엄마를 보니 그나마 제가 휴가를 낼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도움 되는 것도 하나 없고 좀 일찍 갔어야 하지만 말입니다.


마흔이 훌쩍 넘은 딸내미 걱정할까 봐 대수롭지 않게 얘기하는, 그런 부모라는 사람들입니다. 

이 나이가 되니 늬들 아프다는 거 말고 무서울 게 없다, 라고 하십니다.  

저는 이 나이가 되니 엄마아빠 아프다는 게 무섭지만, 그 외에도 무서운 게 참 많습니다.

그리고 무서운 게 참 많지만, 엄마아빠 아프다는 게 가장 무섭습니다. 

다행히 하루종일 해도 공기도 좋고, 바람도 시원한 맑은 날이라, 마음이 한결 좋았습니다. 

아! 수술은 잘 끝났다고 합니다. 

며칠 만에 퇴원하셨고, 물리치료받으시면 된다고. 

조카가 병문안을 와서 다른 때보다 더 즐거우셨던 것 같기도 합니다.

너무 씩씩하셔서라기보다는 씩씩한 척하셔서 오히려 걱정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갑툭튀. 짧은 웃긴 얘기 하나 해드릴까요? 

아파트 단지를 걷는데 어떤 아주머니께서 

"이 꽃 이름이 뭐죠? 베딩, 베도... 뭐 그런 건데." 

물으셨습니다. 

화분에서 많이 본 꽃인데 이름을 모르겠더라구요.  

검색이라도 해야 하나… 뭐든 대꾸라도 해야겠기에

"이거 꽃이랑 잎 먹어도 되는 그 꽃이죠?" 

했더니, 

아주머니는 새초롬하게 하지만 확고하게 

"아니 먹을게 쑥갓도 있고 상추도 있고 얼마나 많은데 뭘 이런 걸 먹어요!?"

"아… 하하하. 그러게요." 

뒤로 웃음을 흘리며 지나왔습니다.

몇 발짝 떨어졌는데 그분이 다시,

"이 노란 꽃은 달맞이꽃이구."

라시더라구요. 꽃이 궁금했던 걸까요, 아님 말씀을 하고 싶으셨던 걸까요.

아주머니의 말과 어조가 생각날 때마다 웃긴데, 지금 이 글을 적으면서도 혼자 피식거리고 있습니다.

검색해 봤더니 아주머니가 물으셨던 식물은 ‘꽃베고니아’였습니다.

흔히 볼 수 있는 귀여운 꽃입니다. 

‘1년 내내 꽃을 피워내는 귀한 식물’이라고 나와요. 그래서 아파트에 꽃베고니아 화분이 꽤 많나 봐요. 향기는 없지만 화사하고, 쨍하니까. 

꽃말이 친절, 정중이래요. 짝사랑이라고 하기도 하고. ㅋㅋㅋ 

‘실내, 실외 화단에 꼭 필요하다’고 네이버도 다음도 검색결과에서 보여주는데 왜 꼭 필요한지는 안 나와 있네요. 궁금합니다. 하지만 궁금증은 이 수준까지. 검색을 멈췄습니다. 참고로, 베고니아 꽃은 먹을 수 있는 게 맞습니다! 


오늘 저녁에는 오랜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코로나19가 시작된 이후 가족과 동료들 외의 사람들을 만난 게 처음인 것 같아요.

2002년 신나지 않은 직장생활을 환기해 줄 만한 취미로 사진 배우러 다니면서 만난 언니오빠들입니다.

그 사이 한 분은 돌아가시고, 한 분은 연락이 끊기고, 두 명은 부부가 되어 네팔로 떠나고, 한 명은 육아 때문에 자주 못 보지만, 

그 사이 셔터를 누르면 철컥하고 사진 찍히는 소리가 묵직하니 멋들어진 클래식한 수동카메라는 기능 많고 화질 좋은 DSLR에서, 휴대하기 좋은 콤팩트한 DSLR을 지나 그것도 귀찮아 휴대폰으로까지 변화했지만, 

그 사이 저의 유일한 취미는 취미랄 것도 없는 오랜 기억으로만 존재하지만,

사람들과의 연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6,7년 차가 되었을 즈음이었나... 한 언니가 10년 넘으면 평생친구가 된다고, 10년 잘 넘기면 좋겠다고 했었는데 그 시간을 훌쩍 지나 벌써 18년이 되었습니다. 

영 다르게 살고 있는 사람들인데 그 다름이 편하고,

재밌지 않아도 웃기고, 그러다가 입 가리고 슬쩍 하품해도 괜찮은, 그런 친구들이랍니다.

어쩌면 사진을 배우고 찍으러 다니는 것이 취미가 아니라, 이 사람들이 저의 취미였던지도 모르겠습니다. 

덕분에 오랜만에 퇴근 후 많이 웃는 주말 저녁을 보냈습니다. 

상대에게 보여주는 웃음만큼 감사한 행위가 있을까요.


많이 웃고 다음에 만나요.


덧. 한 사람이 보기에 아까운 글은 전혀 아닌데,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더욱 아닌데. 그냥 어딘가 정리해보고 싶었습니다. 저의 생활과 마음을. 요즘 가장 열심히 신중하게 적어가는 것이 바로 이 편지예요.ㅋ 그래서 덜컥 여쭤봤답니다. 동의해 줘서, 응원해 줘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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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락과 응원을 받아 설레는 마음으로 브런치 문을 두드렸으나, 브런치팀으로부터 담담하고 짧은 메시지를 받았다. 거절의 내용을 담은. 아니 뭐 이런 걸 내치고 그래! 아니고자 해도 나름 약간의 상처를 받고 말았다.(2024.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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