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 #3
지난 일요일, 밀가루 대신 쌀가루로 마들렌을 구웠습니다.
음식은 손맛이라고 하지 않았던가요? 계량 없이 감으로 툭툭 집어넣는 재료와 거침없는 손길에서 묻어 나오는 고수의 냄새.
하지만 베이킹의 세계에서는 1그램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요구하는 재료의 양이 3그램, 5그램이기 일쑤입니다. 입문자라고 할 수도 없는, 한 번 해보는 수준의 저 같은 사람은 계량으로 찾아내야 하는 숫자를 보면 3.1그램과 3.9그램의 차이가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다행히 준비한 저울이 1그램 단위여서, 어쩔 수 없고도 다행스러운 관용을 스스로에게 베풀어야 합니다.
버터를 녹이고, 계란을 풀고, 쌀가루와 설탕, 베이킹파우더, 계란, 버터를 차례대로 섞으면 1차 반죽.
단계마다, 재료마다 섞는 방법이 달라 수시로 레시피를 확인해야 합니다. 섬세하게 계량한 재료들이 중간에 가루 하나라도 날아갈세라 세심한 주의를 기울입니다.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 확인할 길은 없습니다.
1차 반죽을 냉장고에 2시간 동안 넣어두었다가 꺼내 다시 10분 정도 실온에 둡니다.
그러고 나면 적당한 농도의 반죽이 됩니다.
조개 모양 틀 하나하나에 남겨둔 녹인 버터를 얇게 바르고 반죽을 조심스레 따릅니다. 넘쳐도 안되고, 너무 적어도 안됩니다.
그 사이 오븐을 10분간 예열하고, 11분을 구워요. 170도에서 9분, 곧바로 200도에서 다시 2분. 그러면 노릇하고 배가 볼록 솟아오른 4개의 마들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오븐형 토스트기가 작아서 한 개짜리 마들렌 틀을 한 번에 4개씩 넣을 수 있어요.
그러면 다시 반죽을 따르는 일부터 반복하는 거예요. 대신 두 번째부터는 틀에 버터를 바르는 과정은 사라지고, 예열은 1-2분 정도로 줄어듭니다. 이미 달궈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6번을 반복하니, 반죽은 모두 마들렌이 되어 식힘망 위에 가지런히 앉아있습니다.
지난 일요일은 그렇게 오후부터 밤까지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영화 ‘감기'와 함께.
반복적인 노동 행위는 시간을 보내기도, 쓸데없는 생각을 물리치기에도 매우 효과적인 거 아시지요?
어떤 이유로든 우울감이 찾아온다면, 무언가를 만들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이미 운동으로 그 효과를 보고 계시지만 말입니다.
저는 정신을 분산시키고 시간을 하염없이-일에서 벗어나 몸의 움직임에만 집중하고 싶은 차원에서 제가 바라는 상태- 보내는 방법으로 그동안 청소나 빨래, 버릴 물건 찾아 버리기 등을 했었는데, 무언가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도 참 괜찮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
아! 예전에 취미 삼아 비즈 귀고리 만들기랑 가죽공예도 배워서 했었습니다. 싫증이 나서 지금은 하지 않구요. 물론 베이킹도 머잖아 싫증이 나겠지만, 지금은 큰 흥미와 재미를 느낍니다. 어설프되 공들여 만든 결과물을 시식하는 것이 신나더라구요. 만든 걸 사무실에 가져가 동료들과 나눠 먹는 것으로 하나의 과정이 완성됩니다.
장기전에 돌입하는 것으로 보이는 코로나19로 인해 업무를 제외하고는 개인사에 있어서 큰 어려움이 없다고는 하지만, 아주 어쩌면 저도 모르는 사이에 느끼는 스트레스를 이런 방식으로 털어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집에서 하는 일이 다양해지면서,
그리고 그런 일들에 흥미를 느끼면서 생각합니다.
사람에게는 각자 특정 역할이나 영역에서 소화해야만 하는 역할의 할당량이나 할당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말입니다.
그런 거 있잖아요. ‘회사 내 미친x 질량보존의 법칙’이나 ‘사랑 총량의 법칙’ 같은 것처럼.
모든 사람에게는 살아생전에 맺는 관계망 속에서 사회인으로서, 자연인으로서, 가족으로서, 친구로서 소화해야만 하는 정해진 시간의 양이 있는 거죠.
예를 들어, 저는 직장생활을 하면서부터는 집을 하숙집처럼 살아왔습니다.
아침에 눈뜨면 출근하고, 늦은 밤 퇴근하면 씻고 잠을 잡니다. 그러면 다시 아침이 되어 눈을 뜹니다.
상당히 많은 주말에 출근을 하고, 그렇지 않은 날에는 텔레비전을 보며 앉아만 있습니다.
그러다 나이 마흔에 독립이라는 걸 하고, 집안을 돌보는데… 그래봐야 고작 제가 간수할 일이라고는 정기적인 청소와 빨래뿐.
그렇게 1년을 살아낸 뒤, 다음 2년은 별반 다르지 않았어요. 추가된 거는 숨만 쉬어도 생기는 것 같은 먼지가 눈에 보여 청소에 집착하게 되었다는 것과 공과금 납부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 정도.
하지만 그 다음의 1년인 지금, 집에서 드디어 불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메밀면을 삶아 먹고, 쌀이 한 번도 들어가지 않았던 전기밥솥에 고구마를 굽거나 떡을 찌고, 어쩌다 생긴 토스터기로 빵을 데우는 것을 넘어 굽습니다.
초코렛과 견과류, 치즈와 약간의 과일 그리고 마사지팩만 들어있던 냉장고에는 좀 더 충분한 과일과 발사믹 소스에, 며칠 전 간장이 생겼구요, 가끔 두부와 메밀묵을 넣어둡니다. 오늘은 어묵도 사왔습니다.
냉동실은 아예 사용을 안 했었는데, 지금은 구운 고구마와 소분한 빵과 함께 감태가 들어 있답니다.
정시퇴근을 하고 맞이하는 이른 저녁시간이 좋고, 퇴근 후 그리고 주말에는 자연스레 일 생각을 하지 않(으려 하)고, 마트에 가는 게 재밌고 집에 있는 시간을 즐기게 됐습니다.
왠지 저 자신을 잘 보살피고 있는 느낌입니다. 그리고 지난 세월 동안 가구의 일원으로서 하지 않았던 것을 지금 몰아서 다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재미있는데, 왜 예전에는 이런 삶을 몰랐을까요.
솔직히 다른 사람들에게 시간을 맞추고, 마음 동동거리며 살아야 하는 시간으로 돌아가 다시 지낼 수 있을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두렵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시 그래야 하는 상황이 오면 이내 적응하겠지요. 그래도 그 안에서 작은 변화를 바탕으로 또 다른 삶의 방식을 찾아낼 수 있겠지요. 그렇게 믿어보려고 합니다.
좀 웃기지요? 남들 다 하고 사는 별것 아닌 일을 엄청난 발견인 것 마냥 호들갑스럽게.
하지만, 전 그렇게 살아왔고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 걸요.
오늘도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길게 썼습니다.
참! 전 어렸을 때 별명이 ‘고장난 수도꼭지’였습니다.
완전히 잠기지 않는 수도꼭지처럼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찔끔, 주르륵 한다구요.
전 지금도 눈물이 많습니다.
슬퍼서 울고, 좋아서 울고, 감동해서 울고, 불쌍해서 울고, 화나서 울고, 행복해서 울어요.
음, 부끄럽지만 어떨 땐 거울 보면서 울 때도 있습니다. 아주아주 가끔이예요!(하하하, 오해 금물) 약간 또라이 같지만, 그럼 위안이 된답니다.
눈물을 가리거나 숨기지 마세요. 어쩌면 이미 눈물의 순기능에 대해 느끼셨겠지만 말입니다.
많이 웃고, 다음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