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1
지난 월요일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고 있다가 답메일이 오자마자 확인했습니다.
애정하는 비 오는 아침, 어찌나 반갑던지요.
욕을 한다는 내용을 보고 <파우스트 엔딩>이 생각났습니다.
극 중 메피스토가 시인에게 욕을 하라고, 감정을 표현하라고 하잖아요.
그런 해소가 예술이라는 메피스토의 말은 우습지만, 해소의 방법이라는 데 조금은 동의하는 바입니다.
저 같은 경우 욕을 들으면 대부분 스트레스를 받고 짜증이 나는데, 가끔 쓸데 있는 욕도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정말 욕을 못하는 사람 중에 하나거든요. 아직은 현재형입니다.ㅎ
어렸을 때 엄마들이 딸들한테 한다는 계집애 소리 한 번 안 듣고 살았습니다. 지금까지도요. 그래서 고등학교 때였던가… 친구가 다른 친구에게 하는 계집애(보통 기지배라고 하지요) 소리를 듣고 기겁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떻게 친구에게 저런 말을 할 수가 있단 말인가! 그런 거 있잖아요.
그런데 가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때, 순간적으로 엄청 열받았을 때 책을 읽듯이, 말을 배우듯이 욕을 해봤어요. 그랬더니 그 순간 정말 무겁게 들어차 꽉 막힌 감정이 해소되는 느낌이 들더라구요. 웃기지만, 그보다 민망함이 조금 더 크지만 그렇게 가끔의 학습을 통해 욕이라는 언어의 효용에 대해, 어디까지나 순간적인 효용에 대해 느낀 후 가끔 ‘지랄이야!’라든가, 나지막이 ‘FUCK.’이라는 말을 일부러 하곤 합니다. 그러고 보니 해소가 아니라 화가 머쓱한 민망함이라는 감정으로 치환되기 때문일까요?
어쨌든, 보통 지랄이야!는 내지르는 말이고, FUCK.은 혼자 읊조리는 말입니다.
느낌표와 마침표의 차이가 느껴지시나요?
길게 남은 숨 한 톨까지 내쉬는 한숨과는 또 다른 배출 방식으로 갑갑함을 짧게 해소하고 나면,
이후에 해야 할 일들로 관심의 방향을 돌릴 수 있게 되곤 합니다.
물론 제가 욕하는 걸 보면 사람들이 놀라거나, 안 어울린다고 비웃지만 말입니다. 그렇다고 익숙해지고 싶은 마음은 없답니다.
괜찮습니다.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나를 보호하기 위한 욕은 가끔 해줘도 됩니다. 오히려 그 효용을 잘 찾아보십시오.
저에게 다이어트만큼 제 의지박약을 깨닫게 하는 일도 없습니다.
안 믿으실 수도 있지만, 여느 동물들이 자신의 외양을 가꾸고 아름답길 바라는 것과 같이 저도 다이어트를 계획했던 적이 있습니다. 몇 번. 물론 날씬한 것이 아름답다는 공식이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그저 저의 공식이 그랬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다이어트를 결심하는 순간만큼 먹고 싶은 게 많아지는 적이 없습니다.
좋아하지도 않던 것들이 마구마구 생각나서, 모조리 먹어버리고 싶어지거든요. 잘 먹고 싶지는 않지만 먹고 싶은 건 잘 못 참겠더라구요.
맞습니다. 저는 건강하게 운동으로 다이어트를 한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없는 겁니다. 제가 정말 운동을 안 좋아하는 사람이거든요. 필라테스, 요가와 헬스도 해 본 적은 있지만 운동을 위한 운동이라기보다는 치료 차원에서 선택할 수밖에 없는 수단일 뿐이었습니다.
어쨌든 더 먹고 싶고, 실제로 더 먹기 때문에 다이어트를 해야겠다 맘먹지 않는 것이 저에겐 더 나은 다이어트 방법입니다. 요즘은 직업적으로 운동을 하는 사람이 아니어도 바디프로필 기록을 목표로 운동과 식이를 통한 다이어트, 건강하게 몸만들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더라구요.
대단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 멋진 것 같아요.
운동을 좋아한다고 하시니 한 번쯤 도전해 보는 것도 좋은 것 같습니다.
아! 그래도 요즘은 운동을 힘들어하면서도 꽤 즐기고 있습니다.
일주일에 두 번씩 하는 필라테스도 미간주름이 깊어지도록 괴로워하면서 하지만 끝난 후 출근길에 뿌듯함을 느끼고, 매주는 못하지만 주말에 하루 정도 여력만 된다면 바깥으로 나가 걷기와 달리기를 하며 숨을 몰아쉬고, 보통을 복닥 한 마음을 쉬게 하기 위함이지만 기회가 되면 버스 대신 걸어서 퇴근하면서 운동을 했다고 기특해합니다.
그렇게 몸을 움직여 마음을 단련합니다.
40세를 훌쩍? 넘고 보니,
왜 30세 넘기 전에 운동을 해야 한다고 하는지,
왜 40세 넘기 전에 운동을 해야 한다고 하는지,
왜 더 망가지기 전에 지금 당장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고 하는지 알 것 같습니다.
10년… 졸업 후 10년 동안의 사회생활과 불안이라…
저는 20대 후반에야 전혀 관련이 없던 공연 일을 시작했고,
공연일을 시작한 후 신나게 일을 하던 11년 차에 이곳 소속이 되었습니다.
다른 생각 안 하고 일을 했었고, 불안함보다는 불만족이 있었고,
불만족이 있을 때 때맞춰 환경에 변화가 주어졌던 것 같습니다.
일이 재미있는 것이 당연스러웠고, 재미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에 감사했습니다.
운이 좋은 케이스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에서 위기를 느낄 때 그 폭풍이 더 크게 느껴졌던 것도 사실입니다.
지금의 불안은…, 왜일까요. 불안과 고민이 나쁘다고만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로 인해 발전을 도모할 수 있으니까요. 물론 무조건 발전을 위해 매진할 수도 없지요.
발전이 지상최대의 목표는 아닐 테니까요. 하지만 뭐랄까…
환경이 주는 불안과 함께, 그 환경으로 인해 나에게 주어지는 좋은 점이 있는지 없는지, 있다면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모든 경우에 적용되는 말은 아니지만, 저는 그 말로 인해 도움을 받았습니다. 제 생각을 부정적인 하나의 방향이 아니라 다른 갈래길로 나눌 수 있었고, 그만큼 불안과 불만이 줄어들었습니다.
당신의 문제와 함께 환경을 둘러보십시오. 그 안에서 불안의 원인을 찾아낼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 원인을 알게 되었을 때, 원인을 받아들이고 안 받아들이고는 나중의 문제지요.
원인을 나서서 해결할 수도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결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내 힘이 닿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고, 용기가 미치지 못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시간이 흐릅니다.
시간이 흐르며 원인이 해소될 수도 있고, 내가 바뀔 수도 있습니다.
내가 바뀌면 상황이 수용될 수도 있고, 다시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기도 합니다.
사람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모든 것에 대한 해석이 제 자신 중심이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렇게 저와 환경이 함께 변하더군요.
나 스스로를 믿는 마음과 나 스스로를 알아가는 노력을 계속해나가기만 한다면요.
그렇게 믿습니다.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아끼고, 보살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런 불안을 느끼고 있는 것이 당신뿐만이 아니라는 걸 아시길 바랍니다.
그것만으로도 많은 위안이 되더군요.
이런 글을 적고 있는 저이지만, 지난 두 달 동안 가열차게 지냈는데
저의 밤과 주말이 나아지기는 하는 것인지, 도무지 낌새가 보이지 않아 황망한 중입니다. 하하.
지난주에 사무실 친구들과 왜 욕구불만인가에 대한 얘기를 나눴습니다.
분석을 해봤더니 술집에 갈 수가 없어서라고 하더군요.
집에서 술을 마시는 것과 다르고, 사무실이나 집에서 수다를 떠는 것과는 다르다고.
술집에 가서 시끌벅적한 분위기에 취해 같이 시끌벅적하며, 반은 알아듣고 반은 못 알아듣는 말들을 내뱉는 시간이 없어서라고. 음주 여부와 관련 없이 그런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많이 웃고, 다음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