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후 12시간 후에 퇴근하는 안경사 생활
모든 국민이 힘들던 IMF 시절을 관통하던 그때 다니던 대학을 그만뒀다. 생물학을 전공해서는 이 힘든 시기에 취업을 할 자신이 없었다. 입대를 할까도 생각했지만 지금 아니면 공부하기가 어려울 것 같아서 다시 수능시험을 쳐서 안경광학과에 진학을 했다.
취업이 안 되면 창업을 하자.
창업을 할 특별한 직업이 무엇일까 고민을 하다가 다니던 안경원 선생님이 멋있어 보이기도 했고 솔직히 돈도 잘 버는 것 같았다.
“ 선생님! 안경원 하면 돈 많이 벌어요?”
“ 열심히 하면 많이 벌지! 왜? 나중에 안경원 하려고?”
그 안경사 선생님께서 안경원은 안경사만 창업을 할 수 있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리고 그 안경사는 안경광학과를 졸업하고 안경사 국가고시를 보고 합격을 해야 될 수 있다. 그렇게 나는 안경광학과를 진학해 졸업을 했다.
안경원에서 일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침 9시에 출근해서 밤 9시까지 근무하는 것은 생각보다 힘이 들었다. 남들 쉬는 주말에 쉬지도 못하고 평일에 하루만 쉬면서 그렇게 일을 했다. 첫 직장은 일하는 안경사만 해도 15명 정도 되는 그 지역에선 제법 유명한 안경원이었다. 하루 손님수가 많으면 100명도 넘어서 일하다 말고 어지러움에 뒤편 창고에서 누워있다 나오는 사람들도 많았다.
안경을 하러 온 손님들은 좋은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았다. 30분 넘게 시력검사를 하고, 1시간 동안 안경테를 고르고, 그냥 가는 사람들도 있다.
안경을 맞추고 1달 후에 와서 안경테가 마음에 안 든다며 바꿔달라 하는 사람도 있다.
밤 9시에 끝나면 직원끼리 시력검사 스터디 모임을 가지며 공부했다. 또 일요일엔 아침 7시에 출근해서 아침 회의를 했다.
어느 정도 힘들었냐 하면 한 달에 한번 큰 숙소를 빌려서 직원 모두 한방에 누워 링거를 맞았다.
이렇다 보니 쉬는 날에는 정말 누워서 쉬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일하고 받은 월급 100만 원.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들고 많은 사람들이 협업을 해야 하는 일이다 보니 부딪치는 일도 많아졌다. 서로 작은 실수도 지적하고 감정적으로 대할 때도 있고, 많은 인원이 일을 하다 보니 파벌도 생겨 신경 쓸 일이 많아졌다. 하루에도 열두 번도 그만둘까 고민을 하고, 과연 이 일이 나에게 맞는지 생각했다. 3년간 그 어려운 신입 안경사 생활을 끝내고 경력 안경사 자격으로 다른 곳에 취업을 했다.
그곳에서도 힘든 점은 있었지만, 3년간 했던 고생이 빛을 보는 순간들이 더 많았다.
비슷한 경력의 안경사보다 할 수 있는 것도 많았고, 실수도 없었다.
많은 안경사와의 협업을 했던 경험으로 직원들 간의 소통도 원활했다.
사회생활 초기에는 모든 것이 어렵다.
몸도 힘들고, 마음도 힘들다. 내가 이 월급 받고 왜 여기서 이러고 있나?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 시절을 견뎌내면 번데기를 허물을 벗고 나비가 되듯 발전한 나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요즘은 워라벨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대라 물론 그 시절과 비교는 할 수 없지만 조금 힘들다고 그만두는 친구들을 보면 ‘조금만 버티면 되는데.’라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100만 원 받던 안경사는 꽤 높은 연봉을 받는 안경사가 되었다. 그리고 매장을 2개씩 운영하는 안경원 원장이 되기도 했다.
그 3년을 버티지 못했다면 지금 나는 무엇을 이뤘을까?
비가 오는 지금 내 옆에 있는 후배 안경사를 보면서 청승맞은 생각을 하고 있다.
3년만 버텨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