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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jay Oct 26. 2020

기차의 추억

인도 기차 여행

기차의 추억 : 인도 기차 여행


KTX가 생기면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 외국, 땅 떵이 좀 큰 나라에 살아본 사람이라면 우리나라가 어디든 두 세 시간이면 갈 수 있는 정말 작은 나라라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빼앗긴 것도 있다. 긴 기차 여행이 주는 두근 거림 같은 거 말이다. 꽃다운 청년 시절에 혼자서 대여섯 시간을 가는 완행열차를 타면 적어도 두서너번은 내 옆자리의 동행이 바뀐다. 출가한 자식 집에라도 가는 어르신이 타기라도 하며 호구 조사가 시작된다. 어디에 가는지, 왜 가는지, 어디 사는지, 가족관계까지 다 털려야 풀려날 수 있다. 그땐 그게 참 피곤했는데, 지금은 그런 정감 있던 기차여행이 따뜻한 추억이 되어버렸다. 그러다가 내 또래쯤 되는 곱디 고운 여성이라도 내 옆자리에 앉을 땐 내가 조금 전 그 할머니보다도 용기 없음이 얼마나 한심스러웠지 모른다. 둘 중 누군가 종착지에 내릴 때까지 힐끔거리며 콩딱 거리는 심장의 경망스러움을 경험해 본 사람이 나뿐만은 아니겠지. 순식간에 도착해 버리는 총알 기차 (Bullet Train)들은 그런 아련한 기차여행을 빼앗아 버렸다.


장거리 기차 여행을 흥미롭게 하는 건 어떤 낯선 이와 이 긴 시간을 함께 가게 될 것인가가 아닐까?


인도 여행을 계획하면서 아이들의 강력한 요구사항 중 하나는 기차 여행이었다. 침대칸이 있는 야간 기차를 타고 먼 도시를 가는 낭만의 기차 여행. 좁디좁은 한국에선 상상도 못 할 침대칸 기차 여행 말이다. 뱅갈루루에서 여행 경비를 찾기 위해 휴면계좌를 살리고 인출하는 은행업무를 하는 동안 다음 목적지로 가기 위한 기차 여행을 계획했다. 미리미리 기차표도 끊고 이동 계획도 해야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인도에서의 은행업무가 언제 끝날 지 몰랐기 때문이다. 은행 직원은 이삼일 이면 끝날 것이라고 '노 프라블름(No Problem)'을 자신 만만하게 외쳤다. 물론 나는 믿지 않았다. 그들의 '노 프라블름'은 어떤 '프라블럼'이 생길지 자신들도 모른다는 뜻이라는 걸 이미 알아 버렸기 때문이다. 역시나 은행에 묵혀있던 여행 경비를 찾는데 엿새나 걸렸다. 그제야 뱅갈루루를 떠나는 기차표를 끊을 수 있었다.


30분이면 끝나는 한국의 은행 업무는 정말 환상적이다. 그런데 느려 터진 인도 은행 업무도 시간이 지나니 재밌는 에피소드가 된다.


이제 고대하던 본격적인 기차여행이다. 목적지는 600km 떨어진 하이데라바드. 저녁 출발 침대 기차를 타고 아침에 도착하는 노선이다. 하룻밤 숙박비도 아끼고 장거리 이동도 할 수 있고, 식사도 해결되는 이 보다 저렴한 인도의 교통수단이 또 있을까?  우리의 기차는 3AC. 인도 침대 기차 등급은 대략 1AC, 2AC, 3AC, SL 정도가 있다. AC는 에어컨을 말하는 것이고, SL(Sleeper class)에는 선풍기만 있다. SL은 잡상인도 많고 칸막이 커튼도 없어 도난사고가 많아 외국 여행객에겐 조금 하드코어긴 하다. 3AC은 3층 침대가 마주 보고 있어서 6명이 함께 간다. 그리고 2AC는 2층 침대이니 4명이다. 1AC는 타 본  적은 없지만 4명이 타는 2AC 공간에 2명이 타고 가는 것이라고 한다. 그만큼 가격도 비싸다.


인도 3등 칸 침대 기차의 3층 침대, 2층도 아니고 3층이라니, 어찌 즐겁지 아니하겠는가~


흥분된 마음으로 기차에 올랐다. 가족 수가 많고 짐도 많으니 손이라도 놓쳐 누구 한 명, 가방 하나라도 낙오될까 기차가 플랫폼을 떠나는 순간까지 초긴장이었다. 모든 짐과 식구가 안전히 제자리를 찾고 나서야 나도 여유가 생겼다. 한숨 돌리고 나니 슬슬 배가 고팠다. 이제 곧 기내식이 나올 텐데... 기차에서 주는 식사니 '기내식'이라고 우겨본다. 짜파띠와 달(Dal, 렌틸콩) 커리, 치킨 맛살라 그리고 감자요리(Dry Aloo Matar)가 바스마티 라이스와 함께 한 가득 나왔다. 인도 음식 킬러인 우리 식구는 이 향신료 범벅의 저녁 만찬을 깨끗이 먹어치우고 기차 여행을 만끽하기 시작했다. 3명이 앉는 좌석이 3층 침대로 변신을 한다. 침대에 누운 아이들은 마냥 신기하고 즐거운가 보다. 그렇게 아이들의 마음을 실은 기차는 어둠을 가르며 덜컹덜컹 리듬에 맞춰 내달렸다.


역시 여행은 먹방이지~ 기차라고 예외는 없다! 찐 인도식 기차식도 싹싹 먹어치워 주겠드아~


그러나 밤이 되자 문제가 발생했다. 셋째 막내에게 화장실 신호가 온 것이다. 물론 큰 거였다. 엄마와 함께 화장실 답사를 했다. 막내는 심각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내일 아침 도착할 때까지 참아 보겠단다. 내가 보기엔 그냥 할 만한 것 같은데, 막내에겐 좀 충격이었나 보다. 막내는 다음날 아침 기차에서 내려 식당에 도착할 때까지 불굴의 의지로 참아 냈다. 그리곤 해방의 기쁨이 충만하여 텅 빈 위장을 인생 최대의 페이퍼 도사로 다시 가득 채웠다.


만약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인도 여행을 결심했고, 기차여행을 계획했다면 화장실에는 큰 기대를 하지 말길 바란다. 그런데 난 뭐 괜찮던데... 아! 한 가지, 우리의 소중한 분비물이 달리는 기차 철길 위에 휘날린다는 것은 좀 거시기 하긴 하다. 그러니 제발 인도에선 플랫폼에 다다를 땐 화장실에 가지 마시라!! 


밀려오는 대장의 압박을 잠으로 극복 중인 막내, 힘내라~ 아자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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