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닥칠 고생을 모르는 것과 아는 것의 차이는 크다. 인도로 올 때 맞이한 30시간의 비행은 여행에 대한 기대와 얼떨떨함으로 불평할 틈도 없이 지나갔다. 그러나 돌아가는 것은 다르다. 식구들의 걱정과 불평이 슬금슬금 올라오기 시작했다.
"또 두 번이나 갈아타야 해?"
"이번에도 공항 의자에서 밤새야 하는 거야?"
"인도에 이렇게 오는 방법밖에 없었어?"
어느샌가 초심을 잃어버린 여행자들은 구시렁구시렁 앞으로 닥칠 고생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이미 다 설명하고 이해시켰지만 막상 닥친 고생길 앞에 불평의 화살을 쏟아낸다. 화장실 들어갈 때랑 나올 때 다르다더니, 인도 가는 것만으로도 그리 행복해하던 일이 고작 얼마 전이라고. 내겐 그 소리들이 짠돌이 구두쇠 아빠 때문에 이렇게 힘든 비행 일정으로 가게 된 거라 들렸나 보다. 아빠표 전매특허 짜증을 한바탕 쏟아내고 나서야 불평은 쏙 들어갔다. 그리 짜증을 내긴 했지만 중국의 두 도시를 경유하는 이 또 긴 여정을 어찌 버틸까 걱정이 되긴 했다.
우리가 선택한 방법은 두 가지. 각종 보드 게임과 카드 게임으로 무료함을 달래고 공항 식당들이 문을 열면 남은 중국 돈 다 쓰기였다. 만반의 준비를 했다. 바닥에 깔 자리, 게임용 각종 카드, 추위를 이겨줄 은박지 이불(부스럭 소리가 거슬리지만 무게 대비 보온성이 크다), 노트북에 안 본 영화 몇 편을 챙겼다. 그리고 세 아이들의 고향 같은 땅, 인도에게 안녕을 고하고 한국 행 비행기에 올랐다.
저 뒤에 게임을 하던 중국 청년들이 도발하기 전까진 우린 평온하게 카드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중국 칭따오 공항. 아직까진 괜찮다. 칭따오 공항에서 밤을 보내고 아침 일찍 한국행 비행기만 타면 된다. 공항 바닥 한편에 자리를 깔고 긴긴밤을 보낼 각종 카드와 보드게임을 펼쳤다. 우리 옆에도 중국 청년 한 무리가 바닥에 앉아 스마트폰 게임을 하고 있었다. 이들도 비행기를 갈아타거나 다음날 아침 첫 버스가 운행할 때까지 여기서 밤을 지새울 생각인 듯했다. 긴 밤을 함께 보낼 동지가 있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됐다. 한두 시간 열심히 게임을 하던 청년 하나가 전화 통화를 하더니 공항 밖으로 뛰어 나갔다. 그리고는 비닐봉지 한 봉다리를 들고 왔다. 그리고 그것을 펼치는데... 그것은 바로 칭따오의 명물 양꼬치와 칭따오 맥주였다. 그리곤 우리 옆에서 오리지널 칭따오 양꼬치를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아... 칭따오의 양꼬치여~~~ ㅜㅜ
카드게임은 중단됐다. 우리가 달리 가족 아니고 식구인가. 정말 비굴하고 불쌍하게 그들의 게임 먹방을 관람할 수밖에 없었다. 침을 질질 흘리며... 소심하여 뒤로 숨은 남편을 밀치며 용감한 아내가 청년들에게 물었다.
"중국 미래의 희망이자 고귀한 소황제인 청년들이여~~ 그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한 칭따오 명물이라 널리 동방의 나라에까지 소문이 파다한 양꼬치와 맥주는 어디서 산 것이오? 우리 같은 하찮은 여행객도 그런 귀한 음식을 어떻게 하면 맛볼 수 있는지 알려주신다면 나그네를 귀히 여긴 선행은 신께서 만 배로 갚아 주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 바이오~~~"
라고 간절한 마음의 소리를 꾹꾹 눌러 담아 양꼬치 구매 방법을 물었다. 간단했다. 우리만 배달의 민족이 아니었다. 현지 앱으로 이곳까지 배달을 시켰던 것이다. 우리는 인터넷도 안되고 현지 결제 앱도 없어서 불가능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자리로 돌아오는데, 이 귀한 청년들이 먹어보라며 양꼬치 하나를 내미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오(五) 비글스는 다섯 명이 아니던가. 민폐를 끼칠 수 없어 정중히 거절하고 돌아서는 아내의 표정에는 저거 하나라도 나눠먹어 볼까 라고 쓰여있었다. 결국 우리는 중국 청년들이 떠날 때까지 칭따오 양꼬치의 맛을 상상하여 말하고 말하며 밤을 지새웠다. 언젠가 꼭 칭따오에 돌아와 이 한을 풀고야 말겠다!!
이렇게 오비글스의 특별했던 인도 여행은 끝이 났다. 한 달 같았던 2주였다. 이 여행이 우리 식구에게 남긴 것은 무엇일까? 2년이 지난 지금 다시 한번 세 아이들에게 물어봐야겠다.
여행은 끝났다. 그리고 한국의 전철은 정말 깨끗하다. 다음 여행은 코로나가 끝나면 치앙마이 한달살기 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