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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jay Dec 05. 2020

냉동실의 말고기

번외편 : 딸이 쓴 제주 여행기

나는 우리 집의 장녀인 고등학생 소녀이다. 인도 여행기를 이어 제주도 여행기에 내 이야기를 조금 덧붙여 볼까 한다. 이번 에피소드는 아빠가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이다. 오직 나와 엄마, 동생들만 경험한 아주 스펙터클한 일이다.


우리는 제주도에서의 마지막 날, 아빠의 강력하고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고집으로 오름을 3개나 올랐다. 첫 번째 오름은 할만했다. 그렇게 가파르지도 않았고 첫 번째이니까 힘도 불끈불끈 솟았다. 그런데 두 번째 오름은 정말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힘들었다. 길지도 않은데 거의 90도에 가까울 정도로 지각이었다. 발목을 완전 꺾어야 올라갈 수 있을 정도였다. 심지어 새로 산지 얼마 안 된 내 새 운동화가 빵꾸 날 정도면 긴 설명은 필요 없을 것이다. 내 운동화 ㅜㅜ 하지만 고생 끝에는 달콤한 꿀이 있는 법! 경치는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다.

 

대망의 마지막 오름은 용눈이 오름이었다. 단단한 각오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웬걸! 정상에 올라가는 길은 1도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산책로처럼 되어있어서 그냥 평지를 걷는 것 같았다. 그리고 옆에는 금빛 털을 한 말들이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도 평온해졌다. 그렇게 정상 즈음에 도착해 보니 중간에 화산의 흔적 같은 넓은 구멍 같은 분화구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 구멍에는 우리를 유혹하는 파란 풀들과 예쁜 꽃들로 가득했고 저 멀리에는 바다가 보였다. 그곳을 걸으면 마치 한 편의 영화를 찍는 기분일 것 같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작은 길이 나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아싸뵹 기회다! 싶어서 그곳을 걷기로 했다. 하지만 아빠는 그냥 평탄하게 닦인 분화구 옆 길을 선택했다. 그래서 우리들만 그 아름다운 길에서 우리만의 영화를 찍기로 했다.

완만한 용눈이오름을 오르면 아름다운 분화구에 난 오솔길이 눈 앞에 딱 펼쳐진다. 분화구 위쪽 길을 택한 아빠가 영화 대신 사진을 찍었다.


생각보다 길 길었다. 위에선 짧아 보였지만 막상 걸어보니 울퉁불퉁하고 좁았다. 그래도 행복했다. 그런데 걸으면 걸을수록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스멀스멀 이상한 냄새가 나기 시작하더니 앞으로 갈수록 돌맹이인줄 알았던 것들이 알고 보니 다 말 똥들이었다. 거짓말 안 하고 한 발짝만 움직여도 똥을 밟을 수 있었다. 정말 인도보다 심했다. 똥을 밟지 않기 위해 똥꼬 힘을 꽉 주고 까치발을 들어 요리조리 열심히 피해 거의 도착지에 다 와갔다. 그런데 저 앞에 무언가가 큰 천으로 덮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걸 그냥 지나치면 절대 우리가 아니지! 우리는 호기심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런데 가까이 갈수록 이상한 냄새가 더 강하게 코를 찔러댔다. 옆으로 가서 살짝 들추어 보니 말 시체가 있는 게 아닌가! 난 다행히 말 시체의 다리만 봤다. 빛의 속도로 뛰어 그곳을 탈출했다. 그런데 엄마는 그 말 시체와 눈을 마주쳤다고 했다. 불쌍한 엄마... 아직도 그 냄새와 말 썩은 시체를 생각하면 내가 제일 좋아하는 뿌링클 치킨을 먹고 있는 중에도 입맛이 확 떨어진다. 심지어 그 전날 제주도의 마트에서 맛을 보기 위해 말고기를 샀는데, 먹기는 무슨 그 비닐만 봐도 구역질이 나올 것 같다. 우린 집에 돌아와 9개월 지난 지금까지 냉장고 저 깊은 곳에 그 말고기를 고이고이 모셔두고 있다. 아무래도 이모에게 줘버려할 것 같다. 그렇게 제주도의 재미있고 충격적인 여행은 끝이 났다. 이번 제주도 여행은 코로나 시기에 우리에게 해방감을 주는 동시에 나의 기억 한편에는 충격을 남겨준 아주 환상적인 여행이었다.


사운드 오브 뮤직의 한 장면 같이 노래를 부르며 아름다운 오솔길을 걸어가는데, 우리에게 닥친 현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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