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리 집의 장녀인 고등학생 소녀이다. 인도 여행기를 이어 제주도 여행기에 내 이야기를 조금 덧붙여 볼까 한다. 이번 에피소드는 아빠가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이다. 오직 나와 엄마, 동생들만 경험한 아주 스펙터클한 일이다.
우리는 제주도에서의 마지막 날, 아빠의 강력하고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고집으로 오름을 3개나 올랐다. 첫 번째 오름은 할만했다. 그렇게 가파르지도 않았고 첫 번째이니까 힘도 불끈불끈 솟았다. 그런데 두 번째 오름은 정말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힘들었다. 길지도 않은데 거의 90도에 가까울 정도로 지각이었다. 발목을 완전 꺾어야 올라갈 수 있을 정도였다. 심지어 새로 산지 얼마 안 된 내 새 운동화가 빵꾸 날 정도면 긴 설명은 필요 없을 것이다. 내 운동화 ㅜㅜ 하지만 고생 끝에는 달콤한 꿀이 있는 법! 경치는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다.
대망의 마지막 오름은 용눈이 오름이었다. 단단한 각오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웬걸! 정상에 올라가는 길은 1도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산책로처럼 되어있어서 그냥 평지를 걷는 것 같았다. 그리고 옆에는 금빛 털을 한 말들이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도 평온해졌다. 그렇게 정상 즈음에 도착해 보니 중간에 화산의 흔적 같은 넓은 구멍 같은 분화구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 구멍에는 우리를 유혹하는 파란 풀들과 예쁜 꽃들로 가득했고 저 멀리에는 바다가 보였다. 그곳을 걸으면 마치 한 편의 영화를 찍는 기분일 것 같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작은 길이 나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아싸뵹 기회다! 싶어서 그곳을 걷기로 했다. 하지만 아빠는 그냥 평탄하게 닦인 분화구 옆 길을 선택했다. 그래서 우리들만 그 아름다운 길에서 우리만의 영화를 찍기로 했다.
완만한 용눈이오름을 오르면 아름다운 분화구에 난 오솔길이 눈 앞에 딱 펼쳐진다. 분화구 위쪽 길을 택한 아빠가 영화 대신 사진을 찍었다.
생각보다 길은 길었다. 위에선 짧아 보였지만 막상 걸어보니 울퉁불퉁하고 좁았다. 그래도 행복했다. 그런데 걸으면 걸을수록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스멀스멀 이상한 냄새가 나기 시작하더니 앞으로 갈수록 돌맹이인줄 알았던 것들이 알고 보니 다 말 똥들이었다. 거짓말 안 하고 한 발짝만 움직여도 똥을 밟을 수 있었다. 정말 인도보다 심했다. 똥을 밟지 않기 위해 똥꼬 힘을 꽉 주고 까치발을 들어 요리조리 열심히 피해 거의 도착지에 다 와갔다. 그런데 저 앞에 무언가가 큰 천으로 덮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걸 그냥 지나치면 절대 우리가 아니지! 우리는 호기심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런데 가까이 갈수록 이상한 냄새가 더 강하게 코를 찔러댔다. 옆으로 가서 살짝 들추어 보니 말 시체가 있는 게 아닌가! 난 다행히 말 시체의 다리만 봤다. 빛의 속도로 뛰어 그곳을 탈출했다. 그런데 엄마는 그 말 시체와 눈을 마주쳤다고 했다. 불쌍한 엄마... 아직도 그 냄새와 말 썩은 시체를 생각하면 내가 제일 좋아하는 뿌링클 치킨을 먹고 있는 중에도 입맛이 확 떨어진다. 심지어 그 전날 제주도의 마트에서 맛을 보기 위해 말고기를 샀는데, 먹기는 무슨 그 비닐만 봐도 구역질이 나올 것 같다. 우린 집에 돌아와 9개월 지난 지금까지 냉장고 저 깊은 곳에 그 말고기를 고이고이 모셔두고 있다. 아무래도 이모에게 줘버려야 할 것 같다. 그렇게 제주도의 재미있고 충격적인 여행은 끝이 났다. 이번 제주도 여행은 코로나 시기에 우리에게 해방감을 주는 동시에 나의 기억 한편에는 충격을 남겨준 아주 환상적인 여행이었다.
사운드 오브 뮤직의 한 장면 같이 노래를 부르며 아름다운 오솔길을 걸어가는데, 우리에게 닥친 현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