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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jay Dec 07. 2020

개똥 철학자의 여행

다섯 식구가 여행을 가려면 고려해야 할 것이 많다. 숙식 계획과 여행 동선을 미리 짜지 않으면 낭패를 볼 수 있다. 런데 제주에서 일주일 일상 살기는 너무나도 즉흥적이었다. 갑자기 물처럼 뚝 떨어진 제주 숙소로 인해 일단 떠났다. 주저주저하다 놓쳐버렸다면 장기화되어 뭐 하나 할 수 없는 이 긴긴 코로나 시기를 어떻게 버틸 수 있었을까 싶다. 계획 없이 휙 떠난 여행이 꼼꼼히 계획을 세운 여행보다 보석 같은 여운을 남길 수 있음을 잊지 말자.


그러고 보니 난 계획적인 여행을 선호한다고 생각했는데 나의 첫 홀로 여행도 즉흥적으로 떠난 여행이었다. 바야흐로 고2 시절, 인생의 무상함과 몽상들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이 하루 이틀 늘어났다. 그러던 어느 날 이런 갑갑하고 무상한 인생 여기서 뭐하러 이렇게 속박당하며 살아야 하는가 하는 절규가 터져 나왔다. 그날 새벽 작은 배낭 하나 메고 홀로 여행을 떠났다. 말이 좋아 여행이지 그냥 가출이었다. 학교도 빠지고 친한 친구들에게도 알리지 않고 홀로 떠난 나만의 여행. 그때도 난 일주일 동안 산을 찾아다녔다. 충주 월악산, 원주 악산 그리고 마지막으로 관악산까지. 난 그때 떠난 그 여행으로 인생의 목적을 발견했었던 것 같다.


나만의 여행을 마치고 처음 찾아간 곳은 담임선생님 집이었다. 나의 인생 고민과 여행의 의미를 다 풀어놓았더니 그때 그 선생님은 이렇게 대꾸했었다.


"개똥철학하고 있네!"


그 말이 얼마나 충격이었는지 30년이 지났어도 생생하게 귓 전에 들린다. 비록 선생님에겐 개똥 철학자의 치기 어린 가출일 뿐이었지만, 나에게 그 즉흥적인 여행은 인생의 목적을 알려 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 같은 선물이다. 지금도 그때 발견한 인생의 목적대로 살고 있는 걸 보니 개똥도 분명 쓸데가 있는가 보다.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낯선 곳으로 휙 떠나보라! 누가 아나? 나처럼 인생의 목적을 발견하게 될지.


우리 집 장녀의 운동화를 빵구냈던 아끈다랑쉬 오름  한숨에 오르기.


<덧 붙이는 글>

이 글을 쓰면서 다음 연재할 여행기를 정했다. 30년이 다 되어 가지만 내 머릿속에 아직도 생생한 나의 첫 홀로 여행. 인생의 목적을 찾아 떠났던 가출의 기억을 소환해 봐야겠다. 꽤 오래된 여행이라 좀 순서와 기억이 변질되었겠지만, 뭐 어떻겠나? 나만의 기억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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