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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jay Dec 10. 2020

카페 소섬사랑

신혼여행을 제외하곤 제주엔 항상 혼자 갔었다. 첫 제주 여행은 1999년 초 겨울, 군 제대하자마자 혼자 떠난 제대 축하 여행에서였다. 서해안을 따라 군 복무 중 만난 군종 동료들을 찾아 여행을 떠났다. 그 마지막이 제주였다. 그곳엔 연고가 없었기에 관광 지도를 보고 갈 곳을 정했다. 이틀 동안 넓디넓은 제주를 다 볼 수도 없으니 선택과 집중을 하기로 했다. '우도'라는 섬이 눈에 들어왔다.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바로 선착장으로 향했다. 소가 누운 모양이라고 우도라 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곳 사람들은 '소섬'이라 불렀다.


인터넷으로 숙소를 예약하지 않던 시대였다. 이메일 아이디도 없던 갓 제대한 어리바리 민간인이 인터넷으로 예약할 수 있었던들 할 수나 있었을까 싶다. 번호를 알면 전화 예약을 하던 시절이었는데, 떠나는 제주행 비행기 안에서 소섬을 가기로 정했으니 번호가 있을 리 만무했다. 갓 제대한 튼튼한 두 다리로 소섬을 누비고 다녔다. 에메랄드 빛 산호사 해변과 검은 모레 검멀레 해변, 쇠머리 오름까지 섬 구석구석을 외로이 누볐다. 오후 무렵이 되자 슬슬 숙소 걱정이 됐다. 민박집 몇 곳을 기웃거려 보았다. 어떤 곳은 방이 없고, 어떤 곳은 너무 열악해 보였다. 갓 제대한 군인이 열악한 숙소를 마다하다니 지금 생각해 보니 나름 예민한 청춘이었나 보다. 예쁜 통나무로 지은 게스트하우스가 마음에 들었는데 불쑥 찾아온 1인 여행객에게는 빈방이 없었다. 이리저리 숙소를 찾아다니다가 다시 그 게스트 하우스로 돌아왔다. 주인아주머니에게 주저리주저리 애원을 시작했다. 지난주에 제대했고, 제대하자마자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 홀로 여행을 떠났으며, 마지막 여행지인 제주도에서는 오직 우도에만 있다 갈 생각이라고... 나의 애원이 통할 걸까? 주인아주머니의 표정이 변하는 것이 아닌가?


"지난주에 제대했다고요? 정말? 우리 아들도 군대 갔는데...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까~ 사실 빈방이 없는데, 군대 간 아들 방이 있어요. 그 방에 지내게 해 줄게요."


갓 군대에 간 아들 덕분에 소섬에서 마음에 쏙 드는 게스트 하우스의 방을 얻었다. 그리고 꼬박 이틀을 지내면서 나는 소섬과 사랑에 빠졌다. 제대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니, 인터넷이라는 신문명이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고 있었다. 편지 대신 이메일을 쓰고, 커피 마시는 곳이 아닌 '카페'에 가입을 했다. 내가 제일 먼저 가입한 카페는 '소섬사랑'이었다. 소섬이 고향인 대학원생이 주인장으로 있던 소섬 카페에서 얼마나 열심히 소섬 예찬을 했던지 주인장은 나를 관리자로까지 승급시켜줬다. 종종 서울에서 오프라인으로 만나기도 했다. 몇 년 후에 다시 제주 소섬에 방문했을 때는 카페 주인장의 할머니 집에 묵으면서 제주 집밥을 먹으며 지내다 오기도 했다. 신혼여행 때는 소섬에게 아내를 소개다. 그렇게 소섬과의 인연을 쌓다가 훌쩍 인도로 떠나게 되면서 난 소섬과 이별을 고했다.


다섯 식구가 되어 다시 찾은 제주도. 난 소섬에 가지 않았다. 내가 사랑했던 그곳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너무나 궁금했지만 그곳에 가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내가 사랑했던 소섬이 너무 변했으면 어쩌지? 우리 세 아이들은 나처럼 좋아하지 않으면 어쩌지? 하룻밤도 묵지 않고 여느 관광객처럼 쓱 소섬을 보고 나오기는 싫은 내 청춘의 추억이 깃든 곳. 세 아이들이 내가 소섬을 좋아하게 됐던 그 나이가 되면 그 아이들과 함께 긴 호흡으로 다시 소섬에 가고 싶다.


아끈 다랑쉬에 오르니 소섬이 저 먼치에서 나의 청춘을 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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