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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jay Nov 30. 2020

오름 중독자

일주일이면 일곱 개의 오름다. 실상은 오는 날과 가는 날 못 갔으니 5곳을 갔어야 맞다. 그런데 우리는 7개의 오름을 올랐다. 


첫 오름은 이미 언급한 이승이오름. 두 번째는 성산일출봉이다. 성산봉 같이 유명한 관광지는 이미 외국인 단체 관광객으로 뒤덮였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었었다. 그런데 성산봉에 외국인이 없었다. 그 한가로움이 17년 전 신혼여행 그 성산일출봉이렸다! 세 번째 오름은 군산. 서귀포 서쪽에 있는 오름이다. 네 번째는 고근산이라는 오름이었다. 바람 소리가 너무 좋아 소리를 담아가고 싶은 오름이었다. 마지막 하루를 남기고 4개의 오름 밖에 가지 못했으니 조바심이 났다. 이렇게 돌아갈 순 없다. 가족들을 모아 놓고 선포를 했다.


바람과 갈대가 만나는 소리


"난 내일 제주 오름의 여왕이라는 다랑쉬오름과 그 근처에 용이 누운 것 같다는 용눈이오름을 꼭 가야 겠어. 그리고 다랑쉬오름에 새끼 오름처럼 붙어 있다는 아끈다랑쉬오름은 나 혼자라도 다녀올테니 그런 줄 알아!"


세 아이들은 무슨 오름 중독자냐며, 아빠의 횡포라며 한 목소리로 불평을 쏟아 놓았다. 저항은 생각보다 거칠었다. 이 저항을 이기는 방법은 단 한가지 뿐이었다.


"대신 내일 먹고 싶은 거 다 사줄게~"


다랑쉬오름은 정말 아름다웠다. 그 정상의 모습이 달의 분화구를 닮아 '월랑악'이라고도 불린다. 산에 오르면 기대하는 풍경이 있다. 확트인 시야와 시원한 바람 그리고 저 멀리 펼쳐지는 바다의 수평선. 바로 그 상상하는 바가 펼쳐지는 곳이 다랑쉬오름이다. 내려오자 마자 작은(아끈) 다랑쉬를 한 걸음에 올랐다. 다랑쉬와 다르게 정상 분화구는 완만하고 나지막해서 그 가운데를 헤치며 걸어갈 수 있었다. 또 다른 아름다움을 선사했다. 충분히 만끽하고 마지막 용눈이오름을 향했다.


내비게이션에는 분명 용눈이로 가는 지름길로 나와 있는데 갈 수가 없었다. 길은 비포장도로였고 공사가 한창이었다. 얼마나 길이 엉망인지 도저히 차가 진입할 수가 없었다. 중도 포기하고 차를 돌려 나오는데 그나마 차가 갈 수 있는 길이 있었다. 무심코 들어섰는데 차 너덧대 정도 들어갈 주차장 공간이 있었다. 여기가 뭐지? 다랑쉬굴이었다.


제주 4.3 사건의 유적지 다랑쉬굴로 가는 작은 길이었다.다랑쉬에는 원래 작은 마을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는다. 70여년 전 좌익으로 몰린 다랑쉬 마을의 주민 11명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토벌대를 피해 오름 아래 굴로 피신을 했다. 토벌대는 이들을 잡기 위해 굴 안에 수류탄을 던지고 불을 피 모두 질식시켜 죽였다. 그리고 이 다랑쉬 마을엔 이후로 사람이 살지 않는다.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1992년, 진상조사단에 의해 유골이 발견되었다. 그 중엔 3구의 여성과 1구의 아이도 있었다. 아름다운 이름 다랑쉬에는 이 나라의 슬픔과 질고를 함께 품고 있었다.


3개의 오름을 가려다 잘 못 들어선 길에서 맞다뜨린 무거운 역사 앞에 우리는 숙연해졌다. 여전히 우리는 이념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코로나로 모두 숨죽여 있던 8월 광복절에도 이념으로 인한 아픈 현실이 가져다 준 코로나 재 확산의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남북이 진정한 평화의 화해를 하고 자유롭게 왕래하는 날, 다섯 식구가 평양에서 랭면을 먹고 금강산에서 절경을 보며 '다랑쉬'를 이야기 하며 여행을 다닐 날을 꿈다.


4.3 유적지 다랑쉬굴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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