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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jay Nov 29. 2020

뜻밖의 달리기

1일 1 오름이 중요한 하루 일과였다면 계획하지 않은 선물도 있었다. 원래 생각은 매일 아침 가까운 해변 올레길을 따라 산책하는 것이었다. 도시 사람이 일주일 동안 아침마다 바다를 보며 걷는 경험을 인생에 몇 번이나 해 보겠는가. 해변길을 걸어보니 몸도 마음도 상쾌했다. 그런데 걷기만 하다 보니 지루하기도 하고 몸도 근질근질했다. 세 아이들 말로 재미가 없었다. 한번 뛰어볼까? 헬스장에서 워밍업을 위해 러닝 머신에서 1km씩 뛰긴 한다. 러닝 머신 위에서 달리는 것은 정말 지루하고 힘들. 그래도 제주 해변 올레길을 따라 뛰는 건 러닝 머신과는 다르겠지.


그냥 다른 정도가 아니었다. 1.5km, 2km, 3km. 조금씩 거리를 늘려서 뛰는데도 전혀 힘들지가 않았다. 세상에 이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야외 달리기, 그것도 제주도의 햇살과 바람을 맞으며 달리 10km 도 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제주에서 달리기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었다.


제주 한 주 살기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왔다. 전염병은 점점 더 극성을 부렸고, 헬스장마저 문을 닫고 말았다. 저녁마다 아이들을 데리고 동네 하천변에 있는 농구장에 갔다. 그런데 곧 주무관청에서 농구대의 링을 떼어 갔다. 모르는 사람과 농구를 하다 보면 손으로 만진 공을 통해서 혹시라도 모를 바이러스 전파가 있을 수 있으니 타당한 조치였다. 헬스장도 농구장도 폐쇄해 버리는 이놈의 전~ 염병 같으니라고! 아무 하고도 접촉하지도 않고, 어느 실내 시설에도 들어가지 않고 오로지 혼자서만 외로이 할 수 있는 운동이 있었지! 바로 달리기였다.


해가 길어지기 시작해서 저녁마다 하천 길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3km만 달려도 죽을 듯이 숨이 찼다. 그런데 그다음 주에 5km, 그다음 주엔 7km, 드디어는 10km를 뛰고 있었다. 달리기에 한참 재미를 붙일 무렵, 3년간 진행했던 프로젝트에 큰 위기가 닥쳤다. 결국은 프로젝트의 첫 번째 결과가 수포로 돌아갔다. 많은 에너지를 쏟았던 일이었기에 무기력과 허탈함, 분노 같은 감정이 동시에 엄습했다. 그때마다 밤마다 혼자 달렸다. 오롯이 달리는 그 1시간 동안은 아무 허탈함도 아무 분노도 아무런 무기력도 없는 진공의 상태가 되었다. 어쩌면 몇 개월을 후유증으로 보냈을지 모르는 상황을 쉽게 극복했다. 제주에서 시작한 달리기가 나를 수렁에서 구원한 것이다.


사람마다 갑자기 찾아오는 번아웃을 이겨내는 방법이 다르다. 누군가는 여행을 통해, 누군가는 게임을 하며, 누군가는 운동을 한다. 이런 것들의 공통점은 잠시 지금의 고통스러운 순간에서 빠져나오는 것이다. 어떤 교수가 학생들에게 각종의 무거운 물질을 가져다 놓고 '이 중에 가장 힘든 것이 무엇일까?'하고 질문을 했다고 한다. 학생들은 각기 다른 종류의 물질들을 고르며 대답을 했지만 정답은 없었다. 교수의 답은 '그 물질의 종류가 무엇이든지 내려놓지 않고 계속 들고 있으면 가장 힘들다'였단다. 그 방법이 무엇이든 나를 짓누르는 스트레스를 내려놓고 나에게 잠시 쉼을 허락해도 좋다. 무게의 스트레스를 내려놓는 좋은 방법으로 여행을 가서 달리기를 해 보는 것은 어떨까?

여행에 가서 달리기 해 보는 건 어떨까요? (게으른 사춘기 얼라들의 저항 주의!ㅋㅋㅋ)


제주 햇살과 바람을 맞으며 아침 달리기 후에 그 상쾌함이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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