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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jay Nov 28. 2020

1일 1 오름

어렸을 적, 아버지와 새벽에 동네 뒷산 약수터에 다녔었다. 서울 변두리에 약수터라니 생소하지만 당시에는 집집마다 약수를 떠서 먹던 시대였다. 약수를 떠 오는 임무는 집안 남자들의 몫. 새벽에 아버지를 따라나서면 떡고물이 있었다. 산자락 어귀에서 파는 순두부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갓 나온 순두부에 양념간장을 넣어 후루룩 퍼먹는 그 순두부 맛은 정말 일품이었다. 순두부 이야기하려는 건 아니고, 뒷산에 오르면 한강이 내려다 보였는데 풍경이 참 멋졌다. 그때는 꽤 멀었던 느낌인데, 커서 올라보니 30분도 걸리지 않는 나지막한 산이었다. 아버지와 함께 올랐던 그 뒷산의 추억 때문일까? 제주도에 가면 나지막하고 아름다운 오름들을 세 아이들과 많이 다니고 싶었다. 그래서 제주 한 주 살기의 제일 목표가 1일 1 오름이 됐다.


제주까지 와서 왜 산에만 가냐고 막내는 투덜거렸다. 어차피 모든 실내 관광지는 문을 닫았고 바다에는 아침마다 나가는데, 오름에 가지 않으면 어디에 가겠냐며 나름 논리적 설득이 통한 걸까? 아니면 어쩔 수 없는 현실에 순응할 걸까? 어쨌든 우리는 가벼운 옷차림으로 첫 번째 오름을 향했다.


동네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 이승(이승) 오름이었다. 예로부터 '악'자 들어가는 산이 험하다던데... 오름 바로 앞까지 차가 들어가, 2.5km나 떨어진 큰길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걸어가기로 했다. 물론 2.5km를 걸어야 한다고 말하진 않았다. 가는 길에 정말 멋진 나무숲길이 있는데 차로 가면 거기를 갈 수 없다고 했다. 오름 등반 빼고도 왕복 5킬로 트레킹을 시작했다. 그런데 오름까지 가는 그 한적하고  완만한 시골길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답답한 집 안에 갇혀 마음에 수북이 쌓인 먼지들을 훅 날려 버렸다. 아... 이렇게 좋을 수가!! 낄낄거리고 뛰어도 가고 쉬어도 갔다. 그냥 걷는 것만으로 3개월 간의 전염병 공포가 씻겨 나갔다.


적당한 높이의 이승 오름도 좋았지만, 그곳까지 가는 그 평범한 길이 준 치유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우리는 언제나 목표를 바라보며 산다. 일에 대한 목표, 자녀들에 대한 목표, 여행기를 쓰면서도 가고 싶은 나라에 대한 목표를 세운다. 그런데 어쩌면 진짜 아름다운 것은 그 목표를 향해 가고 있는 지금의 여정이 아닐까? 삶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사는 매일 하루의 순간이 행복할 때 그 목표도 아름다운 것이 될 것이다.


목표를 성취하는 것보다 목표를 향해 가는 그 여정이 더욱 아름답고 행복한 것임을 세 아이들의 표정에서 배운다.

 

이승이 오름 정상에서~ 제주의 오름은 그만이 주는 특별함이 있다. 다음엔 2주 살기를 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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