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충격의 월급통장... 이제 실감이 나네
하지만 돈이 전부는 아니라는 거.
대기업과 공무원의 차이.
원래는 조직 문화에 대해 가장 먼저 쓰려고 했었는데 호봉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온 김에 돈 이야기부터 해보겠다. (사실 월급이야 케바케가 너무나 강한 영역이기 때문에 내 이야기로 보편적인 비교를 하기엔 좀 그렇지만 일단 이런 실제 사례가 있다는 걸 참고하기 바란다.)
내가 이직할 당시 나는 과장 1년 차였다. 12월에 이직을 한 터라 꽉 찬 1년 차. 같은 대기업이라고 해도 사업의 영역에 따라 임금의 사이즈가 다르기 때문에 연봉도 천차만별인데, 나는 금융회사나 자동차 회사에 비해 월급이 높은 편은 아니었던 생활문화그룹에 다니고 있었다.
2007년 겨울, 그룹 공채로 입사했고 170명의 동기들과 똑같은 초봉으로 시작해 아주 무난하게. 특진도 누락도 없이 중간의 평가를 받으며 10년 차에 과장이 되었을 때 내 계약 연봉은 5천만 원을 조금 넘는 정도였다. 세금 떼고 내 통장에 찍히는 돈은 350만 원 정도. 물론 연말에 성과급이 나왔는데 과장부터는 평균 성과급의 1.5배를 받았으니 약 천만 원 정도를 더 받을 수 있었다. 그러면 토탈 인컴은 약 6천만 원 정도. 물론, 같은 과장이라고 해도 입사경로에 따라, 역량 평가에 따라 연봉이 달라지는데 내 연봉은 딱 평균의 연봉이었다. (그래서 연봉은 개인별 차이가 매우 크기 때문에 단순 비교가 어렵다고 말한 것이다.)
과장 월급이 계약 연봉 5천에 성과급 천만 원 전후. 누군가에게는 엄청 큰 돈일 수 있을 테지만 누군가에게는 분명히 아쉬울 수 있는 돈이다. 당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IT 회사나 금융권, 자동차 회사, 건설회사에 다니는 과장급 친구들이 연말 성과급을 잘 받으면 보통 7~8천 정도의 연봉을 받았고, 훗날 대박의 기대를 안고 스타트업으로 이직한 친구들은 인생은 한 방임을 증명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공무원으로 이직하고 첫 해에 받은 연봉은 세 전 4천만 원이 조금 안 되는 정도였다.
기본적으로 떼어야 할 것 떼고 내 통장에 찍히는 돈은 240만 원. 이전에 비해 월 100만 원이 넘게 줄어든 것이다.
공무원 봉급표야 인터넷에 오픈되어있으니 그냥 찾아보면 되는데 실제로 2016년 당시 6급 6호봉의 기본급은 230만 원이었다. (호봉 계산법은 다른 편에서 설명하겠다.)
아니 공무원은 기본급 외에 수당이 많고 여러 가지 보조비가 많다며. 직급보조비에 가족 수당 더하고, 식대에 무려 팀에서 몇 명 안 주는 주요 직무급 수당 등 여러 가지를 다 더해봐도 어쩜 이런가. 설날과 추석 때 명절 휴가비 나오는 거랑, 성과 상여금까지 다 포함된 계산이었다. 정근수당은 공무원 10년 차부터 본봉의 50%를 주는데 그 전에는 연차에 따라 5%, 10%, 15% 정도라 별 의미도 없고.
당시 내가 다니던 회사의 신입사원 초봉이 3500만 원 정도였는데 10년 차가 4000이라니.
그래 좋다. 월급 적은 거야 알고 이직했으니 불평할 건 없는데 월급 외의 것으로 얻게 되는 복지혜택이 너무 줄어서 연봉 삭감의 체감지수가 더 컸었다.
자잘한 계열사 할인이나 복지 포인트 같은 건 회사마다 다른 영역이니 말하지 않겠다. 그런데 가장 아쉬웠던 건 바로 건강검진. 전에 다니던 회사는 과장부터 건강검진을 대학병원에서 백만 원에 가까운 프로그램으로 해줬었다. 심지어 배우자까지 무료! 호텔 같은 대학병원에서 향기 나는 가운을 입고 여유롭게 검사를 받고 나오면 따뜻한 죽까지 서비스를 해주는 프로그램. 단언컨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죽은 건강검진받고 병원에서 먹는 죽이리라. 하루를 쫄쫄 굶고 빈 속에 먹는 그 전복죽 맛을 잊을 수가 없어서, 병원에 전화해서 검진 비용을 물어보니 85만 원이라더라. 아... 아... 85만 원. 결국 하지 못하고, 동네 내과에서 내 돈 15만 원을 주고 검진을 받았을 때. 진짜 현타가 왔다. 아... 내가 무슨 짓을 한 거란 말인가. 그 전복죽... 진짜 맛있었는데.
나는 중간에 휴직을 하긴 했지만. 휴직을 안 했다고 가정한다면 내 연봉은 현재 세전 5천만 원 정도가 될 것이다. 6급 11호봉. 사회 경력 14년 차.
이직한 지 만 4년이 지난 지금, 회사 동기들은 대부분 차장으로 승진을 했다. 4년 전, 나와 동기들의 연봉 차이는 30% 정도였는데 지금은 50%로 늘었고, 다른 기업으로 이직한 동기와는 100% 넘게 차이가 난다. 실제로 나와 비슷한 시기에 증권회사로 입사한 내 동생도 30대인데 연봉이 1억을 넘는다. 공무원은 국장급 고위공무원단(1~3급) 정도는 돼야 1억을 기대해볼 수 있다.
공무원 정보 카페를 보면 '수당이 빵빵한 공무원! 부러우면 지는 거다!', '공무원 월급이 이 정도나 된다고? 역시 할만하네.' 등의 제목으로 주목을 끄는데. 그래. 누군가에게는 이 봉급도 큰 돈일 수 있다. 그런데 내 글은 대기업과 공무원을 비교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자. 그럼 생각해보자.
돈을 많이 벌고 싶은가? 고민 말고 기업으로 가라.
정년까지 다닌다고 생각하면 공무원이 더 많이 버는 거 아니냐고? 대기업도 큰 사고만 치지 않으면 어지간하면 50까지는 별 탈 없이 다닌다. 이직을 통해 연봉을 뻥튀기할 수 있는 기회도 있다. 노조 여부나 회사 분위기에 따라서 정년을 채우는 회사도 많다. 그냥 누군가 50까지 일하고 버는 돈을 공무원은 60세까지 10년을 더 길게 일해서 나눠서 받는다고 생각하면 편하다.
그런데 60세까지 정년을 꽉 채워 일하는 공무원이 생각보다 적다. 예전엔 공무원 연금을 받을 수 있는 근속 기간이 20년이어서 20년을 채우고 그만두는 경우가 많았다는데, 그 기간이 10년으로 줄어서 별 미련 없이 퇴직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왜냐고?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다. 아무리 법적인 보호도가 높은 노동환경이라고 해도 승진에 밀리고, 신입은 자꾸 들어오고, 뒤쳐지는 느낌을 받으면... 회사 나오는 게 고역인 건 마찬가지다.
아. 적게 일하고 적게 받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내가 이직할 때 했던 생각인데, 워라밸을 지킬 수 있고, 칼퇴만 가능하다면 연봉의 30% 정도는 양보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어차피 월급으로 부자 되기는 어렵고, 내 품위를 지킬 수 있는 정도의 돈을 꾸준히 벌 수 있다면 괜찮은 거 아닌가. 그런데 내가 이직 초반에 느꼈던 업무 강도는 이전과 비슷했다. 한 달에 평균 열흘 정도를 8시 이후까지 야근하는 정도. 그런데 내가 기업에 다닐 땐 없던 제도. 주 52시간 근무제가 2018년 7월부터 시행됐다. 공무원은 근로기준법의 적용 대상이 아니라 이 제도와 상관없다. 여기까지만 하겠다.
결론.
1. 연봉이 동기 부여에 큰 영향을 주는 사람이면 대기업으로 가는 게 맞다. 사회 초년생 때는 공무원보다 월 몇십만 원, 많게는 100만 원 더 받는 정도일 수 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공무원 친구보다 두 배, 세 배의 월급을 받을 수 있다.
2. 성격적으로 일어나지 않은 일에 걱정이 많은 사람이면 공무원을 하는 게 좋겠다. 나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별로 없는 사람인데도, 신입사원 때부터 "우리는 40대에 책상이 없어지고 집에 갈 수도 있어!"라는 말을 많이 했었다. 그래서 더 열심히 해야 해. 잘해야 해. 밀리면 안 돼. 이런 강박 속에 살았던 듯하다. 실제로 아무도 집에 가는 사람은 없는데도 말이다. 공무원이 되면 '아... 회사 가기 싫다...'라는 생각은 많이 해도, 적어도 40대에 밥줄 끊길 걱정은 안 한다.
3. 대대손손 장수하는 집안이라면 공무원을 하는 것도 괜찮다. 공무원이 연봉으로 대기업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바로 연금인데, 일단, 60세 정년까지 일해서 연금을 끝까지 채워 넣고 100살까지 산다면 어지간한 대기업 연봉을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다. 장수만이 희망이다. 나는 요즘 아침마다 영양제를 7알씩 챙겨 먹는다.
돈. 돈. 돈.
돈 얘기만 했더니 가슴이 공허하고, 열이 나는 것 같고, 손가락이 너무 아프다.
내 멘탈 관리를 위해서라도 앞으로 공무원이 되길 잘했어...라고 생각했던 경험을 풀어봐야겠다.
돈이 중요하지만 어디 돈이 전부겠는가. 장점도 많다. 기대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