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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유지인 Oct 24. 2021

16. 내일부터 울릉도로 출근하세요.

인사발령 때마다 조마조마... 아 맞다. 나 노비였지.  

뼛속까지 회사 부심으로 가득 차 있던 내가 이직을 처음 고려했던 이유가 회사의 M&A 발표 소식 때문이었다는 건 앞에서 말한 바 있다. 10년간 충성을 다한 회사였는데 하루아침에 나를 다른 회사로 보내버리겠다니요! 어쩜 이렇게 섭섭한 말씀을 하십니까!라고 울부짖어봤자 소용없지. 주인이 그렇게 하겠다고 마음먹었으면 그렇게 하는 거니까.  


많은 월급이고 뭐고 필요 없다. 나를 내쫓지 않고 평생 함께 갈 것을 약속한 회사로 가자. 그래서 공무원이 되었는데. 여긴 또 이상한 방법으로 사람을 함부로 대하네.  


나는 국가공무원이 이렇게 근무지를 자주 바꾼다는 걸 전혀 알지 못했다. 지방공무원이 그 지방에서 평생을 산다면, 국가공무원은 말 그대로 국가 곳곳을 돌아다닌다. 공무원은 자리에 오래 앉아 있으면 있을수록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고, 매너리즘은 곧 부패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뺑뺑이를 돌리는 것인데, 그래도 그렇지. 사람이 생활 터전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그런데 이건 아주 전국구로 돌린다. 


내가 있던 팀에는 주말부부가 절반이었다. 아빠를 따라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사느니 그냥 엄마와 함께 살면서 꾸준한 주말 부부로 사는 게 아이들 안정에 더 도움이 된다고 했다. 여자 공무원이라고 해서 다를 것이 없다.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를 시댁 부모님께 맡기고 3년은 강원도, 3년은 서울, 여기저기 옮겨 가면서 근무하는 주무관도 있었다. 


이게 왜 그런고 하니, 각 부서마다 소요정원은 정해져 있다. 5급 몇 명, 6급 몇 명, 7급 몇 명 이런 식으로.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누군가 퇴직을 하고, 승진을 하게 될 것 아닌가. 도미노 식으로 채워 넣어야 하는데 그게 딱딱 맞아떨어지지가 않으니 꼬이는 거다. 6급이 5급으로 승진했다고 치자. 원래 5급 자리에 있던 사람을 다른 곳으로 보내거나, 아니면 본인이 다른 곳으로 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다른 팀에도 영향을 줄 테고. 누군가는 근무지를 옮겨야 한다. 


그래서 인사철만 되면 다들 예민해진다. 특히 가족이 있거나, 승진을 앞둔 사람들은 더욱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다. 더 안타까운 건, 다른 지방으로 발령이 난다고 해도 회사에서 지원하는 비용이 일절 없다는 것이다. 갑자기 발령을 받아 떠나야 하는 것도 서러운데, 알아서 집을 구해야 하고, 내 월급으로 월세를 내야 한다. 


그나마 이것이 조금 나아진 것이라고 한다. 그래도 지금은 광역시를 중심으로 지방청이 있고, 그곳에서 주변 소도시를 관리하는데, 예전에는 관서가 아주 말단에까지 뻗어져 있어서 어느 날 갑자기 울릉도로, 백령도로 발령을 받기도 했단다. 생전 처음 가보는 섬으로 발령받고 바로 이동해 근무를 해야 했다니. 정말 말만 들어도 소름이 돋는다.  


기업에 다닐 때도, 지방 발령이 나는 경우가 있긴 했지만 적어도 2년간 거주비용을 월 60만 원씩 지원해줬었다. 입사 초창기엔 50만 원이었는데 물가상승을 고려해서 60만 원으로 오른 것이다. 거기에 가족상봉비라고 KTX나 국내선 비용을 월 2회 지원해줬다. 갑작스러운 타 지역 발령에 대한 미안함을 돈으로 보상해 주는 것이다. 그러나 공무원에겐 미안함 따윈 없다. 당연한 일일 뿐. 


갑자기 회사가 나를 팔아버리겠다고 해서 낙동강 오리알이 되는 삶과 갑자기 다른 동네로 가서 일하라고 등 떠밀리는 삶. 뭐가 더 나은 것인가 비교해보려니 도토리 키재기 같아서 우스워진다. 앞 장에서 내가 사노비에서 공노비가 되면 달라지는 것이 '쫄지 않는 노비'가 되는 것이라고 했는데, 쫄지는 않을지언정 인사 때마다 풍전등화 같은 처지임을 확인해야 한다. 


국가직 공무원으로 합격을 하면 교육을 받고 발령을 받는다. 희망지를 써서 내긴 하지만 어디로 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원하는 곳에 자리가 있으면 다행인 거고, 없으면 그냥 어딘가 필요한 곳으로 간다. 지역이 어디든 상관없이. 지방직 공무원은 또 그 지방 안에서 돌아다닌다. 구청이나 군청, 주민센터 등등 자리를 옮겨가면서. 


의외로 이 부분을 모르고 공무원에 지원하는 사람들이 많더라.(나도 그랬으니까) 세종에서 근무하는 줄 알고 이사까지 다 해놨는데 창원으로 가고, 서울에서 근무하는 줄 알고 있었는데 부산으로 가고. 이러는 경우가 너무 많아서 그만두는 공무원들도 많다. 우리도 다 계획이 있는데. 그걸 왜 몰라주냔 말이다. 


그러니, 꼭 알고 준비하기 바란다. 하아... 몰랐어요... 어떡해.... 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것이다. 다들 그렇게 살아왔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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