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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유지인 Oct 23. 2021

13. 사람을 믿지 않는 조직.

 신뢰는 이상일 뿐. 현실은 모든 것을 관리한다.  

공무원이 되고 얼마 안 되어서 충격받은 일이 있었다. 방송 장비인 프롬프트의 리모컨 건전지가 똑 떨어진 것이다. 오후 방송을 하려면 꼭 필요한 것이었어서 당장 사 와야 했다. 문방구는 회사에서 3분 거리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서무에게 과비 결재 카드를 받고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나서려는데 옆에 있던 다른 직원이 물어본다. 


"출장 결재 올리셨어요?" 

"네? 출장이요? 여기 바로 앞에 문방구 갈 거예요."

"그래도 허가받고 나가셔야 해요."


띠용... 출장 신청은 10분 단위로 올릴 수 있었다. 나는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이거 10분 출장으로 올려요?"

"혹시 모르니 30분 정도로 올리세요. 출장보다 늦게 오면 안 돼요." 

 

나는 출장 사유와 어느 정도 거리에 가는지, 교통수단은 무엇인지 등등을 적는 근무지 내 출장 30분을 올리고 청사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물론 10분 만에 돌아왔다. 나는 업무용 소모품을 사러 1km 이내의 거리에 출장을 나갔고, 임무를 마치고 돌아왔다. 건전지를 갈아 끼우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게 뭐하는 짓이냐...'


청사 울타리 앞에는 붕어빵을 파는 아주머니가 있었다. 1000원에 7개라는 아주 파격적인 가격으로 팔고 계셨다. 맛도 좋아서 인기가 많았다. 오후가 되어 슬슬 배가 고파지려고 할 때쯤, 옆에 앉은 동료가 "우리 붕어빵 먹을까?"라고 했다. 나는 신이 나서 쫄래쫄래 따라나섰다. 그런데 동료는 밖으로 나가지 않고 철제 울타리 앞으로 갔다. 그리고 나무 사이를 벌려 얼굴을 내밀고 이렇게 외쳤다. 


"사장님~ 붕어빵 3천 원어치 주세요~"  

"네~ 3천 원어치요~" 


1분 뒤 철제 울타리 사이로 붕어빵과 3천 원이 오고 갔다. 울타리가 조금 높아서 우리는 쭈그려 앉아 아래로 팔을 뻗었고, 사장님은 까치발을 들고 붕어빵을 올려 주었다. 붕어빵 파는 곳은 정문에서 50걸음쯤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냥 나가서 사 와도 1분이 걸리지 않을 곳이었다. 붕어빵을 맛있게 먹으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게 뭐하는 짓이냐...' 


국가공무원 복무규칙 및 행동강령에 따르면 공무원은 허가 없이 직장이탈이 금지되어 있다. 허락 없이 외출하면 감사 대상이 된다. 갑자기 스타벅스 커피가 마시고 싶어도 나가서 마실 수가 없다. 아! 나 지금 마카롱 딱 하나만 먹으면 부스터 달고 일할 수 있을 텐데!라고 생각해도 소용없다. 그나마 최근엔 배달 서비스가 활성화되어서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배달해서 사 먹기도 하는데, 엎어지면 코 닿는 곳에서 배달비 3천 원을 주고 사 먹으려니 여간 속이 쓰린 게 아니다. 물론 배달 장소는 청사 정문 앞이라고 적는다. 우리는 정문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는다. 거 참 눈물겨운 먹부림이다. 


물론 이해한다. 이렇게 규정하지 않으면 분명 밖에서 한참을 노닐다 들어오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일찍 퇴근해버릴 수도 있고, 아예 출근을 안 할 수도 있다. 썩은 물이 고여있는 곳이라면 다 같이 난장판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법으로 정하는 것이다. 아니 그런데 참... 잘하는 사람한테까지 그래야 하나. 씁쓸하다.


기업에 다닐 땐, 일단 회사 주변에 온갖 브랜드별 커피숍이 즐비했다. 개인 커피숍 중에는 가격도 저렴하면서 맛도 좋은 곳도 많았다. 오후 시간 잠깐 쉬는 시간을 좀 가져볼까 싶으면 마음에 맞는 동료를 불러 산책 좀 할까? 하고 회사 밖으로 나갔다. 시간이 좀 여유로울 때면 떡볶이를 먹고 오기도 했다. 그렇게 리프레시를 한 다음 들어가서 다시 일을 했다. 손님이 찾아오거나, 옛 친구가 근처에 왔다고 하면 얼른 나가서 만나고 와도 되었다. 


근무태만 아니야?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본인의 스케줄을 본인이 정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나는 내 할 일을 야무지게 해냈다. 일이 많으면 "아 내가 지금 좀 바빠서 못 나갈 거 같은데 미안해."라고 말하면 되는 거고 그걸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사람이 눈치라는 게 있으니까 적당히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어머,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들어가자." 눈치껏 행동하고, 다시 일을 하면 되었다. 


회사에서는 임직원의 잦은 외출을 막기 위해 집중근무시간이라는 제도를 만들며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지만 어쨌든 일이 있어서 나가는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회사 밖에서 회의를 하기도 일쑤였다. "어우~ 당 떨어졌어. 나가서 달달한 거 마시면서 이야기해보자!" 해서 나가면 그 옆엔 다른 팀이, 저 쪽 테이블엔 또 다른 팀이 회의를 하고 있었다. 


공무원에게는 직장 내에서 근무시간을 채워야 하는 의무가 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모든 복무를 10분 단위로 계산한다는 것이다. 내가 아침에 10분 정도 늦을 것 같다? 어이쿠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하는 건 의미 없다. 부서장에게 연락을 하여 보고하고 '10분 지각' 결재를 올려야 한다. 애매하게 11분 정도 늦을 거 같다? 그러면 '20분 지각'을 신청해야 한다. 그 10분, 20분은 내 연가에서 뺀다. 


연가도 10분 단위로 쓸 수 있다. 연가 1일은 8시간이다. 저녁에 일이 있어서 조금 일찍 나가봐야 할 때, 차가 막힐 것을 대비해 20분 정도만 일찍 나섰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든다면 '20분 조퇴'를 내 연가에서 차감해 쓰면 된다. 전에 회사에서는 연가를 오전 반차, 오후 반차 이렇게 두 개로만 나눠서 써야 했는데 10분 단위로 쓸 수 있으니 참 다행이다. 그런데 진짜 참 인정머리 없다. 


공무원은 기본적으로 사람을 믿지 않는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없다. 모든 사람을 관리의 대상으로 본다. 9시부터 18시까지 무조건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으세요. 일이 있던 없던 그것은 상관없습니다. 본인의 컨디션도 의미 없습니다. 만약 복무 시간의 변경이 필요하다면 신청을 하세요. 나가서 커피를 마시고 싶으면 본인의 연가에서 시간을 제하세요. 당신의 연가에서 뺀 시간만큼 그 시간은 자유입니다. 단, 신청한 시간 전에 돌아와서 다시 자리에 앉아야 합니다. 무엇이 되었던 자리를 지키고 있으세요. 


내가 공무원을 그만둔다면 아마도 이 이유가 가장 큰 것일지도 모른다. 월급보다 중요한 것. 이곳엔 사람에 대한 믿음과 자유의지라는 것이 없다. 일단, 모든 사람을 도둑놈으로 보고, 게으름뱅이로 보고, 사기꾼으로 가정한다. 그래서 그것이 발현되지 않게 하기 위해 온갖 규정을 만들어 일괄 적용한다. 이런 환경이다 보니 아무리 적극적이었던 사람도 수동적으로 될 수밖에 없다. 나는 잘한다 잘한다 잘한다 해주면 훨훨 나는 사람인데, 맨날 감시당하는 느낌이다 보니 나도 모르게 가슴이 답답하다. 


누차 말하지만 제도는 이해한다. 공무원은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을 받고, 정년이 보장되기 때문에 부패하기 쉬운 환경이라는 것을. 하지만, 내가 기분이 매우 좋지가 않다. 사소한 것 하나하나 보고하고 승인을 받고 움직여야 할 때마다 '재수생 스파르타식 기숙사 학원도 이것보단 자유롭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둬놓고 일 시키는 곳. 아... 재미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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