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육아휴직 3년... 공짜는 없어라.
쉴 땐 좋았는데.
내가 공무원 채용에 눈을 돌리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사실 육아 때문이었다. 아이가 스스로 자기 할 일을 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어른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남편도 나도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다른 집 부모들은 매일 동화책을 5권씩 읽어주고, 영어책 CD도 틀어준다는데, 나는 자기 전에 책 한 권 읽어주는 것도 힘들었다. '아... 그냥 빨리 누워서 자고 싶다...' 생각뿐.
그런데 공무원은 업무 강도도 낮고 칼퇴도 할 수 있다고 한다(다 거짓말). 게다가 육아휴직은 3년간 쓸 수 있고(이건 사실). 어쨌든 일도 하면서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직업이 무엇일까 찾다 보니 공무원을 떠올린 것인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육아휴직 기간을 1년으로 한다. 내가 다녔던 회사도 1년이었다. 나름 일과 가정의 양립을 존중하는 곳이었어서 휴직 사용에 불이익이 있거나 어려움은 크게 없었지만, 육아휴직 기간이 짧은 관계로 전략을 잘 세워야 했다. 나는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이 되면 쓸 생각으로 출산휴가를 마치고 바로 복귀했고 휴직을 아껴두고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과연 내가 휴직을 할 수 있을까?라는 의심이 들었다. 연차가 쌓일수록 회사에서 맡은 역할도 커지고 간부라는 명목으로 일의 주체자가 되는데, 과연 내가 손을 놓을 수 있을까. 또,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쯤이면 나는 부장 승진을 앞두고 있을 것인데, 과연 나는 승진을 포기하고 육아휴직을 쓸 수 있을까?
못할 것 같았다. 부장이 되면 팀장 보직을 맡을 수도 있는데 육아휴직을 쓰는 팀장은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월급이 얼마야. 일단 어떻게든 가방 메고 한 달간 왔다 갔다 하면 돈 500만 원이 통장에 꽂히는데. 1년이면 6천이다. 1년만 다녀도 벤츠를 살 수 있다. 내가 그 돈을 포기하고 휴직을 할 수 있을까? 아니. 못할 것 같았다. 나는.
그런데 공무원이 진짜 되었다. 육아휴직을 안 할 이유가 없지. 나는 공무원이 되고 2년 3개월간 불태우며 일하다가, 계획대로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이 되었을 때 휴직을 했다.
원래는 1년만 쉬고 상황을 봐서 들어갈 생각이었다. 회사에 자리를 잡은 지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감을 잃기 전에 빨리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휴직 만료 시점이 돌아오니 굳이 왜?라는 생각이 들더라. 앞으로 60세까지 평생 일할지도 모르는데 지금 굳이 왜? 이 한정된 시간이 금쪽같았고 마음이 급해졌다. 그래서 휴직을 1년 더 연장하고 그동안 모았던 돈을 탈탈 털어 아이와 함께 캐나다로 1년 살이를 떠났다. 통장 잔고가 빛의 속도로 줄어들었지만 돈은 내년부터 다시 벌면 되지 뭐. 이런 생각이었다.
그렇게 꿈에 그리던 해외 생활을 하고 돌아왔는데 이게 웬 코로나. 초등학교 3학년이면 혼자 알아서 가방 챙겨 학원에 갈 수 있을 거야! 생각하며 복직을 준비하려 했는데 아이가 학교에 가질 않네. 휴직 만료 시점은 다가오고. 결국 나는 또 휴직 연장. 육아휴직은 만 8세 이하 거나 초등학교 2학년 이하까지 쓸 수 있는데, 우리 아이는 생일이 12월생이어서 초등학교 3학년이어도 만 8세 조건으로 생인 전날까지 휴직을 쓸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총 2년 7개월간의 육아휴직. 휴직 만료 3개월을 앞두고 조기 복직을 하긴 했지만, 진짜 뽕을 뽑았다. 우려먹을 대로 우려먹은 케이스.
얼마나 좋은가. 세상에. 기존 회사에 다닐 때는 상상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한 번도 육아 다운 육아를 해보지 않았다는 생각에 아이에게 미안함 같은 것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것이 하나도 없다.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는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밀착 커버를 했고, 초등학교 2학년 때는 캐나다에서 영어를 배우며 자연과 함께 사는 생활을 했고, 전염병이 창궐하는 3학년 때는 학교를 가던가 말던가, 온라인 수업을 하던가 말던가 걱정할 것 없이 엄마가 항상 집에 있는 삶을 살게 했다. 와... 진짜 워킹맘들이 보면 꿈같은 일이다. 나도 내가 이렇게 환상적인 휴직 기간을 보낼 것이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이보다 더 어떻게 좋을 수 있나.
그런데.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직을 해보니 역시 세상에 공짜는 없구나.
1. 복직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휴직 기간에도 건강보험료와 연금 납부는 계속 이어진다. 처음 휴직 1년은 육아휴직수당이 지급되므로 거기에서 해결했는데, 그 후의 휴직 기간에 대해서는 내 사비로 금액을 채워 넣어야 했다. 2년 7개월의 휴직 기간 중 1년 7개월 기간 동안의 공무원연금과 건강보험료를 내야 했다. 해외생활을 한 터라 건강보험이 중지되었어서 특별히 타격이 있지는 않았는데, 연금은 매월 40만 원 정도로 계산되어 약 700만 원을 내야 했다. 복직 후 봉급에서 지불하는 방식으로 분할 납부가 가능했지만 나는 몇 달 동안 뼈 빠지게 일하고 통장에 0원이 찍히는 일은 만들고 싶지 않아서 일시불로 지급했다. 와. 그렇게 하니까 진짜 통장은 텅장이 되고.
2. 나만 빼고 다 잘 나가.
휴직 기간이 길었던 만큼 복직을 해보니 계급 체계가 모두 바뀌어 있었다. 후배들은 동급이 되었고, 동급들은 사무관이 되었다. 과장님은 국장님이 되었고, 국장님은 차장님이 되었다. 복직 후 호칭을 신경 쓰느라 엄청 힘들었네. 너무 반가워서 "어머~~~ 주임님 잘 지내셨어요!!!" 하면서 호들갑을 떠는데 옆에서 다른 직원이 쿡 찌르며 속삭이듯 알려준다. "작년에 사무관 승진하셨어요." 앞 장에서 말하지 않았는가. 계급 사회에서 계급은 그 사람의 능력이자, 권한이자, 인격이자, 힘의 세기를 나타내는 거라고. 공무원 세계는 시간만이 정답인 경우가 많은데 이제 나만 빼고 모두 다 3년간 휴직을 하지 않는 이상 따라잡을 수 없는 신분의 차이가 생겼다.
3. 어느 부서로 갈지 알 수 없다.
나야 경력채용으로 3년간 전보제한에 걸려 있었기 때문에 복직 후 내가 일하던 그 자리로 돌아갈 수 있었는데, 그렇지 않은 공무원들은 내가 어느 부서로 배정될지 알 수 없다. 물론 인사과에 원하는 부서를 말하기도 하지만, 그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가 훨씬 많다. 왜냐하면 공무원의 세계는 부서별로 5급 몇 명, 6급 몇 명, 7급 몇 명, 8급 몇 명, 9급 몇 명 이런 식으로 소요정원이 정해져 있는데, 휴직을 하면 나만 빼고 모두 급수가 달라져 있을 확률이 높다. 내가 원하는 팀에 내 급수에 맞는 자리가 남아있지 않은 이상 들어가기 어려운 것이다. 아무리 적임자라는 평가를 받는다고 해도, 그 자리에서 일하던 사람을 튕겨내고 들어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나 국가직 공무원은 갑자기 지방 발령이 나거나, 생활권이 아닌 곳으로 배치받을 수도 있어서 두려려움이 크다.
사실, 공무원 세계에 들어와서 놀랐던 일 중 하나가, 의외로 육아휴직을 3년씩 쓰는 사람이 드물다는 것이었다. 다들 위와 같은 이유로 오래 쓰지 못한다. 나처럼 외부에서 들어와 아무 생각 없이 "우와~ 3년이다~~~" 이렇게 사는 사람들이나 좋아하지, 그게 당연했던 사람들은 휴직이 선택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내가 번 돈을 모두 이모님께 드리더라도 빨리 호봉을 높이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왜냐하면 일단 60세까지 일을 할 것이라는 전제가 있기 때문에 현재의 빈털터리는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내가 아는 공무원 선배는 월급이 200만 원이던 시절 아이를 돌봐주시는 이모님께 월 160만 원씩 드렸다고 한다. 그렇게 3년간 무임금노동자 같은 삶을 살았다고. 아니 이게 무슨 허무한 짓이냐고 물어보니. 지금 쉬면 3년 뒤에도 같은 급수 같은 호봉인데, 그것보단 지금 손에 쥐는 월급이 없더라도, 빨리 승진을 하고 빨리 호봉을 높이는 게 결과적으로 더 이득이라는 것이다. 듣고 보니 그럴듯했다. 그 선배는 현재 휴직을 했던 다른 동기들보다 빠른 승진을 했고 월급은 30% 정도 많다. 괜찮은 전략이었던 것 같다.
뭐. 남의 사정이야 어찌 되었든. 일단 나는 꿀 같은 휴직 기간을 보낸 것이 맞다. 특히, 워킹맘들의 멘털을 탈탈 털리게 했던 코로나 시대에 휴직을 하다니. 내가 월급 적다고 한탄하고, 일 많다고 불평한다고 해도 인정할 건 인정한다. 호화로운 육아휴직 생활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히 오래 쉬었나? 하는 아쉬움이 남을 때가 있다. 승진은 밀릴대로 밀리고, 업무도 바뀌고, 월급은 다 털려가고. 감내할 것이 많다. 특히, 아이 입장에서 생각했을 때. 엄마가 옆에 있어서 무조건 좋았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면 선뜻 그럼요! 라는 말을 못하겠다. ㅎㅎ 잔소리쟁이 고함쟁이 엄마가 갑자기 들러붙어서 나를 못살게 굴어... 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회사로 복직한 지금, 오히려 아이와 사이가 더 좋다. 의외로 엄마가 있으면 무조건 좋을 것이란 편견도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아무튼, 나에겐 매우 좋은 시절이었지만. 공짜는 없더라. 계산기 잘 두드려서 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