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조금 거룩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사회생활 10년 차가 되었을 때, 나는 세상을 조금 알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나의 첫 직업은 방송기자였는데 같은 회사 홍보팀으로 이동하기 전까지 5년간 사건 사고 현장을 누비며 뉴스 꼭지를 만드는 일을 했었다. 쪽방촌 독거노인도 만났고, 홍수에 집이 모두 잠겨 망연자실한 아주머니도 만났고, 사고로 온 가족을 잃은 사람들, 폐품을 모아 판 돈 1억을 기부한 할머니도 만나봤다.
다양한 주제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나는 내가 점점 세상에 눈을 뜨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홍보팀으로 옮기고 나서는 더욱 격동의 시간을 보냈다. 회사 오너가 구속되는 일이 벌어졌다. 홍보라인은 리스크 관리에 사활을 걸었다. 매일매일이 긴장의 연속이었고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을 실습하는 나날이었다. 그 와중에 회사는 국내 최초의 서비스를 계속해서 론칭했고, 공유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소외계층을 위한 서비스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으며, M&A를 수시로 했고, 마지막엔 M&A를 크게 당했다.
하여튼 바람 잘 날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나는 스스로 강해졌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름 빠른 시간에 사회생활 만렙을 찍었다고 생각하면서 뿌듯해했다.
그러던 중 공무원이 되었고, '나 사회 밥 찐하게 먹은 사람이야. 너희처럼 온실 속에서 곱게 자란 사람과 근본이 다르다고.'라며 의기양양한 발걸음으로 첫 출근을 했는데.
이곳엔 내가 '관찰'을 했던 일들을 '살아온' 사람들이 많았다.
정부청사 안엔 그동안 나의 생활권에 없었던 사람들이 많았다.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동료와 함께 일하게 된 것도 공무원이 되고 나서 처음이었다. 소아마비로 다리를 저는 사람도 있었다. 비록 소수였지만 생경한 경험이었다.
대학을 나오지 않은 사람도 많았다. 그동안 "전공이 뭐예요?"라는 질문은 "밥 먹었니?"와 같은 평범하고 의미 없는 질문이었다. 딱히 궁금한 건 아닌데 그냥 이야기를 이어나가기 위한 수단으로 하는 질문. 하지만 이곳에서는 그 질문이 상처가 될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
함께하는 사람들이 달라진 건 사무실 밖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정부청사 화장실을 청소하시는 여사님은 허리가 굽어 있었다. 화장실 거울 높은 곳을 닦을 때면 있는 힘껏 허리를 펴보았지만 여의치 않았다. 그곳은 물걸레가 닿지 못해 약간의 얼룩이 남아있었다. 그녀는 최선을 다했으나 어쩔 수 없었다. 고된 노동은 그녀의 표정을 어둡게 했다. 그녀는 어떤 직원과도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고 아무도 그녀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기업에 다닐 때도 역시 사무실과 화장실을 청소해주는 여사님이 있었다. 중년 세대를 위한 서비스를 론칭했을 때, 사진 모델을 부탁할 정도로 세련되고 깔끔한 인상의 분이었다. 그녀는 성격도 밝고, 날씬했고, 늘 정돈된 화장을 하고 다녔다. 밝은 에너지를 가진 분이었다. 새벽에 출근해 오후 3시에 퇴근을 하면 문화센터에 가서 2시간 동안 운동을 한고, 골다공증을 예방하기 위해 우유를 꼭 드신다고 했다. 저녁을 일찍 먹고 좋아하는 책을 보다가 9시쯤 잠드는 것이 그녀의 루틴한 일과였다. 직원들과도 서슴없이 지냈고, 휴게실에서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그녀는 건강과 여유가 있는 대기업 청소노동자였다.
공무원이 되고 달라진 점이 있다면, 경쟁과 줄 세우기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이 최고 가치라고 생각했던 사고방식을 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은 명백히 건강하고 좋은 환경에서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의 입장이었다. 한 마디로 돈이 많은 대기업 중심의 사고였다.
기업에 있을 때, 시각장애인을 위한 서비스를 론칭한 적이 있다. 시각장애인을 직접 만나, 그들에게 의견을 묻고, 불편한 점을 개선해 서비스를 출시했다. 직원들은 직접 안대를 끼고 생활했고, 우리가 얼마나 훌륭한 일을 하고 있는지를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나 스스로도 굉장히 보람된 일을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장애인과 함께 하는 생활을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회사에서든, 어디에서든.
세상을 조금 알 것 같다는 나의 생각은 자만이었고, 책 속에서 글로 배운 인생과 같았다.
공무원으로 첫 출근을 하고 자리로 안내받은 다음 컴퓨터를 배정받았다. 처음 들어보는 회사의 것이었다. 이름도 낯설다. 이게 영어야 한글이야? 싶은. 컴퓨터 사양도 좋지 않다. '뭐야, 처음 왔다고 나만 이렇게 다 죽어가는 컴퓨터 주는 거야?'하고 둘러보니 다들 같은 브랜드의 것이다.
기관에서는 물품을 살 때 싸고 좋은 것을 사면 안 된다. 쉽게 말해 대기업 것을 살 수 없다. 나라장터라는 물건 구매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업체 중 중증장애인 대상 기업, 녹색 친환경 기업, 중소기업 등 구매 가능한 기업이 정해져 있다. 아니! 시중에 쉽게 살 수 있는 사양 좋은 컴퓨터를 두고, AS까지 확실하게 해주는 컴퓨터를 두고 왜 이렇게 뒤처진 컴퓨터를 비싸게 주고 사야 하는 겁니까? 이게 바로 세금을 함부로 쓰는 거라고요! 생각했다.
그런데 효율이 최고 가치인 사회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걸 체감하면서 시각이 많이 달라졌다. 특별히 어려운 일이 아니면 정부 기관에서라도, 비록 최고의 가성비를 뿜어내지 않는 사람과 물건이라도, 우선 채용하고, 우선 구매해야 한다. 기업에서는 절대 받아들여주지 않는다.
공무원 하면 느리고, 후지고, 촌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그렇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의미 있는 느림과, 후짐과, 촌스러움이다. 경쟁 마인드와 기업 마인드에서 벗어나야 전체를 볼 수 있다.
공무원이 되고 나서 인생에서의 우선 가치가 '경쟁 우위'가 아님을 알게 되었는데, 이것은 내 인생에서 조금 큰 의미를 갖는다. 내가 이직을 하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내 잘남을 증명해내느라 애쓰고, 노력하지 않는 자 유죄! 라며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마다 시작점이 다르고, 처한 상황이 다르고, 환경이 다르므로 한 줄로 세워 닦달하는 것은 옳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적어도 다 같이 잘 살고자 하는 사회를 꿈꾼다면 말이다.
현재 사회생활 15년 차.
10년 차 때보다 세상을 조금 더 알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10년 뒤엔 또 다른 깨달음을 얻을는지...
이러다 도 닦는 것 아닌가 모르겠지만...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