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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meralda Jun 09. 2020

004 상실을 상실하는 것에 대해

 상실이라는 단어를 제목에서 맞닥뜨리자 마자 저는 차마 공감도 못할 언니의 절망이 느껴져서 깊은 숨이 나왔습니다. 언니가 답장을 쓰는데 일주일이 넘어가면 어쩌나 사실 조금 걱정이 있었어요. 벌써 이 프로젝트에 설레는 감정이 사라진 것일까봐 조마조마한 마음을 쓸어내리며 천천히 읽었습니다. 덕분에 브런치 꽤나 들락날락했습니다. 언니가 폭풍업로드한 글들도 하나씩 다 읽어보고.

 상실을 상실해야 우리는 살 수 있을까요. 원래 없던 것처럼 여기는 훈련을 가끔해요. 친구를 보다가도 '이 사람이 내게 사라진다면'하고 그가 들으면 아주 불같이 화를 낼 공상을 하곤 합니다. 뭔가 상실했다는 것은, 그것으로 인해 항상 든든했다는 건데 그것이 내 삶의 자랑처럼 여겨질때는 더더욱이 어리석게 느껴질 때가 많아요. 스스로 외롭기를 자처하는 사람 같기도 하지만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만 여전히 빈맘과 빈손과 친해지려 하고 있습니다. 찬찬히 생각해보면, 핸드폰을 잠시 잃어버려도 호들갑 떠는 제가 평생 그렇게 완성 되기는 어려울 것 같긴 합니다.


 별로 안 친한 사람과 갖는 만남을 가졌다니 듣기 좋네요. 저는 이번주에 약간 친한 사람을 만나는데, 정말 언니말대로 가끔은 약간 나를 모르는 사람이 더 편해요 나를 막 좋은데는 아니어도 이 어두운 구렁텅이에서 꺼내주어 저기 어디 고수부지로 데려가줄 수 있을것만 같잖아요. 만나고 나면 괜히 내가 품던 복잡한 문제도 가볍게 생각할 수 있게 되는 것 같고 그래요. 저는 친한 사람들한테도 점점 속을 드러내는게 어려워져요. 친한 사람들이 없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갈수록 세상은 나를 이해하기 힘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기분이 들어요 나는 더 유별나져만 가는데, 사람들은 세상에 잘 적응하는 것 같거든요. 저는 언니랑 반대로 변명을 하지 않기 위해 점점 입을 닫는 쪽인 것 같아요. 누군가 긁어주지 않으면 제가 먼저 "나는 요즘 이런 기분이 들어~"하고 말하지 못하겠어요. 그래서 그런지 노래로 얘기하는게 제일 편하고. 그리고 요즘은 나보다 더 자신의 내면의 문제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을 많이 보게 됐어요. 레슨할 때 특히 학생들과 그런 얘기를 많이 나누게 되는데, 한낱 보컬강사한테 자신의 고민이 이러쿵 저러쿵 할당 시간의 반절 이상을 늘어뜨리며 간혹 눈물도 흘리는 사람들을 보면 닭가슴살마냥 퍽퍽한 세상의 인생결이 사무치게 느껴져요. 너무 존경하는 음악 선배를 만나서 조언을 얻으려고 했는데 되려 인생고민만 주구장창 듣고 온 적도 있고. 이런 일을 겪은 하루 끝에는 '아 나만 외로운건 아니다' 싶으면서도 단체로 쓸쓸한 덩어리처럼 보이니까 그것도 외롭게 느껴진다니까요.


 진지한 얘기가 이런 이야기였군요. 저는 자주 플라스틱 사용을 고찰할 때 노력의 무의미함에 털썩 주저 앉고는 해요. 항상 가방에 맥북에 맥북거치대에 보조배터리에 지갑에 외장하드에 마우스에 책 한권에 화룡정점으로 455ml 텀블러를 꾸역꾸역 넣어서 이고 다니면서 그래도 환경에 보탬이 되겠지 하고 집을 나서는데 나서자마자 보도에 보이는 테이크아웃 컵들, 나뒹구는 빨대들과 페트병들, 그리고 누군가를 만나면 꼭 듣게 되는 말 "너가 아무리 그래도 사람들은 어차피 플라스틱 많이 써." 맥이 꺾여요. 차별에 맞서겠다고 시위 운동하는 사람들과, 조금만 고개를 돌리면 그 분노로 또다른 약자들을 폭행하는 사람들. 구김살 없어보이는 사람들은 이런 모순들을 다 외면해와서 그렇게 판판한걸까요? 아픔에는 눈 질끈 감아야 조금 편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주님은 그것도 내어주시지 않으니, 참 불의롭기도 어렵습니다.


 아래 첨부한 클림트 그림은 참 촘촘한 그림이네요. 저 사람은 인내심이 되게 많은 사람인가봐요 저 작은 점들을 하나하나 어떻게 그리고 있대요. 뭔가 보고 있으면 두부를 손에 꽉 쥐듯 으깨고 싶어요. 하여튼 예술하는 놈들은 다 또라이에요 또라이. 저번 글에서 추천해줬던 벨애포크는 예매까지 다해놓고 같이 보기로한 사람이랑 말다툼해서 못봤어요. 그래도 엔간하면 언니가 보라고 하는 건 시간이 얼마나 지나든 다 보긴 하니까 일단 추천해줘요. 이번에는 혼자 볼렵니다. 이렇게  야금야금 맛볼게요. 상실이라는 귀하고도 거지같은 경험을 하고 있는 언니에게 요조의 '우리는 선처럼 가만히 누워'를 건네고 갑니다. 지금은 볼 수 없는 함께의 요조와 이상순의 목소리에 묻어있는 쓸쓸함으로 대신 위로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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