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껏 이름이 같은 사람을 만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어떤 면에선 좋았지만
또 어떤 면에선
이름이 좀 더 세련되거나
아니면 차라리 좀 더 평범한 이름이었으면 하는
그런 바람도 있었습니다.
이런 저와는 반대로
아내의 이름은 길을 가다 부르면
두 세명은 반드시 돌아볼 만큼
아주 흔한 이름입니다.
다녔던 회사마다
아내와 동명이인을
만나지 않은 적이 없었고,
몇 안 되는 소중한 제 친구 중에서도 한 명은
아내와 이름이 같습니다.
거리에 붙은 입시학원의 축하 현수막에서도
영화가 끝나고 올라가는 엔딩 크레딧에서도
쇼핑몰 안내 데스크에 앉아 계신 분의 가슴팍에서도
아내의 이름은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오늘,
점심을 얻어먹으러 친구네 회사에 다녀 왔습니다.
친구네 회사 구내식당은 정말 최고였습니다!
영양사님들께 쌍따봉을 두 번이나 날려드렸지요.
아, 물론 마음속으로요.
전 소심하니까요.
밥 잘 사주는 멋진 친구를 만나
구내식당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복도에 설치된 직원용 사물함들 중 하나에서
아내의 이름을 보았습니다.
점심을 먹으러 간 친구네 회사의 구내식당 복도에서
아내의 이름이 적힌 사물함을 보니
예전 아내가 해준 이야기가 생각이 났습니다.
- 초등학교 4학년 첫날 등교했는데,
담임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우리 반에 '모모'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가 3명이라는 거야.
- 3명이나?
하긴 나도 고등학교 때 우리 반에 '용용'이가
3명이었는데. 김용용, 손용용, 최용용.
그래서 용용 1,2,3이었어.
- 그건 상대도 안돼.
우리는 3명이 성까지 같았다고!
- 성까지?
- 어, 3명이 전부 '김모모'.
- 와, 이름 부를 때 쉽지 않았겠는데?
번호로 불러야 하나?
- 근데 그때 담임 선생님이 잠시 고민을 하시더니
3명의 이름을 너무 예쁘게 구별해 주셨어.
- 어떻게?
- 웃는 얼굴이 활짝 핀 꽃처럼 예쁜 모모는,
꽃모모.
우리 반을 환하게 비춰주는 멋진 분위기의 모모는,
달모모.
별처럼 초롱초롱한 예쁜 눈을 가진 모모는,
별모모.
자 이제부터 우리 반 모모는
꽃모모, 달모모, 별모모에요.
다들 알겠지요?
- 우와 세상에! 진짜 너무 멋지시다!
- 그치? 그럼 나는 무슨 모모였게?
저는 아내의 이야기를 들은 저 날
마음속으로 수 십 번을 감탄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수 십 번을 감동했습니다.
정말이지 잠이 들 때까지 제 머릿속에서
선생님의 저 말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전까지 아내는
자신의 이름이 너무 흔해서 싫었다고,
매년 새 학기가 되면
같은 이름이 꼭 한 명 이상은 있어서
너무 불편했다고 말을 하곤 했었습니다.
하지만 저 해에는!
새로 만난 담임 선생님께서
꽃과 달과 별이라고 불러 주신 저 해에는!
자신이 꽃과 달과 별 중에 하나가 되어
너무나 좋았다고 합니다.
그때의 기억을
지금까지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아내를 보면
매년 새 학기, 자신과 같은 이름의 친구들을
만나야했던 모모들에게
저 해는 정말 특별한 해였을 것 같습니다.
사물을 보는 눈과 태도
사람을 대하는 배려와 센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들의 순수함을 지켜주시고
아이들의 상상력을 키워주신
저 해 담임 선생님의 ‘어른’ 다움에
저는 완전히 빠져버렸습니다.
내 이름은 너무 흔해!
이번에도 같은 이름이 있어!
이번 학기에도 번호로 불리는 거 너무 싫어!
매년 3명의 모모가 마음속으로 했을 저 불만들이.
누군가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아이들의 저 마음의 소리들이.
실은 아이들의 고유성과 정체성을 억압하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을지.
오늘은,
두 눈이 별처럼 초롱초롱하다고 별모모가 되었던
아내의 생일입니다.
별처럼 반짝이는 값비싼 선물을 해 줄
영광스러운 기회는
언젠간 로또 1등이 될 훗날의 저에게 넘기고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 미역국이라도 끓여야겠습니다.
꽃과 달과 별이 되었던 세 명의 모모들 이외에도
이 세상의 모든 모모들이
별모모의 생일을 맞아
행복하고 편안한 저녁을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
*사진출처: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