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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나비 Aug 11. 2024

천국엔 단 한 명만 가면 돼

하지만 마지막 주의사항을 꼭 기억하도록 해

나를 사랑하는 단 한 명만 천국에 가면 되는 거야.

사실 천국은 커스터마이징이거든.

무슨 말이냐면,

만약 나를 엄청 사랑하는 내 친구 ‘조’녀석이

나보다 먼저 하늘로 갔다고 치자고.

이 ‘조’녀석은 생전에 무척이나 예의 바르고 착하고

상냥한 녀석이었기 때문에 이 녀석이 천국에

못 간다면 다른 누구도 천국엔 못 간다고 봐야지.


그러니 당연히!

‘조’는 천국으로 가게 된 거야.



천국에 첫 발을 내디딘 ‘조’녀석은 무척 당황했어.

천국은 ‘조’녀석의 상상과는 많이 달랐거든.

귀여운 천사들이 나팔을 불며 새로 온 선자(善者)를

환영하고, 먼저 와 있던 선자(善者)들이 너도나도

곁에 다가와 인사하며 안내해 주는 모습 같은 건

전혀 없었어.


‘조’는 두리번거렸지.

그때 갑자기 큰 화면이 ‘조‘의 눈앞에 나타났어.

위에서 스르르 내려온 것도 아니고,

아래에서 부르르 올라온 것도 아니고,

말 그대로 갑자기 눈앞에서 짠~ 하고 나타난 거야.


화면엔 지도가 그려져 있었어.

그리고 지도 위에는 여러 개의 마을들이 표시되어

있었지. 각 마을마다 사람들의 이름이 하나씩

표시되어 있었는데 그걸 본 ‘조’는 깜짝 놀랐어.


다 ‘조’가 아는 이름들이었거든.

왼쪽 위에 있는 마을에는 ‘조’녀석의 할머니 이름이

쓰여 있었어. ‘조’녀석은 할머니 이름만 봤을 뿐인데

눈물이 났어. 어릴 때 ‘조’의 엄마, 아빠가 일을 하러

나가시면 하루종일 ‘조’녀석을 할머니께서 봐주셨거든.


‘조’는 술만 취하면 우리에게도 할머니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어. 그 얘기들 중에는 나도 눈물을

찔끔거렸던 부분이 많았었는데, 그중에서도…


‘조’녀석이 고등학생일 때

할머니가 치매에 걸리셨대.

할머니의 자식들도 모두 난감해할 때

글쎄 ‘조’녀석이 할머니와 한 방을 쓰며

할머니의 대소변을 다 받고 씻겨드렸다는 거야.


잠깐만 나 지금도 조금 눈물이 나는 것 같아서. 휴..

그때 ‘조’가 뭐라고 했냐면.

할머니의 대소변은 하나도 더럽지가 않았대.

그저 어느 날 학교를 갔다 왔는데

할머니가 안보일까 봐 그게 너무 두려웠대.


‘조’는 눈물과 미소로 범벅이 된 얼굴로 화면의

다른 이름들도 확인했어. 중간쯤에 위치한 마을에는

학창 시절 ‘조’를 무척이나 아꼈던 은사님의 이름이

쓰여있었고, 나머지 이름들도  ‘조’가 많이 따르고

사랑했던 분들이었어.


그때 ‘조’의 귀에 평생 처음 들어보는 목소리가

들려왔어. 지금까지 들어본 그 어떤 목소리보다

매력적인 목소리였지. 듣기만 해도 마음이 안정되고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목소리였어.


- 지금 표시된 마을들의 촌장님들께서

각자의 마을 주민으로 당신을 초대하셨습니다.

당신은 이 마을들 중 한 곳을 선택하여 정착하실 수

있습니다.


‘조’는 당황스러웠어.

하지만 마을들 중 한 곳을 선택해야 한다는 말에

‘조’는 마음이 급해졌어.

제한 시간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천성이 상냥하고

남에게 폐를 끼치기 싫어한 내 친구 ‘조’는

조금이라도 빨리 선택을 끝내려 했지.

그때 다시 좀 전의 매력적인 목소리가 들려왔어.


- 초대받은 마을들 중 한 곳의 주민이 되는 선택

외에도 다른 선택이 하나 더 있습니다.


막 할머니의 이름이 쓰여있는 마을을 선택하려던

‘조’는 다른 선택이 있다는 말에 화면을 터치하려던

오른손을 급히 내렸어. 그리고 이어지는 허공의

음성에 집중했지.


- 당신이 새로운 마을의 촌장이 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당신의 마을 주민은 당신이 직접 선택할 수

있습니다. 선택된 사람들은 이승의 삶이 끝났을 때

이곳으로 와 당신의 마을 주민이 됩니다.


아, 드디어 ‘조’는 천국의 시스템을 알게 되었어.

‘조’녀석은 한참을 고민했지.

그리고 선택했어.

자신만의 마을을 만들기로 말이야.



얏호! 거봐 내가 뭐랬어.

나를 사랑하는 단 한 명만 천국에 가면 된다니까!

그러니까 천국에서 날 선택해 줄 단 한 사람만

있다면 아무 걱정이 없는 거지.


어때? 완전 좋지 않아?

이제 사는 게 조금 덜 팍팍할 것 같지 않아?

뭔가 조금 널널하게 살아도 될 것 같고,

뭔가 조금 이기적으로 살아도 될 것 같고.


그러니 천국에서 날 선택해 줄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조금은 주변을 의식하지 말고 살도록 해.


아, 그렇다고 너무 막사는 건 안돼!

내가 아직 말을 안 해준 게 있는데,


천국이 저런 시스템이라면,

지옥은 어떨 거 같아?


한 사람이라도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지옥으로 간다면.. 그리고 그 사람이 날 선택한다면?


이제 알겠지?

저쪽 시스템을.


그러니 되도록이면 아무도 미워하지 말고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며 사는거야.


그리고 그게,

너 자신을 위하는 길이야.




*사진출처: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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