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나비 Aug 13. 2024

꽃과 달과 별이 된 세 아이

지금껏 이름이 같은 사람을 만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어떤 면에선 좋았지만

또 어떤 면에선

이름이 좀 더 세련되거나

아니면 차라리 좀 더 평범한 이름이었으면 하는

그런 바람도 있었습니다.


이런 저와는 반대로

아내의 이름은 길을 가다 부르면

두 세명은 반드시 돌아볼 만큼

아주 흔한 이름입니다.


다녔던 회사마다

아내와 동명이인을

만나지 않은 적이 없었고,

몇 안 되는 소중한 제 친구 중에서도 한 명은

아내와 이름이 같습니다.


거리에 붙은 입시학원의 축하 현수막에서도

영화가 끝나고 올라가는 엔딩 크레딧에서도

쇼핑몰 안내 데스크에 앉아 계신 분의 가슴팍에서도

아내의 이름은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오늘,

점심을 얻어먹으러 친구네 회사에 다녀 왔습니다.

친구네 회사 구내식당은 정말 최고였습니다!

영양사님들께 쌍따봉을 두 번이나 날려드렸지요.

아, 물론 마음속으로요.

전 소심하니까요.   


밥 잘 사주는 멋진 친구를 만나

구내식당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복도에 설치된 직원용 사물함들 중 하나에서

아내의 이름을 보았습니다.


점심을 먹으러 간 친구네 회사의 구내식당 복도에서

아내의 이름이 적힌 사물함을 보니

예전 아내가 해준 이야기가 생각이 났습니다.




- 초등학교 4학년 첫날 등교했는데,

담임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우리 반에 '모모'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가 3명이라는 거야.


- 3명이나?

하긴 나도 고등학교 때 우리 반에 '용용'이가

3명이었는데. 김용용, 손용용, 최용용.

그래서 용용 1,2,3이었어.


- 그건 상대도 안돼.

우리는 3명이 성까지 같았다고!


- 성까지?


- 어, 3명이 전부 '김모모'.


- 와, 이름 부를 때 쉽지 않았겠는데?

번호로 불러야 하나?


- 근데 그때 담임 선생님이 잠시 고민을 하시더니

3명의 이름을 너무 예쁘게 구별해 주셨어.


- 어떻게?


- 웃는 얼굴이 활짝 핀 꽃처럼 예쁜 모모는,

꽃모모.

우리 반을 환하게 비춰주는 멋진 분위기의 모모는,

달모모.

별처럼 초롱초롱한 예쁜 눈을 가진 모모는,

별모모.

자 이제부터 우리 반 모모는

꽃모모, 달모모, 별모모에요.

다들 알겠지요?


- 우와 세상에! 진짜 너무 멋지시다!


- 그치? 그럼 나는 무슨 모모였게?

  



저는 아내의 이야기를 들은 저 날

마음속으로 수 십 번을 감탄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수 십 번을 감동했습니다.

정말이지 잠이 들 때까지 제 머릿속에서

선생님의 저 말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전까지 아내는

자신의 이름이 너무 흔해서 싫었다고,

매년 새 학기가 되면

같은 이름이 꼭 한 명 이상은 있어서

너무 불편했다고 말을 하곤 했었습니다.


하지만 저 해에는!

새로 만난 담임 선생님께서

꽃과 달과 별이라고 불러 주신 저 해에는!

자신이 꽃과 달과 별 중에 하나가 되어

너무나 좋았다고 합니다.

 

그때의 기억을

지금까지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아내를 보면

매년 새 학기, 자신과 같은 이름의 친구들을

만나야했던 모모들에게

저 해는 정말 특별한 해였을 것 같습니다.


사물을 보는 눈과 태도

사람을 대하는 배려와 센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들의 순수함을 지켜주시고

아이들의 상상력을 키워주신

저 해 담임 선생님의 ‘어른’ 다움에

저는 완전히 빠져버렸습니다.


내 이름은 너무 흔해!

이번에도 같은 이름이 있어!

이번 학기에도 번호로 불리는 거 너무 싫어!


매년 3명의 모모가 마음속으로 했을 저 불만들이.

누군가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아이들의 저 마음의 소리들이.

실은 아이들의 고유성과 정체성을 억압하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을지.




오늘은,

두 눈이 별처럼 초롱초롱하다고 별모모가 되었던

아내의 생일입니다.

별처럼 반짝이는 값비싼 선물을 해 줄

영광스러운 기회는

언젠간 로또 1등이 될 훗날의 저에게 넘기고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 미역국이라도 끓여야겠습니다.


꽃과 달과 별이 되었던 세 명의 모모들 이외에도

이 세상의 모든 모모들이

별모모의 생일을 맞아

행복하고 편안한 저녁을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




*사진출처:pixabay

이전 15화 천국엔 단 한 명만 가면 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