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브런치 하셨나요?
요전에 우리 무슨 얘기를 했었죠?
네?
샤워부스 배수구에서 머리카락 빼낸 이야기요?
그게 아니잖아요!
아니, 그 얘기도 한 건 맞는데요..
정말 이러실 건가요!
우리 그 얘기했었잖아요.
글감엔 구애를 받지 않는 편인데,
글깜이 되지 않아 서글픈 한 무명작가의 이야기요.
이게 얼마나 슬픈 이야긴데
그걸 샤워부스만 기억하시다니요!
'글감과 글깜'이야기였으니
잘 기억 안 나시면 다시 한번 갔다 오세요.
https://brunch.co.kr/@parknavi/135
그럼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해볼까요?
아니, 무슨 그런 준비도 없이 부르냐고요?
에이, 우리 사이에 꼭 그렇게 정해진 주제가
있어야만 부를 수 있나요?
우리 사이가 어떤 사이냐고요?
어라, 잠시만요!
아니에요, 은근슬쩍 빠져나가려는 거 아니에요.
제가 좀 전에 뭐라고 했죠?
아니 그전에요.
그래요. '정해진 주제'
됐습니다!
오늘은 이 이야기를 해볼게요.
이런 이야기를 써볼까 하고
주제를 먼저 정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 소재를 긁어모으는 거죠.
아 이런 일이 있었는데 이걸 재료로 쓰면
주제가 잘 드러날까.
이 소재로 글을 쓰면 뼈대가 잘 잡힐까.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따릉이를 타고 가며 예쁜 꽃을 봤을 때.
시골 밤하늘에 별이 너무 반짝일 때.
엘리베이터에 같이 탄 강아지가 낑낑거릴 때.
아이 셔틀버스가 정해진 시간보다 늦을 때.
꽃, 별, 강아지, 셔틀버스, 따릉이 타기,
시골, 엘리베이터, 마중길..
이처럼 소재를 먼저 정하고 글을 쓸 때도 많습니다.
이 경우엔 이 소재들로 어떤 주제를 이야기할까
고민하게 됩니다.
예쁜 꽃이다.
예쁜 건 기분이 좋지.
기분이 좋으면 행복하니까
꽃을 통해 '미(美)'를 생각해 보고
행복을 이야기해 보자.
뭐 대략 이런 식인 거죠.
물론 우리는 잘 알고 있죠.
실제론 이렇게 단순하고 체계적으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을요.
꽃으로 시작했다 인생무상으로 끝나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의도와 다르게 쓰인 글이
더 마음에 드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글이란 정말..
'소재'와 '주제'는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습니다.
먼저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둘 다 두 글자입니다!
농담이에요.
아니 그렇다고 뒤로가기를 누르실 것까진 없잖아요.
제가 집에서 초딩을 기르고 키우고 있는 관계로
유머코드가 상당히 고급집니다.
양해부탁드립니다.
둘 다 글의 필수 요소죠.
소재가 없이는 글을 쓸 수 없습니다.
흙이나 돌, 나무, 철과 같은 기본 재료 없이
집을 지을 수 없는 것처럼요.
그럼 주제가 없는 글은 있을 수 있을까요?
아, 이건 조금 어렵네요.
저는 없다는 쪽입니다.
뭐, 이건 생각하기 나름이니까
강요는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맞죠.
그럼 차이점은 뭘까요?
글자가 다릅니다.
아니에요. 이건 농담 아니라고요.
저 지금 진지합니다.
'재'와 '제'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고요!
소재의 '재(材)'는 재료, 원료라는 뜻이지요.
(* '소(素)'는 본디, 바탕, 근본이라는 뜻입니다.
혹시 이것도 궁금하실까 봐요.)
주제의 '제(題)'는 제목, 머리말이라는 뜻입니다.
국민학교 초등학교 때 다 배운 얘기를
뭐 이리 구구절절하고 있나 싶으실 텐데요.
맞습니다.
우리 이거 다 아주 어릴 때 배웠던 내용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부끄러운 고백을 하나 하자면.
사실 그렇게 부끄럽지도 않습니다 이제.
하도 브런치에서 부끄러운 고백을 많이 해서..
저는 아직도 글을 쓸 때
이 소재와 주제 사이에서 방황하게 되더라고요.
어쩌다 아주 멋지고 좋은 재료가 생기면
짓고 있는 집의 설계나 주변 환경과는
전혀 맞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이 멋지고 화려한 재료를 써먹어보려
요리조리 끼워 넣습니다.
집도, 좋은 재료도 둘 다 가치를 잃게 됩니다.
소재가 뜨고 이야기의 방향이 흩어집니다.
묵묵히 수 십, 수 백개의 벽돌을 가지런히 쌓아 올려
벽돌집을 짓다가도
별안간 미친 사람처럼 벽돌을 허물고
쇠로 된 집을 짓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끝내 사막 한가운데 양철집을 지어버립니다.
낮엔 가마처럼 타오르고
밤엔 빙하처럼 얼어붙습니다.
흐름이 끊기고 주제가 흐려집니다.
수령이 몇 백 년이 넘는 커다란 목재를 가지고도
작은 나무집을 짓는 목수가 있고,
쓰고 남은 재료를 가지고도
대궐 같은 기와집을 짓는 목수도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다 후자의 목수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럴 필요도 없고요.
글쓰기란 집 짓기와 비슷하면서도
또 어떤 면에선 확연히 달라
커다란 목재로 작은 나무집을 만들어도 괜찮거든요.
옆에는 잔잔히 시냇물이 흐르고
이름 모를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들판.
들판의 끝자락 나지막한 언덕.
낮에는 시냇물에 발을 담그고
바람에 흔들리는 꽃들을 바라볼 수 있는 곳.
밤에는 언덕 위에 누워 별의 바다를 볼 수 있는 곳.
이런 곳이라면
고래등 같은 기와집이라해도,
아니 임금님이 사시는 궁궐이라 해도 싫습니다.
커다랗고 좋은 목재를 깎고 깎아내서
이왕이면 향이 그윽하고,
뒤틀림이 없는 좋은 부분만 가지고
아늑하게 쉴 수 있는 작은 나무집 한 칸을 짓는 것이
훨씬 좋습니다.
결국 조화입니다.
소재가 주제를 잡아먹고
주제가 소재를 깔아뭉개면
위에서 얘기드렸던 제가 만든 집이 나오게 됩니다.
어울리지 않는 재료로
집도, 재료도 가치를 잃거나
사막 한가운데 양철 집을 짓게 되는 거죠.
앞으로 몇 채의 집을 더 지어야
저는 사막 한가운데
양철 집을 짓지 않을 수 있게 될까요?
뭐 정답은 저도 여러분들도 알 수 없지만
우리 한 가지는 알고 있잖아요.
계속 써봐야 한다는 것.
그래서 오늘도 저는 소재와 주제 사이를
종종걸음으로 옮겨 다니며 브런치 합니다.
오늘 여러분들도,
브런치 하셨나요?
*사진출처: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