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바다로 가자

버스 안으로 파도가 밀려들어오다

by 박나비

비 오는 날 버스를 타면 모든 게 시시하다


지금 가는 출근길이 시시하고

가서 해야 하는 일들이 시시하고

기껏 열두 시가 되면 먹는 점심도 시시하고

비위를 맞춰야 될 윗사람도 시시하고

눈치를 봐야 하는 직원들도 시시하다

그러다 비가 그치기라도하면

오늘 내리는 이 비를 제대로 즐기지 못했음에

그쳤던 비는 내 마음속에서 다시 온종일 내리겠지


비 오는 날은 지금 타고 있는 버스가

속초쯤으로 데려가주면 좋겠다


가는 길,

버스창을 주르륵 미끄러져 내려가는 빗방울도 소소하고

아늑한 버스 안에서

빗물로 찰방거리는 도로를 보는 것도 소소하고

속초쯤에서 내리면 한 면이 통째로 바다가 보이는

식당에 들어가는 것도 소소하고

평일이라 손님도 없어 가장 좋은 자리에 앉아

메뉴판의 가격은 보지도 않고 먹고 싶은 음식들을

다 시키는 것도 소소하다

마침 가게에서 와인을 몇 종 팔았으면 좋겠고

그 몇 종 안 되는 와인리스트에서

내가 좋아하는 와인이름을 하나 발견하면 좋겠고

주문이 다 끝나고 이십 분 정도 멍하니

비 오는 4월의 바다를 보고 있는 것도 좋겠다


테이블 위가 하나둘씩 접시로 채워지고

투명한 와인잔에 와인을 쪼르르 따르고

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가면

입안에 파도가 밀려온다

밀려오는 파도를 한 모금 머금고

무심코 고개를 돌렸을 때

눈 안으로 밀려오는 진짜 파도를 볼 수 있다면

이 모든 소소함에 눈물이 나겠지.



*이러고 있다 출근 길 내리는 정류장을 놓칠뻔했습니다 :) 서울은 비가 주룩주룩 내립니다. 모두 행복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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