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치병

바야흐로, 봄

by 박나비

요맘때가 되면 자주 가슴이 콩닥콩닥거린다.

무슨 몹쓸 병에 걸린 것도 아닌데, 갑자기 가슴이 콩닥콩닥거리는 일이 잦다. 그럴 때면 잠시 눈을 감는다.


햇살이 내리쬐는 거리.

벌써부터 기분이 좋아진다.

물론 그 거리 속에는 나도 있어야겠지.

차들이 거의 지나다니지 않는 한적한 골목 한켠이 좋겠다. 그렇다고 사람들마저 지나다니지 않아 한적하다 못해 쓸쓸함이 느껴져서는 곤란하다. 아주 가끔 차가 한 두대씩은 지나가고, 또 가끔은 여유롭고 평화로운 표정의 사람들이 너무 빠르지도 그렇다고 너무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걸어 다니는,

아!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내가 있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 너무 빤히 쳐다보지 않는, 그런 정도의 한적함이라면 딱 좋겠다.


그런 골목 한켠에 테이블을 네다섯 개 정도 내어놓은 가게가 두 서너 집이 있고, 나는 그중에 테라스 지붕이 녹색인 가게의 테이블에 앉아있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하얀색 메뉴판을 들어 와인 리스트들을 훑어보다 적당한 가격의 한 와인 앞에 손가락을 멈춘다.

어울리는 음식 두어 가지를 정한 다음 주문을 받으러 오길 느긋하게 기다린다. 깍지 낀 두 손을 뒤통수에 갖다 대고 가슴을 내밀자 하품이 터져 나온다.

마침 목줄을 차고 지나가던 강아지와 눈이 마주치고 한껏 벌어졌던 입은 다시 원위치로 돌아온다.

갑자기 사라져 버린, 입이 얼굴의 절반가량인 사람을 찾느라 자꾸 뒤를 돌아보는 강아지를 보며 나는 배시시 웃음을 지어본다.

어느새 테이블 위엔 잔과 와인이 놓여있다.


따라드릴까요?

아, 그냥 제가 마실게요.

네, 더 필요한 것 있으시면 부르세요.

네, 감사합니다.


첫 잔은, 와인이 글라스의 바닥에서 찰랑거릴 정도로만 아주 얕게 따른다.

한 입에 쏘옥. 꼴깍.

입에 들어오자마자 첫 느낌은 시원하다.

그다음으로 다양한 맛과 향이 코와 입으로 슝슝 뿜어져 나온다.


이거지.


다시 병을 들어 잔을 채운다.

이번엔 잔의 1/3 정도.

다시 잔을 들어 입안 가득 봄을 채운다.

봄을 머금은 두 볼 안쪽이 알코올로 싸해질 때쯤 꿀꺽 삼켜 봄을 마셔버린다.


가슴에서 싹이 트고, 줄기가 올라오더니, 이내 꽃을 피운다. 가슴에서 피어난 꽃 향기에 취해 얼굴이 발그레해진다. 마침 목줄을 차고 지나가던 강아지와 눈이 마주치고 나는 발그레진 얼굴로 배시시 웃음을 지어본다. 얼굴이 발그레한 인간이 신기한지 자꾸 뒤를 돌아보는 강아지와 그런 강아지의 목줄을 잡아끌며 발길을 재촉하는 주인을 보며 나는 또다시 앞에 놓인 잔에 봄을 채운다.


봄 바람이 살랑거리고

봄 내음이 물씬풍긴다

봄 기운이 완(完) 연(然)하다.


바야흐로, 봄.



*이미지출처: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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